• [꿈/이야기] 마음 보듬는 소리 찾아 세월도 물욕도 잊었다[‘가난한’ 대금연주자 전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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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3.08 09:10:25
  • 조회: 318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세상사는 모습도 가지가지이다.
대금 연주자 전병규씨(50). 13살 때부터 시작한 저(대금)와 소(단소, 피리) 몇 자루가 그가 가진 유일한 재산이다. 국악중·고와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전씨는 국립국악원 연주자로도 활동했다. 이력만 가지고 따져 본다면 그는 국악계 진골(眞骨)로 분류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좋은 학벌에 그 좋은 재주로 그 나이가 되도록 장가도 안가고, 집도 절도 없이…쯧쯧.” 성마른 어른들은 지금도 그를 보면 ‘끌끌’ 혀를 찬다. 예술이 뭐 별 거냐. 적당히 굽히고 밥벌이나 하라는 얘기다.
궁금했다. 그는 왜 주위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세상 속에 섞여 적당히 사는 길을 택하지 않고 외로운 길을 걷고 있을까.

“나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돈과 물질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살기보다는 거친 잠자리와 거친 음식을 먹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마음의 만족을 느끼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한다? 그렇지만 먹고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 당장 직장을 그만두면 내일부터는 뭘 먹고 사나 걱정하는 한편 회사에서 잘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한다”면서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는 쭉 짜면 한 줌도 안되는 고민거리”라며 웃었다.
그가 이처럼 ‘밥’에서 자유로운 까닭은 한달 몇십만원의 생활비로도 마음 편하고 풍족하게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였어요. 강사료만으로는 생활도 안되고, 또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자연과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경상북도 영덕 산골로 들어갔다. 허름한 농가와 텃밭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낮에는 밭일을 하고 밤에는 대금을 불었다. “먹는 것도 해결되고 자연의 소리에도 귀가 열렸어요.” 아침마다 이름모를 새들이 찾아와 인사를 하고 낮에는 구렁이가 스르르 마당을 휘돌다 가기도 하고…. 장작 군불이 타는 소리, 소복소복 눈이 쌓이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과의 교감을 만끽했다. 그때 그는 ‘먹고 사는 일이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5년간을 산 속에서 보내다가 다시 세상에 나왔다. 무대에 대한 그리움도 컸고, 때마침 경상북도 상주군 교육청에서 ‘예술체험관’을 만들면서 국악수업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국악 연주 무대는 많아졌는데, 관객은 오히려 줄었다는 느낌입니다.” 그는 각 지자체에서 공연장 등 문화시설은 많이 확충했는데, 국악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적어진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공연장은 돈만 있으면 지을 수 있지만 관객은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음악은 마치 언어와 같아서 배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는 대금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간다. 사람수가 많든 적든. 강의료가 얼마든지 관계치 않고.
넉넉한 개량 한복에 뒤로 묶은 긴 머리. 대금·중금·소금을 담은 악기 케이스.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마치 한가롭게 낚시나 다니는 낚시꾼 같은 모습이다.

“한가롭지요. 바쁠 게 뭐 있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잰걸음으로 세상을 산다. 왜냐하면 그는 예술가란, 특히 인기없는 국악을 하는 사람들이란 고정된 일자리와 능력에 맞는 보수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불안하고, 대가도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많이 이것 저것을 모색해야 한다.
요즘 그는 대금이라는 잔잔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평온의 음색이 무엇과 궁합이 가장 잘 맞을까 모색 중이다. 그래서 선차(仙茶) 시범과 대금 연주를 접목해 볼 생각이다. 이미 5월에 일본 아와테현에서 열리는 ‘아시아 음악제’에도 초청받아 놓은 상태다.

“자극적이기보다는 부드럽고 평온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러한 음색에 반해 30여년을 대금에서 떠나지 못한 것처럼 앞으로도 우직하게 한 길을 걸을 작정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경제적인 문제에 신경 안쓰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훠~이, 훠~이. 느린 그의 걸음이 당당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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