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일본인 난 아시아인[동경서 태어나 서울거쳐 중국에 사는 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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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3.02 09:22:56
  • 조회: 591
“명수는 어느 나라 사람이니?”
“한국에 오면 한국 사람, 일본 가면 일본 사람, 중국 가면 중국 사람이에요.”
“응?”
“한국에선 한국말 쓰고, 일본에선 일본말 쓰고, 중국에선 중국말 쓰니까요. 우리 아빠는 한국 사람, 엄마는 일본 사람이지만 난 아시아인할래요.”
참 간단하면서도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외가가 있는 일본 도쿄에선 아키히데로, 현재 살고 있는 중국 난징에선 류밍슈로 불리는 열세살 소년 명수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하는데 조금도 막힘이 없다. 초등학교 6학년, 전교 1~2등의 실력이니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나 영어 실력이 만만치 않다. 일본어는 게임을 하며 익혔고 한국말은 만화책을 보며 익혀 잊어버리지 않았다. 일본 게임 해설집을 중국어로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는 명수는 동네나 학교에서도 친구가 많다.

명수는 도쿄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라다 생후 6개월째, 하얼빈 동북농업대학에서 일본어 강의를 맡은 어머니를 따라 중국으로 이사하면서 중국 땅을 처음 밟았다. 그리고 세살 때 다시 귀국, 서울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1년을 마치고 옌볜대학에서 강의를 맡은 아버지를 따라 옌볜에서 3년, 다시 다롄에서 1년, 그리고 현재 난징에서 살고 있다. 벌써 여권만 3권째.
류은규씨(44) 가족은 오랜만에 함께 한국 나들이를 했다. 현재 난징시각예술대학장으로 있는 류씨는 겨울방학을 맞아 휴가 겸 한국에서 열릴 사진전 준비를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중국말도 모른 채 일본인 아내, 어린 아들과 중국으로 들어간 지도 10여년. 숨가쁘게 중국 생활을 익히고 적응하면서도 대학시절부터 시작한 청학동 사진 작업을 놓지 않았다. 4월 중순, 25년간 청학동을 담아낸 사진 130점을 포스코 미술관 170평 공간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일본 잡지의 프리랜서 에디터로 한국에서 일하던 도다 이쿠코(46)와 사진기자로 시작된 류씨의 만남은 다른 국제 결혼 커플 못지 않은 양가의 반대를 겪으며 결혼으로 이어졌다. 도다는 서울에서 한국며느리, 아내로 살아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책으로 엮어내며 신혼 시절을 보냈다. 주 5일제에 학교 점심 시간이 두시간이라 아이들은 대부분 집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그러다보니 세식구가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끼를 함께 먹는 날도 많다. 하얼빈에 살 때부터 아침은 빵·소시지·프라이를 먹었는데 명수가 밥 먹고 싶다고 한 뒤부터는 아들 덕에 온 식구가 한식으로, 점심은 주로 중국식 그리고 저녁은 다국적식이다. 결혼 초엔 생각지도 못한 여유로움이다. 아들이 학교에 가 있는 오전 동안엔 책 쓰고 그 이후엔 아들과 대화하고, 함께 책 읽고, 요리하고…. 온전한 주부의 여유와 넉넉함을 만끽하는 그녀의 요즈음 생활은 3월경 ‘손 큰 며느리(가제)’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친구를 위해 희생하고, 학교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사회주의식 초등학교 교육에 도다는 만족해 한다. 하지만 더 있으면 완전히 중국인이 될 것 같아 세 사람은 이번 한국 나들이에 어려운 결정을 했다. 명수가 초등학교를 마치면 한국에서 중학교 과정을 다니기로. 현재 명수의 꿈은 통역가, 작가, 운동선수지만 정해진 것은 없다. 그래서 고등학교 과정도 중학교를 다니며 명수의 선택과 적응에 맡겨보기로 한 것. 그런데 명수보다는 엄마가 더 걱정이다. 학부형으로, 주부로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명수가 유치원 다닐 때의 일이다. 하루는 울며불며 집으로 달려왔다. “혹시 자기가 이순신 장군님을 죽인 나쁜 일본인이냐”며. 그래서 도다는 어릴 때 하얼빈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너는 중국사람”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눈이 동그래진 명수는 “나는 중국말도 못하는데 어떡해” 하며 걱정을 하더라는 것. 이후에도 한국 사람이라고 알려주지 않았지만 중국 가서 자연스럽게 자기의 정체성을 알았다고 한다.
“일본에 갔을 때 외할아버지가 일본에 좋은 장난감도 많으니까 중국 가지 말고 외할아버지랑 일본에서 살자며 무심히 한마디 하셨는데, 갑자기 명수가 ‘일본은 중국한테 (전쟁때) 졌으면서 그런 말을 하세요.’ 하잖아요. 외할아버지는 전쟁에서 미국에 진 걸로 아는데 명수는 중국에서 일본이 중국에 진 걸로 배운 거예요. 그래도 할아버지랑 저는 아무 말 안해요. 아이들에게 너무 ‘절대적인 가치관’을 가르치는 것은 안 좋은 것 같아요.”

명수는 올 초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면 3개 국어로도 쓴단다. 주변에선 대단하게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번은 중국(난징)에서 일본(도쿄)으로 가는 일본비행기 안에서 중국 아이가 좀 아팠나 봐요. 스튜어디스들이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 쩔쩔 매고 있었는데 명수가 조근조근 통역을 해줬나봐요. 누나랑 여기서 함께 일하자며 농담도 했나봐요. 일본에 사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나 서울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천재로 생각해요. 동네에서도 그렇고. 너무 우쭐해질까봐 걱정이죠. 그래서 틈만 나면 얘기해요. ‘명수야, 말은 도구야. 대단한 거 아니야. 당연한 거야. 도구를 잘 써서 스스로를 얼마나 잘 표현해내는가가 중요한 거야’라고.”

국제감각을 익혀야 한다며 ‘기러기 가족’을 자청하는 가정이 늘어나는 요즘, 외국어도 해외에 가서 배워야 빨리 배운다며 너도나도 해외연수를 가는 세태 속에서 명수네 가족을 보면 참 좋은 길만 골라서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새로운 문화, 또 다른 관습에 맞춰 살아야 하는 어려움은 남 모르는 고통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을 오가며 ‘외국인’으로 부지런히 살아가는 부모, 그 밑에서 자란 명수에게 국적의 의미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지혜를 먼저 터득한 명수는 ‘아시아인’으로 쑥쑥 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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