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한국판 해리포터 꿈만은 아니다”[한국 장르문학은 저급문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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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2.28 08:48:42
  • 조회: 936
현재 한국 서점은 외국소설에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는 ‘다빈치코드’ ‘모모’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연금술사’ 등 외국 번역소설이 시장을 ‘석권’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소설가가 신작소설로 1만권을 팔기 힘든 반면 이들 외국소설은 수백만권이 팔리고 있는 상황이다.

저급문화라는 낙인이 찍힌 장르문학이 침체에 빠진 한국 문학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최근 인터넷소설로 10대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백묘’ 이민영씨가 문학책을 옆에 두고 발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 외국소설의 특징은 소위 ‘순문학’이 아닌 ‘장르 소설’이란 점이다. ‘해리포터’는 판타지 소설이며 ‘다빈치코드’는 스릴러가 가미된 추리물이다. 작품성을 논외로 하더라도 해외 장르문학은 베스트셀러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비평가들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에 비해 한국 장르문학의 ‘현실’은 초라하다. 한국 장르문학의 인기와 판매실적이 초라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동아일보가 보도한 전국 주요 14개 대학의 5년간 대출도서 순위 기사에 따르면 1위는 ‘묵향’이라는 판타지 소설이었고 ‘해리포터’ 시리즈, 조정래의 ‘아리랑’, 이영도의 ‘드래곤라자’, 검유혼의 ‘비뢰도’, 이우혁의 ‘퇴마록’ 등이 10위 안에 올랐다. ‘묵향’과 ‘비뢰도’의 경우 시리즈 누적 1백만권 가까이 팔린 작품. 하지만 이들 베스트셀러도 문학비평가들의 관심대상에선 ‘열외’다. 대중은 열광하나 비평가는 외면하는 이 양극화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한국 장르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유통과정에서부터 ‘따로 논다’는 것이다. 즉 순수문학의 유통통로인 일반 서점보다 대여점 체제와 ‘공생’하고 있다. 몇몇 베스트셀러를 제외하고는 전국에 있는 7,000여개의 대여점이 판매 마지노선이고 최소한의 부수는 팔리기 때문에 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엔 대여점 시장이 축소되면서 출판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로맨스소설을 발간하는 환상출판사 박정선 편집장은 “최근 시장상황이 악화돼 대여점 매출이 2,500권을 넘기기 힘들다”며 “과잉경쟁으로 싼값에 땡처리를 하는 작품도 많다”고 전했다.

판매부수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인식. 많은 사람이 장르소설에 열광하면서도 이들 소설이 ‘질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여점 소설=통속소설’이라는 등식이 독자들의 머릿속에 확고한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들더라도 인정받기 힘든 것이다.
인기작가 대부분이 인터넷으로 등단을 한 것도 특징. 이는 엔소설(10대 취향의 인터넷 연애소설)과 로맨스소설뿐 아니라 무협·판타지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연재의 속성에 맞게 언어유희, 긴박한 구성과 즉자적인 반응은 필수가 됐다.

현재 엔소설에서 제일 인기가 높은 작가는 ‘백묘’라는 필명의 이민영씨(24)다. 이씨는 전형적인 엔소설 작가의 등단케이스다. 연세대 생명공학과 3학년 시절 과외하던 학생이 전해준 귀여니의 인터넷소설을 처음 접했고 취미로 2003년부터 인터넷에 엔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데뷔작 ‘기다린 사랑’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4권의 작품을 썼고 2년반 동안 벌어들인 수입은 1억원을 훌쩍 넘었다. 이씨는 “1년에 보통 4권 정도 쓰는데 권당 7백만원 정도는 버는 것 같다”며 “최근엔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대만 등에 소설이 번역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소설이 인기있는 이유는 여성 주인공들이 능동적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귀여니때만 하더라도 엔소설 주인공이 수동적이었는데 요즘은 능력이 있고 남자를 리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요즘 소설들은 이모티콘도 가급적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비뢰도’의 작가인 ‘검류향’ 목정균씨(29)는 90년대 말 하이텔에 무협소설을 연재하다가 정식작가로 등단한 경우다. 목씨는 “무협지가 재미가 없어지면서 직접 써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며 “처음에는 무협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들 작가의 다른 특징은 소위 ‘순문학’에 대한 동경이 없다는 것이다. 이전 세대 장르문학 작가들이 상대적으로 순문학을 동경하고 자신의 처지에 자괴감에 빠지는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이씨는 만화스토리 작가를 꿈꾸고 있으며 목씨 역시 계속 무협소설을 쓰며 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이씨는 “문학에 대한 동경이 없었던 만큼 굳이 작가로서 승부를 걸겠다는 마음도 없다”며 “엔소설 역시 1~2년 안에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

재미를 추구하는 장르문학이 순문학보다 영상매체의 자양분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특히 최근 몇년간 인터넷 소설과 로맨스 소설의 약진은 눈부시다. ‘엽기적인 그녀’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내사랑 싸가지’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이 영화로 제작됐으며 ‘내 이름은 김삼순’ ‘옥탑방 고양이’ ‘1%의 어떤 것’ 등이 드라마로 제작됐다. 원소스 멀티유스가 대세인 상황에서 이들 작가가 굳이 순문학에 눈을 돌려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들 장르문학의 또 다른 특징은 수명이 짧다는 것이다. 박편집장은 “대중의 취향이 너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웬만한 작가들은 1~2년을 버티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표절작들이 양산되는 ‘악순환 시스템’도 문제다. 한 작품이 대중의 인기를 끌면 비슷한 컨셉트의 작가와 출판사가 우후죽순 쏟아지고 질 낮은 작품들이 나오면서 결국 독자들이 외면하는 ‘악순환’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순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에 교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소설가이자 출판사를 운영하는 이진우씨는 “한국의 장르문학은 대본소·대여점이라는 자체적 유통시스템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영향력과 작품성을 알리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며 “순문학 역시 신춘문예라는 등단제도를 만들어 견고하게 벽을 쌓았고 결국 서로를 배척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검궁인이 최근 발간한 ‘무협 삼국지’는 두 문학을 접합하려는 새로운 시도”라며 “장르문학에 거부감이 적은 젊은 작가들이 다양한 실험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장르문학 출판사인 청어람의 장상수 과장은 “장르문학의 ‘조잡함’과 순문학의 ‘답답함’의 사이를 넘나드는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며 “문학계에서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고 장르문학 작가도 재미와 더불어 완성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묘가 쓰는 인터넷 소설은 어떻게 보자면 순문학에 대한 ‘도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은 새로운 것을 원하고 있고 장르문학은 그 요구에 충실히 응해왔다. 그러나 해리포터와 같은 ‘대박’은 새로운 문화코드를 읽는 발빠른 감성과 순문학의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탄탄한 스토리가 결합될 때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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