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은밀했던 性, 당당해진 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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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2.22 08:42:42
  • 조회: 301
밸런타인 데이였던 지난 14일, 이화여대앞 한 가게 안에선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골똘히 뭔가를 고르고 있었다. 꼼꼼히 살펴보더니 드디어 결정했는지 카운터로 다가간다.

“남자친구분에게 밸런타인 데이 선물하시려나봐요.” 직원이 말을 걸자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여자가 골라든 건 초콜릿이 아니었다. 이 가게는 지난해 12월 문을 연 콘돔 전문매장이다.



“며칠전부터 밸런타인 데이 특수예요. 아직 매장 앞에서 몇번 망설이다 들어오는 분들도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구매해가시죠.” ‘콘돔매니아’측은 처음에 기대도 안했다. 낯부끄러운 성인용품점으로 여겨질 것이라 지레짐작 했던 것. 그저 인터넷 영업을 보조할 홍보용 매장으로 조그맣게 문을 열었을 뿐이었는데, 이젠 아예 판매가 주가 돼버렸다. 요샌 체인점을 내고 싶다는 문의도 끊이지 않는다.

그보다 앞선 지난 5일엔 콘돔 상업광고가 홈쇼핑 채널에서 국내 첫 방송전파를 탔다. 밝고 경쾌한 배경음악과 함께 “이제 콘돔은 에티켓이죠”라고 발랄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쇼호스트들. 지난해말 방송광고법이 개정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방송위원회는 콘돔광고를 허용하면서 “사회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최근 일어난 성(性)에 대한 ‘첫번째’ 사건들은 그것만이 아니다. 첫 콘돔전문매장, 첫 콘돔광고뿐 아니라 문화재청으로부터 정식허가를 받은 본격적인 첫 ‘성 박물관’도 생겼다.

지난해 원명구씨가 신촌 한복판에 문을 연 ‘성역사박물관’이 그것이다. 원씨가 몇십년에 걸쳐 모아온 세계 각국의 성에 대한 작품들은, 공항 세관조사를 받을 때 원씨의 얼굴을 벌겋게 만들 때도 있었지만, 이젠 젊은 연인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들까지 감탄하며 구경하고 가는 소장가치 높은 전시품이 되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것. 사람들은 이제 말하기 시작했다. ‘자위는 남자만 하는 건줄 알았어’ ‘누구나 하는 거잖아! 감추지 말자’…. 벌써 7회째 계속되고 있는 ‘월경페스티벌’에선 해마다 ‘양심선언’들이 이어진다. 생리통으로 식은땀이 나면서도 되레 아픈 티 안내려 애써야 했던 나날들. “너 생리통이냐?” 누군가가 농담처럼 던진 말에 혼자 화들짝 놀라 두 손을 휘저었던 사람들. 이젠 외친다. “그래, 나 생리한다!”



경희대는 지난 한 학기동안 생리통이 심해 결석한 여학생들에게 여학생과에서 받은 증명서를 교수에게 제출하면 출석으로 인정받는 ‘생리공결제’를 시범운영했다. 그 결과 자신이 지금 생리 중임을 당당하게 선언하며 증명서를 제출한 학생이 100여명이었다.

‘오남용의 우려가 있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었지만 학교측의 설문조사 결과 남녀학생 모두 금기시됐던 것을 공론화한다는 제도의 의의에 대해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희대는 시범운영 결과를 토대로 학칙개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경희대뿐 아니라 동아대는 2004년 2학기부터 이미 정식으로 이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으며, 한국외대·부산대 등 많은 대학들이 검토 중이다.



어둡고 습한 곳에 감춰두면 부패하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다.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해 당당해지고 있는 사람들. 음험한 상상력에 갇혔던 성은 서서히 밖으로 나와 지금 양지에서 살균소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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