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잠못이루는 아흔의 母情[경기 동두천시 상패동 박팔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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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2.15 09:28:06
  • 조회: 284
모두에게 버림받은 예수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마지막으로 안긴 곳은 마리아의 품이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 했던가.
경기 동두천시 상패동, 초라한 시골집은 흙벽이 허물어져 갔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에선 작은 승강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머니,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가세요.” 둘째 사위가 크게 소리쳤다. 가는 귀가 먹은 박팔선 할머니(94)는 그 소리가 안 들리는지, 못 들은 체하는지 딴청만 피운다. 사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명절만이라도 같이 보내자는데 저렇게 고집을 피우시니….”
할머니는 하루라도 집을 비우면 아들이 죽는 줄 아신다. 그래서 아들이 한달 넘게 병원에 입원 중인데도 굳이 홀로 집을 지켜야 한다고 고집이다. “안가, 안가. 아들이 병원에 있는데 혼자 뭐 좋다고 명절을 지내. 안가, 안가.” 막무가내로 손을 휘젓는다.

큰 딸이 벌써 일흔으로 손자들 재롱을 보는 나이. 그 자신은 아흔이 넘어 쪼글쪼글 오그라들고, 가는 귀가 먹고, 허리도 성치 않은 몸으로, 예순된 아들 곁에 마지막까지 남았다.
보다 못한 동네 교회 김희성 목사(40)가 절대 안 가실 테니 그만 포기하시라고 사위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김목사도 이미 한차례 경험했다. 2년전 겨울 눈길에 미끄러져 할머니 허리가 크게 다쳤을 때였다. 그렇게 설득을 했음에도 할머니는 꿈쩍하지 않았다. 자기가 입원하면 아들은 누가 지키냐고. 그 탓에 당신은 지금 절뚝절뚝 10분 이상 서 있질 못한다.
“할머니, 그럼 우리 아들 보러 병원 갑시다.” 이번엔 김목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할머니는 냉큼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꿰입었다. 그리곤 그제서야 “아이고, 손님 아직도 안 가셨네. 이를 어쩌나” 하며 수줍게 맞은 손을 감싸쥔다. 신문사에서 왔다고 몇번이나 일러드려도 자꾸 까먹으신다. 아들이 처음 병원에 입원한 날도, 그 사실을 자꾸 까먹고 “우리 아들 없어졌네, 이 일을 어떡하나” 통곡을 하시는 통에 이웃들이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할머니는 계속 혼잣말을 했다. “내가 죽어야 우리 아들이 사는데, 내가 죽어야….” 주문처럼 혼자 읊조리다가도 갑자기 5분마다 고개를 번쩍 들곤 “여기 병원이오? 아직 안 왔소?” 보채길 반복한다.
할머니는 아들이 ‘중증 말초신경근육무력증’이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에 걸려 사지가 굳은 것이 자기 탓이라 여긴다. “내가 젊었을 때 얼마나 고된 시집살이를 했는지 말도 마시오. 시조모에 시부모에…. 그런데도 이 나이꺼정 살아있으니 우리 아들이 아픈 게지. 아이고 무서라, 아이고 무서라.” 할머니는 자신이 아들 몫까지 뺏어 이리 오래 사는 거라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이웃은 모두 “그 할머니가 오래 사는 건 병든 아들을 지키기 위한 초인적인 힘”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다 되어서야 다시 엄마 품에 돌아온 예순 아들. 이미 오래 전 별거한 아내와 자식들에게 빈털터리 병든 몸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가 안길 곳은 어머니밖에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을 씻겨주고, 때 되면 반찬을 순서대로 수저에 얹어 입에 넣어주고, 대소변을 받아 닦아주시는 노모. 그게 벌써 12년째다. 젊을 땐 어린 자식들에게 청춘을 파먹히고, 아흔이 넘어선 늙은 자식 때문에 여생을 포기했다.

엉금엉금 차에서 내린 할머니는 김목사의 부축을 받으며 중환자실에 들어섰다. 할머니가 그토록 애타게 그리던 아들은 어머니를 보자 그렁그렁 두 눈만 껌뻑인다. 앙상하게 마른 팔다리, 호흡 보조호스를 목에 끼고 있는 아들 오세영씨(60)는 안절부절 못하는 어머니가 안타까워 “가!”라고 입을 벌렸다. 순간 호흡이 불안정해져 ‘삑’하고 울리는 경고음. 할머니는 깜짝 놀라 “아이고, 우리 아들 죽네.” 손을 잡고 매달린다.

아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안다. 어머니가 설 세배조차 마다하고 그 초라한 흙집에서 자기를 기다렸을 거란 사실을. 자기가 병원에 있는 한, 어머니는 단 하루도 편히 눕지 못한 채 벽에 기대 앉아만 계실 거란 사실을.
10분도 서 있질 못하는 할머니는 30분이 넘도록 서서 아들의 팔다리를 정성껏 주물렀다. 그리고 병실을 나서자마자 참았던 통증 때문에 주저앉고 만다. 또다시 “내가 대신 죽어야 되는데, 내가 죽어야…”를 중얼거리면서.

언젠간 병이 나을 수 있으리란 희망조차 없는 나날들. 그러나 신은 오씨에게 불치병을 준 동시에 어머니를 내려주셨다. 94년 동안 단 한순간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어머니를. 도대체 ‘그 죽일 놈의’ 모정이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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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ㅉㅉㅉ 06.02.15 09:50:21
    중증 말초신경근육무력증은 왜 생기는 건지...ㅉㅉㅉ
  • jjshoh 06.02.16 08:48:24
    그히기병이 뭔지,,....할머니 힘내세요 아들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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