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지방선거 도전하는 주부3인의 생활정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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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2.14 09:00:10
  • 조회: 250
#초등생 아들문제로 나선 김수경씨



학창시절 내내 꿈이 현모양처였던 김수경씨(40·사진 왼쪽). 집안이 반들반들 닦여있어야 마음이 놓이고 남편 입맛에 맞춰 1주일의 식단을 미리 짜고 학교 다녀오는 아이들 맞아주는 게 가장 큰 보람이었던 김씨. 이런 김씨가 1년전부터는 변호사 사무소 사무국장이라는 명함을 들고 다닌다.

“17평 서민아파트에 살았는데 바로 집앞에 고층아파트를 지으면서 입주민 의견은 한마디도 듣지 않고 조망권도 무시한 채 건물을 올리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해서 갓 낳은 둘째를 업고 주민서명운동에 들어갔던 것이 10여년전. 활동은 계속 이어졌다. 둘째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켜놓고 보니 등하교길이 너무 위험해 보였다.

기찻길, 6차선 도로를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5,000가구가 넘는 이 동네에도 초등학교를 하나 더 만들어 달라는 부모들의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아줌마들에겐 귀기울여 주지 않았다. 그때부터 시와 교육청을 번갈아가며 집회를 열었다.

아무리 물어보고 요구해도 담당자들이 입버릇처럼 들먹이는 게 ‘법’이었다. 그래서 법을 공부하게 됐다. 법조문을 들이대며 허점을 짚고 전문가까지 동원한 끝에 아파트문제도, 초등학교도 주민들이 원하던대로 해결됐다.

“제가 사실 저와 저희 가족만 생각하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제 아이, 저를 위한 일이 지역일이더라고요. 법 바꾸고 만드는 게 정치고, 그러면 띠두르고 데모 안해도 되니까 출마한 거죠. 하하하.”





#지역봉사하다 나선 홍인정씨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 교수였던 홍인정씨(37·가운데). 석사학위를 받은 후 10여년간 그 꿈을 향해 강의만 했던 홍씨 역시 정치가 가까이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평범한 강사로 살았지만 홍씨가 갖고 있는 직함이 여럿이다. 복지재단 자문위원과 지역 대안학교 강사와 운영위원, 청소년지도위원, 주민자치위원, 양성평등강사 등. 종교단체에서 봉사하고, 필요로 하는 곳의 요청을 받다보니 하나하나 자연스럽게 추가됐다. 특히 보건복지쪽의 일을 하다보니 시민단체와 연관된 일을 할 기회가 많았다.

정치와 관련을 맺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아이를 낳으며 어려운 여성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그동안 운영하던 피부관리실을 그 옆의 여성인력개발센터에 기증한 것이 계기였다. 미혼모에게 자활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자는 생각이었다. 센터 관장이 사람 좋아하고 지역일에 열심인 홍씨에게 리더십 교육과정을 소개하고 정치참여를 권했다.

“학교다닐 땐 공부만 했죠.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선배들을 보며 정신적 부채감만 느꼈는데 지역활동을 하다보니 저도 쓰임새가 꽤 많더라고요. 정말 여성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아직 기초의회 여성의원 비율이 2.2%이니 여성정책이 낙후돼 있을 수밖에 없죠.”

불의와 타협하고 도덕성을 잃은 정치인들의 모습이 가장 실망스러웠다는 홍씨. 지역에서 노년층이 60%를 차지하는 만큼 실버타운과 여성발전센터를 유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보육문제 해결하다 도전 서정순씨



“친구들이 깜짝 놀랐어요. 네가 그렇게 열정있는 애인줄 몰랐다며. 저도 지역운동을 하면서 새로운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지방의 외진 곳에서 태어나 서울대에 들어갈 정도로 공부는 잘했지만 사람들 앞에 나서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소심한 서정순씨(38·오른쪽)를 변화시킨 건 ‘효빈이엄마’라는 이름이었다. 아이를 구립어린이집에 맡기면서 목격하게 된 장면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간식비가 하루 910원으로 책정돼 있는데도 간식을 싸오라고 해 나눠먹이고, 제철음식을 먹이자는 의견은 단번에 묵살되고…. 참다 못해 2002년말부터 구청에 감사를 원한다는 민원을 넣고 부모들을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이에게 불이익이 올까봐 차마 말못했던 부모들이 열렬한 지지를 보낸 건 당연지사. 몸은 힘들었지만 하나하나 원하던대로 이뤄지는 것이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보육문제 말고도 엄마의 눈으로 보면 고쳐야 할 부분이 눈에 많이 띄었다. “효빈이 엄마가 한번 나서봐”라는 말에 결심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서씨의 성격을 잘 아는 남편도 “지역활동에 누구보다 헌신적인 당신이 나서야 한다”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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