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한연희 한국입양홍보회장 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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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1.31 09:08:54
  • 조회: 398
며칠 있으면 설이다. 설이 다가오면 어른들은 항상 말한다, 요즘 설은 예전같지 않다고.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대가족이 모여 북적대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아이 하나 달랑 손잡고 혹은 부부가 하나씩 데리고 다니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친척끼리 모여야 북적대며 명절 분위기가 산다. 자식이 많아 평소에도 풍성한 집안 분위기인 한연희 한국입양홍보회 회장(49)네. 항상 사람들이 북적대는 한씨네 집은 매일매일이 명절이다.



#신앙과 입양 전제조건으로 결혼

한씨의 직함에서 벌써 눈치를 챘겠지만 한씨네 가족은 혈액형이 제각각이다. 여섯남매중에는 몸으로 낳은 자식도 있고 가슴으로 낳은 자녀도 있기 때문이다.

첫아들 명곤이(25)는 몸으로 낳았고 둘째 희곤(22)과 다섯째 하선(9), 여섯째 하나(6)는 입양으로, 셋째·넷째 영범이(15)와 영환이(14)는 위탁으로 가족이 됐다.

한씨네 가족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한씨의 입양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 평탄한 가정에서 자라다 고3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극심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한씨는 ‘아버지가 안 계셔도 이런데 엄마 아빠가 없으면 어떻게 살까. 사회 생활을 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입양을 안 한다는데 왜 그럴까’ 하며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차에 결혼해서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건 올바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라는 신념까지 더해져 한씨는 입양을 다짐했다. 선교사가 되려고 했던 한씨는 애초 결혼은 뒷전이었다. 그러다 현재 남편의 계속된 구애에 두가지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신앙을 가질 것’과 ‘둘째아이 입양’.

한씨는 첫아들을 낳은 후 입양 얘기를 꺼냈지만 남편은 계속해서 ‘형편이 나아지면…’이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둘째가 생기면 물 건너간다는 생각에 불임수술까지 몰래 할 정도로 한씨의 입양에 대한 신념은 굳었다. 그래도 6남매가 될 줄은 한씨도 상상 못했다. IMF 외환위기때 가정이 해체된 영범·영환 형제는 겨울이 다되도록 다른 입양처를 못 구해 ‘우리가 방치하면 얼어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데려왔다.

처음엔 시부모님도 “무슨 뚱딴지 같은 일이냐, 그런 얘기는 하지 말자”고 펄쩍 뛰었다. “예쁜 딸이면 허락하겠다”고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가 두번째 입양엔 “한번이면 됐지”하며 심하게 역정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막내를 입양할 때는 함께 입양원까지 마중나갈 정도로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셨다.

자라온 환경이 다른 아이들이 한가족이 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식구가 한명씩 늘어날 때마다 집안은 팽팽한 긴장의 도가니였다. 치아가 다 썩은 채 오기도 하고 학습부진에 우울증, 도벽까지 있는 상태로 오는 아이들. 밤새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시달리기도 하고 엄마를 서로 차지하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난리통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제적인 면도 무시할 순 없었다. 영범·영환 형제가 왔을 땐 하선이는 다니던 유치원을 끊었고, 큰애가 수험생일 때도 과외는 물론 학원도 사치였다.

처음엔 못 가진 것에 대해 싸웠지만 지금은 필요한 것들, 급한 사람들의 요구를 먼저 충당하며 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있다. 교회에서 다른 교인들이 입던 옷을 받아입어도 슈퍼마켓 가기 전 사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만 합의해 사는 불편에도 아이들은 아무도 불평이 없다.

이제까지 정부에서 받은 지원은 지난해부터 과천시에서 지급한 1인당 5만원씩 월 10만원의 양육비가 전부. 부부는 노후준비 없이 생활비로 모두 쓰고 있다.

한씨 부부는 건강하게 크며 제 몫을 하고 있는 자식들이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 특히 큰아들 명곤이에게 참 고맙다. 혼자 받았을 관심과 사랑을 동생들과 나눠가지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입양하는 사람이 소수여서 우리가 착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나중에 입양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안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 되겠지?” 하며 엄마를 흐뭇하게 했다.



#하나네 집의 명절풍경

하나네는 설마다, 추석마다 이른 아침 시부모님도 모시고 수원 큰 할아버지댁으로 찾아간다. 이젠 9인승 카니발도 비좁다. 점심때쯤 수원에서 돌아오면 이젠 고모들이 올 차례. 어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집에서, 6남매는 사촌들과 길 하나 건너인 제 집에서 모여 논다. 사촌들이 가고 난 후에도 연휴 내내 6남매는 할머니집과 자기집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실컷 먹다 놀다를 반복한다. 윷놀이를 해도, 보드게임을 해도, 연을 날려도, 하다못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해도 6명이 하면 재미있다.

한때는 주렁주렁 애 데리고 시댁에 가면, 아이들이 말썽부리지 않을까, 애들 많아서 음식준비 소홀히 했다고 책 잡히지나 않을까 고모들 눈총이 괜히 따갑게 느껴졌던 한씨. 또 희곤인 어땠나. 꽃무늬 남방 입고 흥얼거리고 다니는 요즘의 녀석을 보면, 처음 친척들을 만나 형 뒤에 딱 붙어 아무 말도 못했던 기억이나 있을까 싶다.

“쟤좀 봐, 쟤좀 봐.” 가뜩이나 완벽주의 기질이 있는 하나가 한복치마가 더러워질세라 손에서 놓지도 못한 채 울상이 되자 가족들은 모두 웃음보를 터뜨리고 만다.

“우리 아이들 키울 땐 너무 힘들었는데, 손자손녀들이라 그런지 그렇게 예쁠 수 없어요.” 1분 걸러 터지는 웃음꽃에 할머니도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영범아, 지난번 했던 홍합초와 삼색 북어보푸라기는 예술이야 예술. 이번 설에도 부탁할게.” “옛, 알겠습니다.” 한때 요리사 꿈을 가지고 요리학원도 열심히 다녔던, 한씨네 집의 ‘살림꾼’ 영범이의 대답이 시원스럽다.

엄마, 아빠가 있다는 것이, 여러명의 형제들과 ‘우리집’에서 지낼 수 있다는, 다른 집에선 아무렇지도 않을 일들이 너무나 고마운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키우며 보낸 고통의 시간까지도 감사한 부모들. 이들 앞에 가족이라는 이름 말고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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