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우린 도대체 어디서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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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1.24 09:08:04
  • 조회: 542
방학이면 뭐가 좋아? 학교에서 해방됐다고 좋아했는데 놀거리가 있어야지. 스티커 찍고, 노래방 가고, 그냥 늦게가지 돌아다니고…. 누구는 10시간 넘게 게임만 한대. 색다르게 놀만한거 없을까? 어르신들, 제발 우리들의 방학을 찾아주세요

‘방 학’. 생각만 해도 엔도르핀이 도는 단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중·고등학생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 땅에 사는 청소 년들은 말한다, 방학이면 도대체 뭐가 좋단 말인가. 학기 내내 공부하느라 지친 심신, 학교에서 해방된 그 꿀맛 같은 시간만이라도 제대로 즐기고 놀거리가 있어야 그게 방학의 묘미 아닌가.
어른들은 알까, 청소년이 친구들과 갈만한 곳이 어디어디일지. 노래방, 피씨방, 보드카페…. ‘나도 이제 쉰세대인지 더는 모르겠네’ 하시겠지만 사실은 그게 전부다. 혹시, 기억을 짜내다 의기양양하게 ‘콜라텍’을 외치실 분이 있을지도. 그러나 답십리에 있었다는 콜라텍 자리엔 이미 오래전 ‘인형으로 체험하는 성인휴게실’이 들어섰고, 이대 앞에 있다는 콜라텍은 자취를 감추었고, 눈에 띄는 건 나이트클럽들뿐이다. 5~6년 전만해도 청소년 대안공간으로 반짝 각광 받던 콜라텍은 짧은 시절만 풍미한 채 ‘성인 콜라텍’으로 놀라운 질적 전환을 이뤄냈다.
그렇다면 방학이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쯤 청소년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금요일 오후, 7개 고등학교와 7개 중학교, 그리고 8개의 초등학교가 근처에 몰려 있는 서울 연신내 일대를 찾았다.
거리를 오가는 상당수가 청소년이었지만, 골목 구석구석에 내걸린 간판은 ‘성인전용’ 투성이다. ‘성인전용 컴퓨터방’ ‘도우미 대기, 성인노래방’ ‘성인전용 휴게실’ ‘성인 비즈니스클럽’ ‘성인전용 오락실’ ….
사복 차림에 아이섀도와 립스틱을 바르고 거리를 배회하는 여고생 두명에게 말을 걸어봤다. 보충수업도 빠지고 신경써서 꾸미고 노는 만큼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이곳저곳을 얘기해줄 것이라 기대했건만,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색다르게 노는 날이… 가끔 호프집에 들어가서 술 마시는 정도? 이제까지 춤추러 가본 적은 단 한번도 없고, 레포츠를 즐겨본 적도 없어요. 나이트클럽에 가기엔 아직 좀 꺼림칙하고, 볼링을 치자니 돈이 없고…. 제대로 놀아보자, 놀아보자 말만 하지 막상 만날 똑같은 코스예요. 스티커사진 찍고 노래방 가고, 그냥 늦게까지 돌아다니고….”
건물 2층에 있는 ‘S’ 커피숍에 들어가봤다. 손님의 3분의 2가 청소년들이다. 매캐한 공기 속에 커피나 레몬에이드를 앞에 놓고 즐거운 수다를 떨고 있다. 성모양(16·고1)은 “사실 커피값이 비싸서 만만히 올 곳은 못된다”고 말했다. 1주일 용돈이 차비 빼면 1만5천원꼴. 한번 놀려면 1만원은 기본으로 깨진다. 분식집 밥만 먹어도 4,000원에 커피값이 5,000원은 하니 1주일치 용돈을 하루에 다 써야 하는 셈이다. “그래도 친구랑 편하게 마주앉아 수다떨 곳이 없잖아요. 한번 오면 그냥 죽치고 서너시간 앉아있다 가는 거죠.”
차라리 여학생들의 사정은 낫다. 연신내에 학원을 등록하러 왔다는 김우석군(17·고2). “여자애들은 보드카페나 스티커 사진 같은 거라도 있죠. 남자애들은 그런 거 안해요. 딱 두가지 뿐이죠. 노래방 아니면 PC방!” ‘U’ 지하 PC방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서든 어택’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로 이미 꽉 들어차 있었다. 카운터 아르바이트생은 “방학이라 그런지 오후 4시만 넘으면 빈 자리가 없다”며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데, 10시간 넘게 게임만 하다 가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 즐기라고 수련관까지 만들어놨는데 왜 갈 곳이 없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강남구의 한 청소년수련관을 찾아가봤다. 수련관을 채운 사람들 대부분은 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을 데리고 온 엄마들. 아이들이 미술이니 과학, 음악 프로그램들을 듣는 동안 엄마들은 수영강습이나 비즈공예를 배우거나 삼삼오오 로비에 앉아 수다를 떤다. 이름은 청소년수련관인데 청소년은 없다. 모집 중인 프로그램 중 중·고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적인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수련관 대다수가 대여섯시면 문을 닫아, 방학 중에도 보충수업과 학원수업으로 바쁜 중·고생은 이용하기가 만만치 않다.
“노래방도 한두번이지 이젠 질려서 도저히 못가겠어요. 보충수업 끝나고 두시간쯤 쉬다가 학원 가면 수업이 10시쯤 끝나는데 그땐 이미 PC방, 노래방, 찜질방, 몽땅 청소년 출입금지구역이 되죠. 청소년수련관은 어느 변두리 구석에 있는지 본 적도 없고요. 방학이래도 좋을 것 하나 없어요.” 김혜진양(16·고1)의 말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즐거운 방학이 실종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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