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우리사회 쓰디 쓴 藥 이 되겠습니다[약재농사 짓는 ‘고집불통 한의사’최병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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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1.16 09:12:39
  • 조회: 368
가만 있으면 평생 편히 먹고 살 만한데, 꼭 일을 벌여 생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천성적으로 일을 좋아하거나 뜻을 세워 인생을 걸고 밀어붙이는 고집쟁이들. 비록 무모하게 보이지만 때론 이런 사람들의 열정이 세상의 물꼬를 돌려놓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나라 한의원 최병학 원장(49)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그가 진료실을 박차고 나온 것은 8년 전이다. 부인 박경미씨(39)도 한의사. 구의동에 분원까지 있다니 제법 잘 나가는 한의원이다. 한데, 최원장은 환자치료는 부인에게 맡겨두고 대신 제주도를 들락거리며 한약 농장을 만들고, 약재가공 공장까지 짓고 있다. 그동안 한의원 수입은 물론 은행 빚까지 빌려 여기에 쏟아부은 돈만 30억원. 아직까지 한약재 농사론 1원 한푼 못벌었다고 했다.

30억원이 어디 작은 돈인가. 월급쟁이들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혹시 너무 곱게 자라서 철없이 일을 저지른 어리보기 아닌가 싶었다. 꼬치꼬치 인생살이를 캐물었더니 생각과는 정반대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천 부평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버스에서 볼펜도 팔아봤고, 신문과 우유배달 등 안해본 게 없단다. 약재상에서 1년 정도 약재 썰기로 먹고 산 적도 있다고. 동국대 한의과대학도 84년 병역을 마치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늦깎이로 들어갔고, 남들보다 졸업도 1년 늦었다. 그 정도 고생을 했으면 이제 그만 편히 살지 왜 한의사가 약재농사까지 짓겠다고 뛰어들었을까?

“중국산 약재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한약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이나 유럽 등에선 동양의학을 대체의학으로 연구하고 있지요. 약재를 이용한 웰빙식품도 우리보다 더 많고 다양해요. 한의사로선 복장이 터질 노릇이지요.”
‘딴 맘’을 먹은 것은 1993년 한·약분쟁 때라고 한다. 당시 허창회 한의사협회장 비서실장을 맡았는데 해외에 나가 동양의학을 살필 기회가 많았다. 두달에 한번 꼴로 미국, 독일, 일본, 이스라엘, 스위스 등을 돌았는데 거기서 눈이 뜨였다.

여러 나라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며 미국의 예를 들었다. 침술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란다. 약재를 이용한 건강산업도 상상을 초월했다. 생리할 때 먹는 차, 미용에 좋은 차, 독성을 제거해주는 차,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차, 은행잎 추출 음료 등 약재를 이용한 차와 음료도 수없이 많다고 한다.

하여, 97년 한의사협회 간부를 그만두고 최원장이 돌아간 곳이 한의원이 아니었다. 전국 팔도의 약초재배지와 한약 연구실. 한약재로 건강약품과 화장품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고 싶었단다. 실제로 2000년엔 임상실험까지 거쳐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를 받아 ‘메모라민’이란 신제품도 개발했다. 스트레스를 억제하는 효과를 가진 일종의 건강식품. 막상 일본과 수출계약까지 마쳤는데 덜컥 약재 가공과정이 문제가 됐다.
“중국산 한약재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약효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재배되고, 가공됐는지 투명한 자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산은 안심할 수준이라고 하지만 해외에선 우리 약재도 믿지 않아요. 약재농사도 산업화해야 될 필요가 있겠구나 생각했지요.”

약재는 재배과정은 물론 씻어내고, 말리는 과정도 중요하다. 너무 많이 씻어내면 약재가 상해서 약효가 떨어질 수도 있고 연탄불이나 유황을 이용해 말릴 경우 영양소가 파괴된다. 종종 약재에서 화학물질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나오는 것은 이런 가공과정의 문제 때문이다.

전국을 돌다 결국 제주도에 유기농 약재농장을 만들기로 했다. 제주도는 육지보다 생육기간이 3개월 정도 길고, 한라산 기슭에는 난대성 식물부터 고산식물까지 다양한 식물을 가지고 있다. 청정지역인데다 화산토는 미네랄이 풍부해 약재 재배지역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라고 판단했다.
“다 잘될 것 같았죠. 농민들에게 약재를 심게 하겠다고 했더니 당시 우근민 제주지사도 두팔을 걷고 도와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제주의 경우 조만간 감귤도 수입되는 상황에 마땅한 대체작물이 없었던 거였죠. 한의사도 중국산의 1.2배 정도 가격에 유기농 약재를 얻을 수 있으니 채산성도 맞고, 건강식품이나 화장품도 생산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 일석사조였죠.”
세상일이 뜻대로만 풀린다면 얼마나 좋으랴. 2003년 제주에서 첫농사를 시작했을 때는 이상기후로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3월에 15일, 4월 14일, 5월 16일, 7·8월엔 40일이나 비가 내렸다. 설상가상으로 태풍 매미까지 덮쳐 제대로 된 약재를 거의 건지지 못했다. 시행착오는 그뿐이 아니다. 마늘과 당근, 파, 감자 정도만 심는 뭍에선 그 흔한 건조기도 없었다. 다 지어놓은 약재를 건조하지 못해 3년 동안 헛농사만 지은 셈. 그래도 가능성은 확인했다.

지난해 1만평에 당귀, 천궁, 작약, 황기, 소엽, 곽향, 구기자, 독활 등 18종의 한약재를 심었고, 올해는 10만평에 40~50종을 심을 예정이다. 앞으론 1백만평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공장도 올해 초면 완공된다.
이제 가공공장만 들어서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겠다 했더니 엉뚱하게도 또 다시 큰 일을 벌일 계획이라고 했다.
“제 마지막 목표는 한방 테마파크를 만드는 거예요. 제주에서 좋은 약재를 이용한 한방치료를 받고, 관광도 할 수 있도록 테마파크를 꾸미는 거죠. 제 아이디어에 일본에서만 3개 그룹이 투자를 하겠다고 나선 상태입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전통의학을 아예 없애버렸다. 지금은 의과대학에서 하나의 교과목 정도로 가르치고 있는 수준. 요즘 우리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얻으면서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의외로 높다고 한다. 이런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의학을 이용한 단기 치료·요양 시설을 만들면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세상과 씨름하며 일을 벌이는 고집불통 한의사. 쓰고 아픈 경험일수록 ‘약’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수천년을 내려온 한의학의 원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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