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나, 반달이 올핸 새출발 할거야 행복하게 살거야[유기견 반달이의 ‘犬생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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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6.01.03 09:49:34
  • 조회: 392
그러니까, 언제 어떻게 이 가게에 오게 되었는지, 반달이는 잘 모릅니다. 그냥 아주 오래 전부터 매일 같이 가게 유리창에 코를 비비고 있었다는 것만 압니다.
반달이는 애견 가게에서 강아지를 낳는 개(모견)입니다. 아주 순종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생긴 말티즈거든요. 사슴처럼 다리가 길고, 키도 크고, 눈동자도 동그랗고 새까맣습니다. 얼마나 새끼를 많이 낳았는지도 반달이는 모릅니다만, 옆집 약국 언니가 그랬습니다. “불쌍한 것, 배가 불러있지 않은 적이 없네” 하고요. 사람은 10개월 동안 뱃속에서 아이를 기르지만, 개는 70일이면 됩니다. 그러니까 한해에 서너번은 엄마가 된 모양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끼니가 되면 사료를 챙겨주던 주인 아주머니가 사라졌습니다. 열밤이 넘고, 스무밤이 넘었는데도 아주머니는 오질 않았습니다. 옆 우리 슈나이저는 “가게가 망했다. 우린 이제 죽었어”라고 속삭였습니다. 버려지면, 개장수에게 잡혀 보신탕이 된답니다. 반달이처럼 나이 든 개들은 주사를 맞고 하늘나라로 가고요. 배가 고픈 것보다 더 무서워서, 반달이는 가만히 몸을 웅크렸습니다.
서른밤쯤 지났을까요. 닫힌 가게 문을 열고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습니다. 개장수가 온 것일까요? 무서워서 컹컹 짖어대는 반달이를, 한 언니가 품에 끌어안았습니다. 동물보호단체 ‘아름품’ 회원이라는 언니는 버둥거리는 반달이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돋보기 안경 너머로 반달이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수술을 하자”고 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아픈 줄만 알았는데, 뱃속에 큰 혹이 생겼답니다. 수술? 반달이가 으르렁거리자 의사선생님은 코를 막았습니다. 이빨이 썩고 입안이 문드러져 냄새가 심하게 났나봅니다. 의사선생님은 “8살쯤 된 모양인데, 출산을 너무 많이 했어. 자궁에 혹이 있고, 이빨 상태도 엉망이야”라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름품 언니는 힘든 수술을 마친 반달이를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가게에선 옆으로 두 바퀴만 구르면 창살에 부딪쳤는데, 여긴 아무리 뛰어다녀도 끝이 없습니다. 친구들도 셋이나 있었습니다. 언니는 신이 난 반달이를 꼬옥 안아주며 “좋은 주인이 너를 잃어버렸나 보구나. 화장실도 가릴 줄 알고, 사람에게 잘 안기는 걸 보면”이라고 했습니다.

두달 뒤, 반달이를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미국에서 왔다는 새 언니는 “말 잘 들으면 미국 데려갈게”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달 뒤, 언니는 반달이를 다시 ‘아름품’ 언니네 집에 데려다주었습니다. 말 잘 들은 것 같은데…. 언니가 외출할 때마다 ‘가지 말고 나랑 놀자’며 컹컹 짖어댔기 때문인가 봅니다. 언니는 반달이에게 ‘분리불안증’이 있다고 했습니다. 반달이는 풀이 죽었습니다.
반달이는 그 뒤 두번이나 더 입양됐다 되돌아왔습니다. 두번째 집에선 반달이가 새끼를 너무 많이 낳았다며 돌려보냈습니다. 세번째엔 멀리 대구까지 갔지만, 그 집의 세마리 고양이와 친구가 되지 못해 돌아왔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반달이는 왕왕 짖고 벽을 마구 긁었답니다.

지난해 11월 말, 눈이 하얗게 오던 날 반달이는 1년여 살아온 ‘아름품’ 언니 집을 떠나 미희 엄마네 집으로 왔습니다. “집 주인이 개를 한마리 이상 못기르게 하셔서 어쩔 수가 없네요.” 아름품 언니의 자동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컹컹 짖어대는 반달이를, 미희 엄마가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네가 반달이구나. 고생 많이 했지?”
미희 엄마네 온 다음날, 반달이는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습니다. 눈을 다 덮을 만큼 텁수룩하게 자란 털을 깎고, 예쁜 옷도 입었습니다. 엄마는 반달이에게 우유를 먹여 주고, 목욕도 시켜주었습니다. 반달이의 큰 눈에 물기가 핑 돌면, 엄마는 하얀 가제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살이 짓무르지 말라고 분도 발라주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사람은, 무서운 게 아니었나요?

이 집에 온 지 한달, 새해가 되었습니다. 반달이의 마른 다리에도 조금씩 살이 올랐습니다. 같이 사는 말티즈 캔디(6)와도 친구가 됐습니다. 6년째 여기 살고 있는 캔디는 장난꾸러기, 말썽쟁이입니다. 반달이가 이불 속에서 잠들려고만 하면, 같이 놀자고 컹컹댑니다. 이젠 엄마 품에 제법 포옥 안길 줄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안아줄 때마다 다리를 뻣뻣이 세우고 버둥거렸거든요. 포근한 엄마 품 속에서, 반달이는 슈나이저를 떠올렸습니다. 나만큼 행복해졌을까? 아님 하늘나라로 갔을까? 엄마가 반달이를 쓰다듬었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이 무슨 죄가 있다고…. 반달아, 올해부터는 새출발 하는 거야. 여기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반달이의 눈 앞이 다시 한번 까무룩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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