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인생 반전’ 女보세요[한해가 남달랐던 3女인의 스토리]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2.29 09:04:32
  • 조회: 386
새해를 열 땐 참으로 많은 날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5일밖에 남지 않았네요. 2005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해였는지요. 새해 첫날 저마다 품었을 꿈과 희망. 얼마나 거뒀고, 또 얼마나 아쉬움 속에 묻고 계십니까. 올해의 끝에서 한해를 돌아봅니다. 2005년이 특별한 해로 기억될 만한 세 사람에게서 한해를 보내는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몸무게 30㎏ 뺀 여대생 오민경씨(24·경기대 미술경영학과)

6학년 때 편도선 수술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몸무게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다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도달한 몸무게는 100.6㎏. 키는 170㎝. 간간이 달리기 등 운동을 하며 다이어트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작심삼일. 손에 쥔 라면과 초콜릿이 끊일 날이 없었다. 낙천적인 성격 탓에 가족들의 걱정과 구박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살을 빼야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계기는 지난해 여름의 유럽 배낭여행. 평소 이상형으로 생각하던 친구를 만났는데 한마디도 건넬 수 없었다. 그놈의 살 때문에 마음조차 전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웠다.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우연히 보게 된 케이블TV의 ‘다이어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냈다.

4월부터 6월까지 음식조절과 운동, 지방분해 주사 등을 맞으며 피나는 다이어트를 했다. 저울은 76㎏을 가리켰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다이어트 하면서 힘들 때마다 응모했다가 탈락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함께 도전한 6명의 ‘동지’들이 큰 힘이 됐음도 물론이다.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다이어트는 계속 진행중이다. 밥은 꼬박꼬박 먹는 대신 저녁시간 헬스장에서 2, 3시간 운동하고 이후엔 식사하지 않는다. 현재 70㎏.

“중학교 때부터 한번도 옷을 사러 가본 적이 없는 여성복 매장을 기웃거리게 됐고, 수영장 갈 엄두도 내게 됐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에 당당해진 것이 올해의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아요. 비만인 사람들은 밖에 나가기가 싫고 나서지도 않게 되는데, 살 뺄 마음을 먹었다면 일단 운동화 신고 집 밖으로 나오세요. 저도 했잖아요.”



국립발레단 ‘해적’ 공연 단역 출연 40대 주부 이정숙씨(41·수원시 영통동)

지난 4월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선 이정숙씨. 엑스트라 출연으로 무용보다 마임에 가까운 동작을 했던 15분이었지만 행복했다. ‘내가 발레복을 입고 이런 큰 무대에 서다니.’

6년 전 딸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간 발레학원. 이씨의 마음도 함께 뛰었다. 초·중학교 때 한국무용을 배웠던 이씨의 마음 한쪽에 잠겨 있던 춤에 대한 갈망이 숨쉬기 시작한 것이다. 성인은 가르쳐 주는 곳이 없어 중·고생들의 클래스를 가끔 한두달 듣다말다 하길 4년여. 재작년 여름 남편이 국립발레단 아카데미에서 성인 아마추어반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주 토요일, 차가 막히면 3시간도 더 걸리는 예술의 전당 연습장까지 힘든 줄도 모르고 콧노래 부르면서 달려가곤 했다.

발레를 하면서는 자세가 곧게 펴지면서 잔병치레도 없어졌다. 또 중학교 미술선생님으로 근무하다가 집에만 있다보니 자기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아 우울했던 마음도 한층 긍정적으로 변했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다 보니 정신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중2인 딸 아이는 무대에 선 엄마를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했다.

“2005년은 정말 시간이 없는 중에도 집안일, 외부일 열심히 했던 ‘피나게 아름다운 해’였어요. 두달을 꼬박 연습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쪼개 사용할수록 많은 일을 알차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주부 중에선 혼자 ‘해적’ 무대에 섰는데 유명한 발레리나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많은 공부를 했던 뜻깊은 기회였죠.”



정규직 재취업 성공한 50대 주부 김종옥씨(50·의왕시 내손동)

김종옥씨에겐 2005년 밝아오는 새해가 암담하기만 했다. 남편이 지난해 여름 시작한 식당은 김씨가 식당일을 도우러 간 지 2달 만인 1월24일 문을 닫았다. 32평 아파트에서 반지하 전세로 옮겨야 하는 처지. 쌓인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면, 다섯식구가 살아나갈 생활비를 벌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결혼 전 공무원으로 8년을 근무했는데, 누구보다 일 열심히 한다고 자부했는데, 사무직은커녕 만만해 보였던 식당보조도 구하기 어려웠다. 가장 선호하는 40대 초반을 한참 넘긴데다 그나마 경험이 없다고 안된다고 했다. 겨우 찾아낸 ‘50세 가능’ 딱 하나. 근로복지공단에서 뽑는 두달짜리 계약직이었다. 계약직이라 안심할 수 없는 입장. 메일이 가능한 곳은 메일로, 팩스가 가능한 곳을 한달 남짓 수십통의 이력서를 보냈다. 이번엔 20대를 구한다는 곳에도 무조건 원서를 들이밀었다. ‘뽑아만 주신다면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그러다가 노무법인인 지금 직장에서 연락이 왔다. 이직하지 않고 오래 일할 사람을 구하고자 젊은 사람 대신 택했다는 대표님의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여기서 해고되면 대책이 없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일했다.

“돈 때문이 아니라도 꼭 재취업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또 직장을 구하시는 분이라면 일단 시작이 중요합니다. 눈높이를 낮춰 취업한 후 경력을 쌓으세요.”

요즘 김씨는 만나는 주부들마다 꼭 일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또 삼남매에게도 자격증을 따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막막하기만 했던 한해. 김씨는 이 한해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꾸었다.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도 있다는데 우린 그나마 다행이죠. 대학 졸업하는 큰딸도 취업했고 내년은 더 좋은 해가 되지 않겠어요?”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