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꼴통’들의 유쾌한 반란[교사들도 두손 들었던 ‘꼴통’들의 무서운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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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2.22 08:51:45
  • 조회: 318
온갖 ‘나쁜 뉴스’들 탓인지 요즘 10대는 괜히 무섭게 느껴진다. 조폭 이름이 연상되는 이른바 ‘신천파’로 불리는 고2 남학생 9명과의 인터뷰. 행여 이들의 심기(?)를 건드리다 인터뷰를 못하게 되면 어쩌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이름이 신천파예요?” 이 말에 아이들이 그만 박장대소를 한다. “신천교란 다리 밑에 우리 아지트가 있거든요. 거기서 밤새 술 마시고 담배 피고 학교 안가니까 어른들이 우릴 그렇게 부르던데요.”

공사판에서 나무목재를 주워와 지붕을 만든 다리밑 아지트는 이들에게 ‘낙원’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골치가 아파 이곳에서 잠을 청한 적도 여러날. 학교는 최소 출석일수를 계산해가며 잘리지 않을 정도로만 나갔다. 어느날 밤엔 순찰차 8대가 들이닥쳐 정신없이 도망친 적도 있다. 학교 선생님도 두손 두발 다 들어버린 학교의 ‘꼴통’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학교 방송에서 상담실 단골손님인 신천파를 하나하나 호명하기 시작했다. 상담실에 들어서니 낯선 남자 한명이 앉아 있었다. 서울 천사운동본부 백두원 사무국장이었다. 골치를 썩이던 선생님들이 급기야 이 학교(동두천 신흥고교) 출신 동문이기도 한 백국장을 ‘구원투수’로 불러 협조를 요청한 것이었다.

백국장은 아이들에게 무조건 담배를 피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술을 마시지 말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대신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자신의 힘들었던 학창시절 얘기를 아이들에게 털어놓았다. 자신의 치부부터 드러낸 백선생님 앞에서 아이들은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복잡한 집안문제, 여자친구 문제,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



그렇게 한마음 한뜻이 된 백국장과 아이들은 자신들을 ‘꼴통’이라 부르는 어른들에게 한번만이라도 본때를 보여주자고 의기투합했다. 지난 6월 중간고사를 앞두고 수련원에 열흘동안 합숙훈련에 돌입키로 한 것. “사실 매일 술마시고 놀기만 하는 것도 지겨웠어요. 단지 그일 외에 뭘 할 수 있는지 몰랐을 뿐이죠.” 김지훈군(17)의 말이다.

그러나 습관이 어디 하루아침에 고쳐지던가. 첫날은 엉망진창이었다. “너희를 믿는다”며 백국장이 잠시 외출한 틈을 타 소주와 족발을 사들고 계속 먹고 마시고 놀기만 한 것. 그러나 아이들은 ‘너희들을 믿는다’던 백국장의 말이 자꾸 떠올라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둘째날부터는 진짜 작심하고 공부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루에 1시간30분만 잠을 잤다. “그게 진짜 가능해요?” 믿어지지 않아 되물으니 최남용군(17)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밤새고 논 적도 많은데 그게 뭐 대순가요.”



한사람이 한과목씩 맡아 친구들을 가르쳐주는 ‘책임제’를 도입하니 자기 혼자 포기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서로 문제를 낸 후 못맞히면 하나씩 옷을 벗는 게임을 해가며 공부했다. 문제를 하나도 못맞히면 알몸으로 문 밖에 서있다 와야 했는데 그러다보면 잠이 확 깼다. 그래도 잠이 안깨면 수련원 옆의 계곡에서 물고기를 한마리씩 잡아왔다. 그러면 그날 아침 메뉴는 당연히 매운탕이었다.



중간고사 성적표를 나눠주던 날, 선생님들은 깜짝 놀랐다. 꼴찌에서 1, 2등을 다투던 김일남군(17)은 20등으로 껑충 뛰어올랐고, 강승찬군(17)은 평균이 무려 30점이나 올랐다. “야, 너 수학점수가 제일 많이 올랐잖아. 그거 다 내 덕인거 잊지마라.” 수학담당이었던 김현군(17)이 승찬이에게 으스댄다. 아이들은 그날 ‘인생의 스승’이신 백국장과 햄버거 파티를 벌이며 자축했다.



이번에 이들은 또다시 기말고사 전쟁을 치렀다. 경찰이 되고싶은 박준필(17)과 현, 승찬이는 같은 꿈을 목표로 셋이서 자체 합숙을 했고, 일남이는 백국장 집에서 먹고 자며 공부를 했다. 마술사가 되고 싶은 일남이는 관련 학과 진학이 꿈인데, 기어이 코피까지 터뜨렸다.



그런가하면 남용이는 백국장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밤 10시30분에 불시전화를 했는데 글쎄 자고 있었더란다. 그러나 남용이는 이제 달라졌다. 그는 “더이상 헛되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겁니다. ‘요리사’란 확실한 꿈이 정해졌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아버지와 둘이 살았던 탓에 요리는 언제나 남용이의 몫이었다. 만날 김치찌개만 끓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김치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다보니 재미를 붙이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요리사가 꿈이라니 아버지가 좋아하시겠어요”. 무심코 물으니 잠시 생각에 잠기던 남용이는 “아버지가 신라호텔 요리사 출신이셨어요. 지금도 살아계셨다면 아마 좋아하셨을 텐데…”라며 그만 울먹인다.



요새도 신천교 밑 아지트에 자주 가냐는 말에 아이들은 또한번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이젠 안가요. 아지트도 지난번 홍수때 떠내려갔고. 그냥 추억의 장소일 뿐이죠.” 이들은 지금 지난 날들을 하나씩 추억으로 만들어가며, 어른들이 모르는 새 자신의 꿈을 만들며 예쁘게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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