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절경의 뒤켠에서 역사를 체험한다 [4·3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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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2.20 09:10:50
  • 조회: 344
“이 굴 안에서는 채 돌도 안된 여자아이가 입을 틀어막은 아빠손 때문에 숨이 막혀 죽었습니다. 여자아이가 자꾸 우니까 울음소리 때문에 밖에서 수색하는 군인에게 들킬 것을 염려한 아이 아빠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거죠.”
제주 북제주군 조천읍 선흘리 ‘목시물굴’. 4·3역사기행에 나선 관광객들이 안내자의 설명에 숙연해진다.
“아이까지 죽이면서 군인을 피해보려 했지만 결국 굴을 들키는 바람에 이곳에서 40여명이 총살당했습니다.” 이어지는 안내자의 설명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여성도 있다.

3만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희생당한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이다. 아름다운 풍광의 뒤켠에 숨어있는 제주섬의 피어린 현대사를 이해하려는 발길이 늘고 있다. 4·3사건 당시 학살터나 주민 피신처를 찾아보는 4·3역사기행은 이제 당당한 문화관광의 한 분야로 자리잡았다.
지난 8일 제주를 찾아 4·3역사기행에 나선 한국가스공사 노동조합 서울지부 마재현 기획부장은 “묻혀졌던 역사를 알 방법이 없었는데 4·3기행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며 “제주의 다른 관광지를 보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집단으로 학살당해 묻힌 현장을 직접 보고나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4·3의 진실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4·3기행에 나서는 단체도 다양하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수학여행단, 노동조합 등은 단골손님이다. 국회의원도 동참하고 있다. 올해에는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 등 국회 과거사 청산 모임이 4·3기행에 나섰다. 김재윤 열린우리당 의원은 제주로 떠나는 생태문화여행을 기획, 제주의 생생한 역사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일부러 제주를 찾아 4·3기행에 나서는 외국인도 많다.

4·3역사기행은 지난 1989년 제주4·3연구소(소장 이규배 탐라대교수)가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4·3은 용어 자체가 금기였다. 단순히 4·3유적지를 돌아본다는 여행이었지만 정보형사가 따라붙었다. 4·3연구소는 제주 전역에 흩어져있는 4·3관련 유적을 알리는 행위 자체가 역사 바로알기라는 생각에서 역사기행을 꾸준히 전개했다. 4·3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일은 4·3역사의 대중화에 기여한 소중한 운동이 됐다.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찾는 아름다운 관광지가 사실은 4·3 당시 주민들을 학살한 장소로 드러나면서 제주관광은 곧 역사교육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성산일출봉, 표선백사장, 정뜨르비행장, 정방폭포, 함덕해수욕장, 천제연폭포, 사라봉 등이 그곳이다. 성산일출봉은 토벌대에 의해 오조리 부락민 100여명이 학살당한 곳이다. 표선백사장에서는 당시 표선초등학교에 수용됐던 중산간 부락 주민이 집단으로 희생됐다. 정방폭포는 4·3 당시 산남지역에서 가장 큰 학살터이며, 함덕해수욕장은 대대본부가 주둔했던 곳으로 총살이 집행되는 현장이다.

4·3연구소는 지금까지 4·3역사기행에 참여한 인원이 400여회에 걸쳐 4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4·3역사기행은 보통 이틀에 걸쳐 이뤄진다. 하루는 제주 동부지역을, 하루는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일정이 짜여진다. 제주 동부지역은 북제주군 선흘리 낙선동성터~선흘주민 피신처~다랑쉬동굴~북촌리 애기무덤~곤흘동~제주시 관덕정 순서가 보통이다. 서부지역에는 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송악산~섯알오름 학살터~큰넓궤~이덕구 산전 등이 있다.

4·3사건이 7년7개월 동안 계속된 사건인 만큼 제주도 전역에 당시의 상처가 새겨져 있다. 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제주도민 27만여명 중 최소 3만여명이 희생됐다. 불에 타버린 마을도 150여곳에 이른다.

제주섬 곳곳에 산재한 다양한 유적지는 4·3의 진상규명과 더불어 당시 실상을 증빙하는 또다른 형태의 근거다. 통곡의 4·3역사를 후손에게 생생히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나면서 4·3유적은 마구 파괴되고 훼손되어 없어지고 있다. 4·3당시 대나무숲과 우물, 정자 등이 그대로 남아있어 반세기 전의 비극을 처연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잃어버린 마을이었던 서귀포시 영남마을은 대규모 펜션이 들어서면서 사라져버렸다. 낙선동 성터, 녹하지 주둔소, 큰넓궤 등도 마찬가지다.
4·3역사기행은 4·3연구소 연구원들이 주로 안내를 맡고 있다. 유적지 해설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4·3연구소 오승국 사무처장은 “4·3역사기행이 인기를 끌면서 대형 여행사에서도 안내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오곤 한다”며 “역사기행을 통해 4·3의 진상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4·3유적은 현장에 있는 역사박물관”이라며 “4·3기행이 기획과 진행에 있어 더욱 전문적이고 절실한 방향으로 한차원 높여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4·3연구소 장윤식 책임연구원은 “4·3유적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며 “구한말부터 내려온 제주항쟁의 역사와 제주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도 덧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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