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창현이의 특별한 크리스마스[소년원생, 연극 ‘크리스마스 캐롤’ 출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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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2.09 09:25:04
  • 조회: 331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 전날 유령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여행을 하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인색했던 마음을 치유하게 되는 따뜻한 동화 ‘크리스마스 캐롤’. 매번 크리스마스 때면 단골로 무대에 올려지는 이야기다.

무대에 오를 날을 기다리며 마무리 연습에 한창인 정은성, 김창현, 원대현군(왼쪽부터).

지난달 30일에도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음악당의 연습실에선 어김없이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의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울예술단 단원들의 연습현장. ‘구세군 2’를 맡은 창현이는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눈도 제대로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모든 세상이 달라 보여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새로운 내 인생 난 이제부터 시작할 거야….” 스크루지의 노래는 창현이의 맘속에도 그대로 메아리쳤다.



#열여섯, 순박했던 시골 소년

김창현(안산예술종합학교 연극영화과·20). 미래의 꿈으로 벅차야 할 스무살. 그러나 창현이의 이름 앞엔 꼬리표가 붙어있다. 비행으로 보호처분을 두번 받은 소년원생이라는.

창현이의 고향은 따뜻한 남도의 들녘 해남. 눈 감으면 아련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일찍 집을 나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 간질을 앓다가 논물에 빠져 익사한 어머니. 가족은 팔순 할머니와 두살때 앓은 소아마비로 늘 집에만 있던 연년생 누나가 전부였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300원인가 했던 차비를 군것질로 까먹고 2시간을 걸어 집에 오면 늘 반겨주던 할머니와 누나가 있었다. 세식구가 잘 살아보겠다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신문도 열심히 돌렸다. 하지만 간신히 모은 돈은 잃어버린 오토바이값을 물어주는 데 들어가고 말았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3월. 몰래 열차를 숨어 타고 무작정 상경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화려한 서울. 돈을 벌고 싶었다. 케이크를 사서 할머니 생신상 한번 근사하게 차려드리는 게 소원이었다. 서울역에서 담배 빌리려고 2명의 또래들에게 말을 건 것이 잘못이었다. 이들이 타던 차는 훔친 차였고 공범으로 몰려 얼떨결에 소년원으로 가야 했다. 보호자가 확실치 않다는 게 이유였다. 서울에 온 지 단 3일 만이었다.

소년원에서 나와선 할머니가 알려주신 목사님 댁에 있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후 독립해 주간엔 학교를 다니고 야간엔 PC방, 아르바이트, 노래방, 당구장, 족발집, 호텔 웨이터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학비와 용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6월, 소주 3잔만 먹어도 필름이 끊기는 창현이는 술에 취해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연극, 한줄기 희망

전국 소년원에서 예술에 소질 있는 소년원생을 선발해 특기적성교육을 실시하는 안산예술종합학교는 창현이에게 새 삶을 안겨줬다. 서울원에 있던 창현이는 지난해 여름 우연히 팸플릿을 보고 이곳에 지원했다. 대부분 절도, 폭력, 강도 등으로 6∼24개월의 보호처분을 받은 12∼20세의 청소년들. 실용음악과, 연극·영화과, 창작미술과, 영상사진과 등 4개과로 나뉘어 수업을 받는데 창현이는 연극·영화과를 지원했다. 어렸을 적 주일학교에서 단짝 친구와 요셉과 마리아역을 했던 때가 불현듯 생각났다.

뜻밖의 곳에서 뜻하지 않게 시작한 연극. 연극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아닌 다른 삶을 살 수 있어 좋았다. 지난날도 아픔도 잊을 수 있었다. 지난 10월 서울예술단이 학교에 와 객원단원을 뽑은 오디션은 꿈만 같았다. 프로 배우들과 함께 연습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 합격했다는 소식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10분만 차를 타도 멀미를 하는 ‘해남 촌놈’은 요즘 1주일에 두번 예술의 전당까지 왕복 두시간을 달려도 즐겁기만 하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스크루지씬가요, 말리씬가요.” “너무 빨랐어. 마이크 있으니까 너무 힘주지 말고.” “다시 한번 해 볼게요.”

쉬는 시간, 창현이는 선배를 붙들고 가르쳐 달라고 매달린다. 수십번 반복되는 대사. 창현이는 이를 악물고 연습 중이다.

뮤지컬 마지막 공연이 끝나는 12월30일은 창현이가 ‘졸업’하는 날이기도 하다.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손꼽아 왔던 날. 얼마전 수능을 치른 창현이는 ‘졸업’ 후엔 연극영화과 진학을 준비할 생각이다. 이제 다시는 어두웠던 과거를 돌아보기 싫다. 배우가 되는 앞날만을 바라볼 터이다.

“17살 가출 전으로 생각하고 새출발할 겁니다. 내년 2월엔 할머니 생신상도 차려드리고요….”

할머니도 누나도 공연을 보러 올 형편이 못된다. 구세군 창현이를 눈여겨볼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연습하다 잠든 창현이는 오늘도 무대에 오르는 꿈을 꾼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창현이가 이제껏 받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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