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나는 예술사진작가 아닌 ‘사진가’[안정환·장동건 타임지표지 촬영한 박기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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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2.08 09:27:42
  • 조회: 489
10년 된 대형 카메라로 거리에서 사진 작업을 하던 중 덮어쓰고 있던 천을 들치고 웃고 있는 박기호씨.

아버지를 추억하면 영사기가 촤르르 돌아가듯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함께 펼쳐진다. 화가 박고석(1917~2002). 부산 피난시절 이중섭, 한묵 등과 동인전을 열며 시인 구상을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들과 함께 남포동 시절을 구가했던 인물. 그의 집엔 식객이 끊이지 않았다. 사진가 박기호(44). 그에게 다가가려면 그 집안의 내력부터 살펴봐야 한다.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무수한 단상은 사진가 박기호의 힘이다.

화가 박고석의 셋째 아들, 박기호. 건축가 김수근을 외삼촌으로 둔 그는 특별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산 피난시절, 부모님의 신혼집에 이중섭이 3개월간 더부살이를 했다. 이때 이중섭의 스케치들은 불쏘시개의 비운을 당했다. 가끔 ‘아 어머니가 그때 그 그림들만 잘 모아뒀어도….’ 한탄을 하지만 그도 견줄 만한 사건의 주인공이다. 고은 시인은 오랫동안 그의 집에서 살았다. ‘새노야’를 비롯, 원고지에 씌어진 시의 원본들은 황당하게 사라졌다. 원고지 뭉치째 화장실에 갖다두고는 요긴하게 써버린 것이다.



고전의상연구가인 어머니와 화가인 아버지를 둔 그는 두 형과 누이와는 달리 그림 그리는데는 젬병이었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일회용 카메라

일찍이 미국 유학을 했던 어머니. 박기호는 잠시 귀국한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갔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때였다. 사진가 박기호가 가졌던 최초의 카메라는 어머니의 선물이었다. 일회용이었지만 상상하지 못한 기쁨을 느꼈다. 일년을 꼬박 신문을 돌려 두번째 카메라 캐논 FTB를 샀다. 125달러였다. 그의 눈에 포착되는 모든 것은 카메라의 사각 프레임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미술 명문 로드아일랜드 스쿨오브디자인(RISD)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하던 그에게 우연히 기회가 왔다. 음식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의 구인 광고를 보고 짐을 쌌다. 뉴욕행을 호되게 꾸중한 선생님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하는 놈이 음식 촬영 인턴을 하느냐”며 “너는 매그넘에 가야 한다”고 했다. 매그넘은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세운 포토에이전시로 현재까지 그 멤버들이 최고의 작업을 하고 있다.

예정된 인터뷰를 끝내고 한참을 걷다가 무심히 고개를 들고 보니 매그넘 빌딩 앞이었다. 무작정 계단을 올라갔다. 인턴을 하고 싶다는 나에게 “약속을 했느냐” “누가 추천했느냐” 질문이 계속되었다. 그냥 돌아갈 순 없었다. 포트폴리오를 내밀었다. 포트폴리오를 보던 직원이 대뜸 브루스 데이비슨을 아느냐고 물었다.



데이비슨의 네거티브 사진을 정리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가장 유명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데이비슨의 네거티브 필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1950년대부터 50년간 대가의 작업과정을 하나하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3개월째, 작업이 끝나갈 즈음 고장난 밀착기계가 눈에 띄었다. 40년은 족히 되어 회사가 없어져 데이비슨도 포기한 상태였다. “내가 한번 고쳐보겠다”며 집요한 설득을 한 끝에 “고쳐보라”는 마지못한 허락을 받았다. 부품을 구해 3일 만에 고쳤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기호, 앞으로 내 조수해라.” 그의 조수가 되려면 조수 경험이 5년은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의 조수가 되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작업은 물론 기업 브로슈어까지 현장에서 모든 작업과정을 트레이닝 받았다.



데이비슨을 떠나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다. 사진가로서의 시작이었다. 대우도 좋았다. 미국생활 15년 만의 여유도 잠시,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의 시위 장면이 수시로 TV에서 흘러나올 때였다. 데이비슨의 추천으로 뉴스위크와 타임지 파견기자로 1987년 6·29선언 다음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탄과 날아오는 수백개의 돌…. 사진기자가 되어 돌아온 고향에서의 첫 환영인사였다. 아찔한 순간도 많았지만 가장 열정적으로 일하며 행복했던 때였다.



#나는 사진가다

유명한 사진작가는 많이 있지만 유명한 사진 작품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박기호는 그 반대의 경우다. 박기호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작업은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월드컵 때 타임지를 장식한 안정환, GOD, 그리고 최근 타임지 아시아판 표지 인물 장동건까지 무려 네번의 타임지 표지를 촬영했다.

포브스, 비즈니스 윅, 포춘 등의 저널 사진을 찍는다. 스튜디오 키스톤을 운영하며 Coca Cola, AT&T, 삼성전자, KTF 등 국내외 기업 브로슈어와 지면 광고를 촬영하고 있다. 저널리스트이면서 광고 사진을 찍고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다. 모두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그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기회는 늘 우연히 찾아왔다. 그래서 운 좋다는 말도 듣는다. 그런데 왜 그만 유독 운이 좋은 걸까. 그는 데이터도, 경험도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좋은 사진을 만들었을 때의 과정은 잊어버린다. 언제나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 초인적인 인내와 지치지 않는 노력, 끝을 보는 추진력은 찾아온 운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역시 운도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



그의 사진은 이야기를 담고 살아움직인다. 사람 사진에는 그 사람의 삶의 현장이, 거대한 공장 사진에는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이 함께 있다. 그는 ‘사진작가’라는 호칭에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그의 작품이 예술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그냥 ‘사진가’ 박기호로 불리길 원한다.

“사진은 곧 나다. 사진을 보면 내 못난 얼굴도, 악착같은 나도 보인다. 사진쟁이는 악독·인정·따뜻함·냉정·인내심 등 모든 기질이 다 있어야 좋은 사진가가 될 수 있다.”



2007년은 카메라를 잡은 지 35년, 한국에 온 지 20년 되는 해다. 첫 개인전을 준비중이다. 지난 주말엔 개인전을 위해 구례 5일장을 다녀왔다. 이틀 촬영을 하고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못찍었다. 촬영을 접고 찾아간 사진쟁이 친구집에서 만난 야생화 파는 아주머니는 그가 원하던 캐릭터였다. 이틀동안 쓴 필름은 노력한 과정으로 치면 아까울 게 없다. 하루하루 다른 날들로 채워가는 그는 매일이 재미있다. 재미있는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어떻게 넘어갈지는 모른다. 지금은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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