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봄은 언제 오나요?[트럭노숙 하는 박용수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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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2.06 08:50:17
  • 조회: 334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경기 고양경찰서 김주성 경사(50)는 천천히 마을을 돌며 순찰중이었다. 사람들은 공원에서 평화롭게 조깅을 하거나 강아지를 데리고 산보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미심쩍은 장면이 김경사의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꼬마아이가 주위를 살피더니 슬금슬금 트럭 뒤편으로 숨어드는 것이 아닌가. 벌써 몇달째 공원 옆에 꼼짝 않고 주차돼 있던 트럭이었다.

‘나쁜 장난이라도 하려는 거 아니야.’ 조용히 꼬마를 따라간 김경사는 곧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조그만 1t 트럭, 좁은 짐칸에선 병색이 완연한 다섯식구가 서로 부둥켜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주변에 뒹구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라면 봉지들. 이런 생활이 하루 이틀 이어져 온 것이 아닌 게 분명했다. 일산 아파트숲 변두리에서 외롭게 추위와 싸우던 ‘트럭가족’. 이들이 지역사회에 알려지게 된 건 이날부터였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던 그날

막내 정빈(12)이가 눈이 퉁퉁 부어 돌아왔다. 엄마 홍기월씨(45)는 모른 척했다. 그렇게 가지 말라고 일렀건만, 정빈이는 또 예전에 살던 아파트 문앞에 쪼그리고 앉아 울다 온 모양이다. 마음 같아선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아이들 학교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엄마는 아파트에서 쫓겨 나올 무렵 머리 앞쪽이 하얗게 세버렸다. 가스도, 전기도 모두 끊긴 아파트. 아이들은 촛불을 켜고 공부해야 했다. 그렇게 반년을 살았다. 그리고 지난 7월, 경매 집행관들이 들이닥쳤다. 칫솔 하나 챙기지 못한 채 황망히 쫓겨났다. “그날따라 비가 그렇게 많이 내렸어요. 한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오갈 데 없는 이들은 결국 트럭에라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것마저도 이미 압류된 상태였지만.

여름엔 버틸 만했다. 그러나 두달이 지나고 9월에 접어들면서 새벽이 되면 창문에 맺힌 이슬로 물이 줄줄 샜다. 엄마는 1.5ℓ병 8개를 주워왔다. 공원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데운 후 끌어안고 잤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그 물로 아이들 머리를 감겨 학교에 보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매일 교칙 위반으로 벌을 서야 했다. 새학기가 시작됐는데도, 하복을 입고 등교했기 때문이다. 고2인 큰딸 신혜(17)와 중3인 둘째 두빈이(15). 한창 예민할 시기의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집안 상황이 알려지는 게 창피해서 차라리 매일 벌 서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누가 볼세라 빙빙 돌고 돌아 후다닥 트럭 안에 숨어 들어오곤 했다.

불행은 왜 힘없는 자들만 연달아 노리는 걸까. 이들의 고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 10월, 아버지 박용수씨(48)가 트럭 앞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것이다. 구강암 대수술을 받은 후 요양조차 못한 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그는 급기야 대동맥이 파열됐다. 하필이면 그날, 큰딸 신혜도 교통사고를 당해 동시에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김경사와 일산천사운동본부의 도움으로 그나마 조금 모인 성금이 순식간에 수술비로 날아갔다.



#1년 전만해도 평범한 일산시민

이들은 불과 1년 전만해도 평범한 일산 시민이었다. ‘달빛마을’이란, 이름도 예쁜 아파트에 살았고 아버지 박씨는 단지 내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박씨는 쇳소리가 섞여나오는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남들이 알면 기절할 정도로.” 입에서 원인 모를 피가 질질 흐르는데도, 피비린내를 없애려 껌을 ○○○어가며 일했던 그다. 모두 가족들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서였다.

박용수씨가 트럭앞에 붙여놓은 성경구절

막내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판막을 앓았고, 큰딸은 골반이 뒤틀려 각종 여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막내를 업어키우느라 고생한 아내는 반신마비 증세가 나타난 후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온 가족을 휩쓴 병마에도 어떻게든 버텨왔던 이들. 그러나 지난해 봄, 아버지가 구강암에 걸리자 손쓸 틈도 없이 집안이 무너졌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하루 아침에 비참한 트럭노숙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박씨는 뜻밖의 말을 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아내의 진면목이 보이더군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동네 교회에서 쌀 세 포대를 갖다줬던 지난 추석,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이던 아내는 날이 밝자마자 더 어려운 독거노인분들에게 드리라며 두 포대를 돌려보냈다. “사실 그때 우린 라면마저 떨어져 유통기한 2년 지난 분유를 타먹으며 연명하고 있었거든요.”

아픈 아빠를 걱정하는 아이들도 부모님 앞에선 시종일관 밝은 표정이다. 박씨가 하교시간에 맞춰 공원 앞 횡단보도에 앉아있으면,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반갑게 뛰어온다. “옷도 남루해서 아빠가 창피할 텐데 뭐하러 멀리서부터 손을 흔드냐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며 정색을 합디다.” 그의 얼굴에 어느새 천천히 미소가 피어올랐다.

괴로운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트럭으로 ‘이사’ 온 후 얼마되지 않아 둘째 두빈이가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집, 아니 트럭에 돌아오지 않았던 것. 그러나 1주일쯤 지나자 두빈이는 울면서 돌아왔다. “친구집에서 따뜻하게 자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도 추운 트럭에 있을 엄마 아빠 생각을 하니 차마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면서. 넋이 나갈 만큼 초라한 현실. 넉달 동안 이들이 버텨올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은 가족이었다. 그러나 점점 추워지는 겨울날씨. 다섯가족의 온기만으로 이 겨울을 버티기엔 바람이 너무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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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연숙 05.12.06 10:10:24
    동사무소에 영세민자격을 신청하셔요 우리나라도 정치를 못한다지만생활보조비를 지급하는 일들은 참 잘한다고 생각합니다.동사무소 가면 자세한 예기를 들으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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