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일흔명 장애아의 어머니[홀트 위탁모 19년 정년퇴직하는 김재석씨]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1.24 09:07:03
  • 조회: 356
“아이구~ 볼품없고 쬐그마한 늙은이를 인터뷰해서 뭐 할라꼬…” 65세의 나이로 정년퇴직하는 홀트모 김재석씨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대뜸 돌아온 말이었다.
“별 말씀을 다 하세요. 인물보고 하려면 연예인에게 전화를 걸지 제가 왜 할머니께 연락을 했겠어요. 애 키우는 일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지 알려주셔야 홀트모 지원자도 생기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 할머니는 여전히 망설이는 듯 말씀이 없었다.
다음날, 조그마한 키에 핑크색 스카프를 얌전하게 두른 할머니 한 분이 찾아왔다. 72명의 장애아를 길러낸 ‘엄마’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곱고 단아했다.
“볼품이 없기는요! 곱기만 하시네요. 언제부터 홀트모 봉사를 하셨어요?”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해, 그러니까 1986년이네요. 홀트모 봉사를 하는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어린 눈망울이 어찌나 이쁘고 초롱초롱하던지 나도 이런 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친구가 소개해주었어요.” 그때부터 시작된 홀트모 봉사가 올해로 19년째. 그동안 72명의 아이들을 길러냈다. 이상하게도 김씨의 손을 거쳐간 아이는 2명을 빼고 모두 장애아였다.
“처음에는 건강한 아기를 받았어요. 그런데 3번째부터는 아픈 아이가 왔어요.” 아픈 아기를 잘 본다는 소문이 나면서 장애아는 대부분 김씨 차지가 되었다.
“부모가 자식을 선택할 수 없잖아요. 주는 대로 받고 정성껏 길러야지…”
그는 장애아를 기르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을 때가 많았다”고 고백했다. 아이는 몸이 아파서 울고, 김씨는 마음이 아파서 운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니고, 돈벌이가 되는 일도 아닌데, 왜 이같은 고생을 사서 할까 싶었다.
“그냥 아이가 좋았어요. 아이들의 보드라운 뺨을 비비고 있으면 세상 근심이 녹아나는 것 같았어요.” 김씨는 그저 자신이 좋아서 한 일이라며 겸손해했다.
김씨가 남의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가족들은 불편하지 않았을까? “가족들이 불편해하거나 반대했다면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는 자신이 대표 ‘홀트모’일 뿐 전 가족이 ‘홀트엄마’라며 환하게 웃었다.
“재작년 미국에 가서 정미와 재경이를 만났어요.” 정미는 마디마디 관절이 약해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아이였고, 재경이는 폐이형성증으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다가 미국 가정에 입양된 아이다.
“두 아이가 좋아져서 정상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걸 보고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안아보니까 그때 그 정미, 재경이 그대로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아이들의 인생으로 보면 내게 머물다 간 시간은 극히 짧지만 내 머릿속에는 하나하나가 자식으로 각인돼 있다”고 말했다. 1986년 첫 아이 요섭이부터 막내 주희까지. 72명 아이들의 사진첩이 그에게는 가장 큰 보물이다. 그는 아침마다 사진첩을 꺼내놓고 행복한 가정에서 건강하고 밝게 자라라고 기도한다.
19년 동안 72명의 장애아를 길러낸 ‘입양아의 어머니’ 김재석씨. 그를 보고 있노라니 ‘진정한 성공과 행복은 봉사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착한 마음을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알아보고 오는 25일 상을 준단다. 김씨는 “고생하는 홀트엄마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상을 받느냐”며 송구스러워했다. 그 모습까지 단아하고 고왔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산속에 05.11.24 18:28:02
    마음이 아름다운 세상을 밝게 만드는군요 .요즈음 세상에 보기 드문 엄마 화이팅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