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우린 장애인이 아니라 재능인 이랍니다[연예인 꿈꾸는 장애우 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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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1.22 08:52:04
  • 조회: 286
#프롤로그

세 사람이 길을 간다. 부지런히 휠체어를 미는 강민휘(25). 휠체어에 앉아서도 민휘와 수현이를 살피는 송상근(32), 두 사람을 부지런히 쫓아가는 박수현(22). 몸은 불편하지만 제 몫의 무대는 있을 거라며 연예인을 꿈꾸는 세 사람. 보통사람들에겐 쉽게 오를 수 없는 높은 벽이자 누구나 부러워하는 ‘무대위의 주인공’들이 종횡무진하는 연예계. 장애인들이 접근하기엔 너무나 힘들어 성역과도 같은 곳. 그 멀고 먼 무대를 향해 걷고 있는 이들, 길은 험난하지만 세사람은 불평 한번 하지 않고 오롯이 걸어가고 있다.

다운증후군, 뇌성마비, 선천성 골형성부전증과 왜소증. 이런 장애을 극복하고 연예인을 꿈꾸는 김민휘(왼쪽), 송선근 박수현(가운데). 세상엔 우리몫의 희망도 있을 거라고 믿는 이들의 얼굴이 너무나 건강하다.



#아침 햇살 같은 민휘의 방

“여러분도 열심히 노력하면 저처럼 영화배우가 될 수 있어요.”

기립박수가 터졌다. 괴산 청소년 문화축제에 초청되었을 때의 일이다. 수백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데, 민휘는 늠름하게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25년을 살았지만 여섯살배기 아이의 지능을 가졌단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다가 갑자기 십년 전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버린다. 그런 그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가장 적절한 표현으로 자기 생각을 완성해낸 것이다. 영화 촬영을 끝내고부터 시작된 변화다.

생후 6개월, 사람들은 그에게 내려진 다운증후군이란 판정을 유치원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엄지발가락에 박힌 티눈처럼 졸졸 따라 붙였다. 장애우가 전체학생의 20%가 넘는 나사렛대학교에 입학할 때도 정신지체아라는 이유로 몇번의 퇴짜를 맞곤 했다. 스물 한번째 염색체가 남들보다 한개 더 많을 뿐인데…. 민휘가 가진 또 하나의 염색체는 ‘행복 염색체’라고 일러준 어머니조차 영화배우로 캐스팅되었을 때, 상처받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걱정부터 한짐지고 시작한 길이다.

배우는 그의 꿈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꿈이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교내 행사에서 노래부르고 춤추며 열심인 민휘를 보고 대학교수님은 장애우 연예인 지망생을 뽑는 연예기획사의 오디션을 주선해주었다. 그리고 1년 후 기회가 왔다. 오디션과 12번의 미팅 끝에 박흥식 감독의 ‘말숙씨 사랑해요’의 조연배우로 캐스팅된 것이다. 영화 촬영 중 걱정을 하는 감독님의 물음에 민휘의 대답은 늘 한결 같았다. “힘들어도 참아야죠, 영화배운데….” “할 수 있어요. 열심히 해야죠.” 정상인보다 떨어지는 암기력과 인지능력 등 그는 선입견을 모두 벗어버리고 8회분의 신을 12회로 늘리며 자신만이 알아주던 재능을 세상에 내놓았다.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지고 사인 요청도 많다. 보조개가 파이며 이내 활짝 꽃이 피는 그의 웃음이 점점 많은 사람들을 찾아가는 요즈음이다. 신기하게도 영화 촬영이나 영화와 관련된 인터뷰에서는 정말 다운증후군이 맞나 할 정도로 말짱해진다. ‘행복해요’ ‘감사해요’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며 민휘는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다. 다운증후군이나 최초의 장애우 영화배우라는 수식어를 모두 내려놓고 영화배우 강민휘로.



#구름 속에 가려진 무지개 빛 선근의 방

“안녕하세요 송상근이에요.”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온 날 밤 한 통의 메일이 왔다.

“말씀 드리지 못한 게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을 돕고 싶어요. ~제 삶을 통해서 단 한 사람에게라도 밝은 빛을 비춰 주고 싶어요. ~덧붙여서 제가 좋아하는 클래식(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을 보내니 들어 보세요. 전 모차르트는 가벼워서 좋아하진 않지만, 이 곡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전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아주 깨끗한 슬픔’을 느껴요.~”

너무도 해맑은 그의 웃음은 오히려 슬픈 빛을 띤다. 그 웃음이 그를 오디션에 통과하게 했단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번, 특별한 외출이 시작되었다.

연기지도를 받으면서부터 나이는 어리지만 함께 연예인을 꿈꾸는 민휘와 수현이도 만났다. 영화배우로 민휘가 인터뷰를 할 때면 부럽기도 하고, 자꾸 용기가 줄어들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혼자만의 세상을 걸어나와 남들과 함께 사는 법을 이제야 배우고 있다. 연기수업은 그에게 있어 인생수업이다. 이제 한발짝, 세상 밖으로 나왔다. 민휘처럼 ‘칼스마 있는 배우’가 꿈이 아니다. 만약 뇌성마비 역할을 맡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고 잘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짧은 대답에도 얼굴을 수십번 움직이며 힘겹게 말을 토해내는 그와의 대화는 끊어지기 일쑤였다. NGO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말을 세번만에야 겨우 알아들었다. 그는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과 차이코프스키 6번 교향곡 비창을 즐겨 듣는다. 그리고 시를 쓴다. 입에 볼펜을 물고 컴퓨터 자판을 하나하나 찍어가며, 시나리오도 쓴다. 그렇게 훌쩍 새벽 2~3시를 넘긴다. 그는 왜 배우를 꿈꿀까?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의 장애는 그와 사회의 작은 연결선들을 끊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시를 쓰며 강가에도 갔다가 봄빛 닮은 사랑도 하고 흰눈이 내리는 날 사랑을 잃고 눈보다 더 시린 눈물을 흘리며 누군가 들어줄 사람이 올 때까지 자꾸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송상근이에요.”

언제나 이름보다 앞자리를 차지하는 뇌성마비라는 수식어에 배우 지망생이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달고부터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수선화를 닮은 수현의 방

그녀의 몸은 새털처럼 가볍다. 살짝만 부딪혀도 바스라지는 그녀는 전동 휠체어에 딱 맞는 크기의 몸만을 겨우 가지고 있을 뿐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장애도 그녀의 예쁜 목소리는 고이 두었다.

여러번의 수술로 18살에야 중학교를 마쳤다. 한번도 자신의 몸으로 일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해봤다. 자격증을 딴다거나 무엇을 배운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유리 같은 몸은 소녀의 꿈마저 유리관 속에 가두고 말았다. 스물둘, 사회복지학과 진학을 준비하는 여고 2학년이다. 성우가 되기 위해 연기 수업을 받으면서부터 그녀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기업에서 지원하는 장학생이 되어 컴퓨터 학원도 다니고 있다. 상계동 집에서 전동 휠체어에 의지한 채 1시간30분을 쉼없이 움직여 연기지도를 받은 지 2년, 폭우가 쏟아져도 길이 꽁꽁 얼어도 빠짐이 없는 열성으로 ‘사랑의 소리 방송’ 고정 리포터가 되었다. 작은 시작이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욕심을 낸다. 자신의 이름을 단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되고 싶다고.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다. 컴퓨터 학원 가는 길에 접촉사고가 났다고 한다. 깁스를 했다는데 그 작은 몸 어디가 어떻게 되었을까. 본격적인 성우로 활동할 준비도 끝나가고 있는데…. ‘할 수 있다.’ 그동안 쌓은 자신감이 그녀의 몸을 단단히 감싸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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