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절벽에 길을 놓다 정상에 꿈을 꽂다 [거벽 개척등반가 김세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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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1.10 09:09:22
  • 조회: 501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도 없고 세상의 주목을 끌지도 못했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많은 산사나이들이 그렇듯이 거벽 개척등반가 김세준씨(36)도 ‘길없는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가 오르는 암벽 하나하나에는 ‘대한민국’이 새겨지고 있다. 엄홍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산등반가를 배출한 한국이지만 유독 거벽등반에서는 세계 무대에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것이 현실. 세계는 지금 고산등정보다는 얼마나 독창적으로 힘든 거벽등반 루트를 개척했느냐에 더욱 관심을 쏟는다. 그는 개척등반을 하는 국내에 몇 안되는 산악인이다.



#입문 8년만에 신루트 잇따라 열어

김씨가 처음 암벽등반에 빠진 것은 1998년. 내로라하는 등반가들에 비해 시작이 한참 늦었다. 그의 타고난 체력과 성실성은 곧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98년 여름 그의 동료였던 김형진·신상만·최승철씨가 인도 탈레이사가르봉에서 불귀의 몸이 되자 크게 상심했지만 동료들의 뜻을 잇기 위해 더욱 훈련에 열중했다. 99년 캐나다의 부가부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그의 해외등반은 시작됐다. 2000년에는 김점숙·채미선 여성 2인조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국립공원 조디악 등반을 며칠 비박 끝에 성공했고 그해 에델바이스배 전국빙벽대회에 출전해 난이도부문 1위를 차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파키스탄의 오우거섬(5,600m)의 신루트를 개척했다. 신루트 개척은 몇배로 힘이 들었다. 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한 김씨는 혹독한 체력훈련에 돌입했다.

“50㎏을 매달고 턱걸이를 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30㎏ 배낭을 매고 수락산을 뛰어다녔어요. 강인한 체력과 산소부족 극복이 우선과제였으니까요. 그런데 너무 무리했는지 결국 디스크 수술을 받게됐어요.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눈앞이 깜깜해지더군요.”

2002년 2월, 디스크 수술 한달 후 김씨는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요세미티의 로스트 인 아메리카에 단독등반을 나선 것. 허리상태를 확인해보고 싶은 욕심이었다. 혼자 오르려니 3배의 힘이 들었다. 피치마다 인공등반하고 다시 하강하여 장비를 회수하여 오르고, 이렇게 반복하기를 10일. 3인조가 일주일 걸리는 코스를 그렇게 빨리 해내고 말았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단독등반은 알피니스트의 이념과도 맞아떨어집니다. 하지만 그만큼 힘들죠. 암벽에 매달려 먹고 자고 하면서 버티다 마침내 정상에 올랐을 때의 느낌이란. 정상에 오르니 열흘 만에 돌덩이 같은 대변이 나오더군요.”



#해외용품업체 동양인 첫 표지모델

이후 그의 등반에 탄력이 붙었다. 2003년에는 파키스탄 나와즈브락(5,800m)의 신루트를 17박18일 만에 개척했다. 신루트의 이름을 짓는 것은 개척자의 몫. 김씨는 ‘익스트림 투게더’라고 명명했다. 등산학교 ‘익스트림라이더’와 함께 한다는 의미였다. 지난해에는 캐나다 오지인 배핀섬에서 80여일을 버티며 표고차 1,100m의 키구티 거벽과 600m 핀 거벽에 초등루트를 뚫고 109일 만에 귀국했다.

그의 등반은 등산인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보통 한국인 등반인들은 알프스나 히말라야, 요세미티 등 유명한 코스를 다녔기 때문이다. 이 루트에는 ‘리바이벌’과 ‘코리안’이란 이름을 붙였다. 낙석이 2번 크게 생겼는데 등반대원 3명이 모두 죽을 뻔했다 살아왔기 때문에 ‘환생’이라고 붙인 것이다. 김씨는 최근 이탈리아 스포츠용품 업체인 캐신(cassin) 2006년 카탈로그 표지모델에 동양인 최초로 선정됐다. 세계가 김씨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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