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나는 행복한 백조입니다[다운증후군 발레소녀 백지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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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1.09 09:25:32
  • 조회: 542

“엄마, 나 이번엔 꼭 두바퀴 회전하는 데 성공할 거야.” 나비처럼 너울거리는 하얀색 발레복에 앙증맞은 토슈즈. 소녀는 발끝으로 오뚝 선 채 빙그르르 턴을 시도한다. 그러나 가까스로 한바퀴 돌고 휘청. 연습을 많이 했지만 백지윤양(13)에게 ‘턴’은 여전히 쉽지 않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어 평형감각이 비장애인보다 떨어지는 까닭이다.

지윤이가 자신의 장애를 처음 인식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생김새가 비슷한 또래를 만나자 대뜸 “너도 ‘다운’이냐”고 묻더란다. 어머니 이명희씨(40)는 가슴이 철렁했다. 언젠가는 알아야 할 일, 아이를 앉혀놓고 조근조근 설명했다. 너는 단지 남들보다 생각 주머니가 작은 것뿐이라고. 네가 진심으로 대하면 친구들도 모두 너를 좋아할 거라고.

하지만 세상은 엄마의 말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문제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사춘기의 예민한 소녀들은 생김새가 남다른 지윤이를 무리에 끼워주지 않았다. 피하거나 놀리거나 심지어 때리기도 했다.
감정표현이 미숙한 것도 다운증후군의 특징.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면 차라리 좋으련만, 지윤이는 제 몸에 화풀이를 했다. 손톱으로 손가락 살갗을 뜯어내며 자해했던 것. 엉망이 된 딸의 손을 바라보며 마음 편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이씨는 지윤에게 스트레스 해소책을 마련해줘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래서 선택한 게 발레였다.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발가락으로 서야 하고 몸도 유연해야 하는데 다운증후군 아동은 근력이 약하고 탈골도 잦거든요. 뼈에 이상이 있을까 겁이 나서 X레이까지 찍어놓았다니까요.”
체구도 보통 중학교 1학년생보다 작은 편이다. 발레학원에 가서도 동갑내기 사이에 섞어놓으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할까봐 초등학교 저학년반에 등록했다. 동생들과 배워야 한다면 학원 다니기 싫을 법도 한데, 지윤이는 옆에서 말려야 할 정도로 열심이다. 몸을 구부렸다 폈다 요리조리 움직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거실을 뱅글뱅글 돌며 동작을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다. 감기에 걸려 골골거리는 날에도 학원 출석부에 도장을 찍어야 직성이 풀린다나. 덕분에 아물 날 없던 손의 상처도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지난달 지윤이는 생애 최초로 수많은 사람 앞에서 춤을 췄다. 제3회 ‘장애어린이축제’에 참가해 2분짜리 독무를 선보인 것이다. 평소엔 순서를 곧잘 잊어버렸는데 한 동작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소화해냈다고. 그렇게 우렁찬 박수를 받아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엄마, 행복해서 잠이 안 와.” 이날 밤 지윤이는 감동과 흥분으로 뒤척였다.
성공적인 데뷔 무대 덕분에 지윤이는 완전히 ‘탄력받았다’. 발레 콩쿠르 포스터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날짜를 외워 와서 달력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놓는다.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다.’ 대회라는 대회는 모조리 참가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다.

지윤이의 꿈은 뭘까. “발레리나요.” 발레 말고 좋아하는 건 없어? “없어요.”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두렵기만 했던 아이. 토슈즈는 그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미운 오리 지윤이는 눈부신 백조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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