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Have a good time with 김치[오묘한 천년의 맛, 언제나 당당한 우리의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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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1.07 09:04:32
  • 조회: 278
#독백

“자꾸 가슴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워요. 답답해서 요즘엔 딱 죽을 것 같은데요.”

내 병이 기생충 때문이라고 진단한 의사는 이번엔 ‘짝퉁에 대한 스트레스’라는 무시무시한 진단을 했다. 각종 유사품과 불량품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성 정신질환이라고 한다. 드디어 나도 현대병에 걸린 것인가.

나는 4층에 산다. 스카이라운지층이다. 아래층엔 파리지엔과 이태리 가이가 함께 살고 있다. 더 아래층은 나와 격이 맞지도 않을뿐더러 워낙 자주 바뀌어 왕래를 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늘 한 두개 층을 차지하고 특별대우를 받는다. 나는 외출을 즐긴다. 초대받은 곳이 아무리 많아도 실망시킨 적은 없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까지 내가 가지 않은 곳은 없다. 어쨌든 나는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VIP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즈음 도무지 외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 몸값이 형편없이 떨어졌을 때도 이렇진 않았다. 식구들이 호들갑을 떨며, 색안경을 끼고 요모조모 나를 살피는 수모도 참아냈는데…. 화병, 남의 일이 아니다. 중국에 살던 친구들은 출입금지를 당했다. 우리 동네에서도 짝퉁 시비에 휘말려 있는데…. 맞춤식 최고급 빌라에 사는 나에겐 더 이상 구질구질한 일은 안 생길 줄 알았다. 흙 냄새도 맡고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얘기가 새삼 떠오르곤 한다.

가끔 어른들은 잔뜩 멋을 부리고 ‘최고’로 대접받지 못하면 울컥하는 내 성격을 마음에 안들어 한다. 조상대대로 내려온 우리집 기질은 맑은 바람처럼 정갈한 마음과, 부지런한 냇물처럼 투명한 생각과, 큰 산 큰 바위처럼 깊은 속정이다. 하지만 나는 올리브오일을 좋아하고 피자도, 햄버거도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흉내내고 흠집을 내도 타고난 내 맵시는 만들어 낼 수 없다. 나는 언제나 당당한 대한민국의 김치다.



#味의 美學

이 세상 어디에도 한 음식만을 위해 냉장고가 만들어 진 것은 와인을 제외하고 어떤 음식도 그런 호사를 누리진 못했다. 김치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 탄생되는 맛이기 때문이리라. 음식은 만들지만 김치는 담근다고 한다. 고추, 소금, 마늘, 파, 생강, 젓갈, 갓과 당근, 무와 파 등 배추소의 다양한 배합의 마술이다.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떫은맛 등 온갖 맛이 김치 하나에 다 담겨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오묘한 맛이다. 그 오묘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늦봄, 들 농사하는 틈에 울밑에 처맛가에 무, 배추, 아욱, 고추, 가지, 파, 마늘을 빈 땅 없이 심어놓고…명랑한 가을 볕에 산호같은 고추송이 널어놓고…입동 소설 절기에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 독 옆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라 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장다리 무 아람 한 말 수월찮게 간수하소….”

농가월령가에선 봄부터 김장 준비가 한창이다. 살뜰히 가꾼 채소는 다듬고 씻고, 갈아둔다. 배추를 절여서 담그고 삭히고 묻고 덮는다. 어디 하나 손맛이 가지 않은 데가 없다. 그래서 김치를 먹을 때도 칼로 써는 것보다 손으로 죽죽 찢어야 제맛이 나는 것도 그 때문이지 싶다.

그런데 김치 맛이 자꾸 변한다. 김치를 먹는 우리 입맛이 변해서인지. 김치의 오묘한 참맛을 모르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항균 작용을 하고, 성인병을 예방하고, 항암효과까지 있다는 거창한 효능이 아니라도 김치는 우리의 문화이고 생활의 일부다. 어릴 때 입맛이 평생 간다고 했다.

11월이면 여기저기서 열리는 김치축제로 나들이를 가거나 올해엔 온가족 둘러 앉아 김장을 해보자. 축제처럼 즐겁게 만드는 김치 속엔 겨우내내 저장해두었다가 날마다 꺼내 써도 될 만큼 행복바이러스가 함께 자라지 않을까.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세계는 한국인들이 매일 먹는 김치를 주목했다.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이 순간 순발력을 높인다며 김치 성분을 분석하고 발효과정이나 레시피를 연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치는 언제나 레시피가 통하는 음식이 아니다. 레시피 그대로 담가도 손맛과 입맛에 따라 생강이나, 마늘, 젓갈 등 마지막 부족한 2%를 채워야 할 때가 많다. 자로 잰 듯 정확한 분량으로 만들어야 실패가 없는 서양 요리와 달리 분량이 애매하게 나오는 우리 요리는, 그만큼 훌륭한 음식이 만들어질 수 있는 범위가 넓다.

밥도둑 김치. 김치는 샐러드처럼 김치만 먹을 수는 없다. 밥도 마찬가지. 무향무미인 듯한 밥은 강한 향과 맛을 지닌 김치와 만날 때 비로소 담백하고 고소한 풍미를 찾는다. 불에 익힌 것도 아니고 생야채도 아닌 김치의 아삭아삭 ○○○히는 맛, 금방 버무린 생김치의 알싸한 맛, 오래 숙성된 익은 김치의 묵은 맛…바람과 흙, 물이 만들어내는 어울림의 맛, 우리는 김치가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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