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맛을 빚고 찍는 ‘향기나는 마법사’[광고요리 전문 포토그래퍼 이성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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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1.02 09:34:46
  • 조회: 400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중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로 시작하던 ‘스카보로 페어’를 들을 때마다 파슬리는 알겠는데 세이지, 로즈마리, 타임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죠. 이름이 참 예쁘잖아요.”

새롭고 예쁜 이름의 재료를 보면 낯선 곳에 여행을 온 듯한 호기심에 즐겁고 들뜬 마음이 되곤 한다. 그래서 넛멕(향신료)이나 셜롯(마늘과 양파의 중간 정도) 등 구하기 힘든 재료들을 한아름 사갖고 돌아오는 날엔 유독 기분이 좋다.

수집광. 어릴 적부터 특이한 것만 보면 그걸 손에 넣었을 때를 상상하며 잠을 설치다 기어코 갖고 말았다. 중학교 때는 학교 끝나기가 무섭게 한두시간씩 벼룩시장과 골동품가게를 돌아보는 게 일과였다. 그렇게 시작된 취미중 하나가 향신료 모으기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볶음밥 하고 라면 끓이기가 전부였지만 유리병에 담긴 신비한 이름의 향신료를 맡으며 판타지 속의 마법사를 상상하곤 했다.



#오즈의 키친, 그의 새로운 작업실

입구엔 2개의 간판이 나란히 달려 있다. 스튜디오 붐과 오즈의 키친. 작은 창들이 알맞게 나 있는 그의 작업실은 햇살이 깊숙이 들어올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온통 흰색을 띤 실내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공작새의 깃털처럼 유선으로 장식된 크리스털 샹들리에, 그리고 커다란 식탁이다. 맞은 편엔 스무개가 넘는 프라이팬이 매달린 서까래 뒤로 요리책 수납장, 10년 된 GE냉장고, 서랍식 김치냉장고, 앰프와 CD 플레이어, 식기세척기, 드럼세탁기, 전기 오븐레인지, 정수기가 차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오즈의 키친, 이름 그대로 정말 부엌이다. 그릇장 옆으로 세워져 있는 조명기구와 한쪽에 정리되어 있는 카메라 가방이 아니면 포토그래퍼의 작업실이라고 하기엔 황당하다.

디자인을 전공한 광고 요리 전문 포토그래퍼 이성호씨(40). 10년 전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였던 그와 인터넷 블로그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는 요리 레시피의 주인공인 그가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요리를 하며 세상살이의 새로운 대화법을 만들어나가는 자유인.



#사람과 사람 사이엔 음식이 있더라고요

요리를 배운 적 없는 그에게 사람들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주저없이 사용한다. 그의 블로그(blog.naver.com/tomte)에서 레시피를 퍼 가던 사람들이 자꾸 요리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잡지사에선 요리 촬영을 하자고 한다. 친구들은 피자집을 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요리 학교 ‘르코르동 블루’를 졸업한 사람도 어시스트로 일하겠다며 찾아온다. 사진 스튜디오 붐의 한쪽 구석에 만든 요리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던 그가 이달초 아예 쿠킹 스튜디오 간판을 내걸고부터다. 내년 봄, 쿠킹에세이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여전히 요리하는 포토그래퍼다. 일탈을 자유롭게 즐기는 그에겐 지독함이 숨겨져 있다. 누군가의 스타일로 규정되기 싫다는 이유로 요리를 배우지 않았다. 수십번의 실패 끝에 혼자 익히고도 “필요한 모든 것이 요리책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며 무덤덤하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인터넷을 뒤져 필요한 요리책과 재료를 구입했다.

밀가루란 밀가루는 다 써 본 후에 프랑스 밀가루로 만들어낸 신 피자, 물기를 뺀 리코타 치즈, 포카치아(이탈리아 빵)는 그가 만드는 요리 중 가장 단골 메뉴다. 채식주의자인 그는 이탈리아 요리 만들기를 좋아하고, 가장 잘 만들기도 한다.

그가 만들어내는 요리엔 만든 사람이나 먹을 사람의 설렘이 함께 담겨 있다. 재료의 새로운 조합, 퍼즐게임을 즐기듯 만들어내는 그의 요리는 오즈의 마법에라도 걸린 듯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파스타 하고 쨔사이(중국 음식점에서 내놓는 무 장아찌) 하고 같이 먹으면 참 맛있어요.” 요리하며 두런두런 들려주는 그의 얘기를 들으며, 요리를 먹으며 사람들은 이상하게 ‘나도 만들어 먹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의 주변엔 ‘만들어 먹자’는 그의 식사법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많다. 물론 포기하지 않게 가장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요리 레시피를 선물처럼 하나씩 일러준다.



#요리때문에 모든 것이 즐거운 남자

“정직하게 먹으면 정직하게 살게 되죠. 뿌리째 먹지 말고 조금 남겨두는 것, 자연의 일부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식탐이 없어져요. 제가 먹을 음식을 제가 만들면서부터 마음이 참 편해졌어요. 영국의 학교에서 실험을 했대요.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그룹과 그 자리에서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는 그룹으로.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은 아이들은 공격성이 없어졌다더군요. 그런데 제가 해먹어 보니까 신기하게도 화가 안 나네요, 감기도 안 걸리고. 누구 못지 않게 까다로운 성격이었는데….”

그는 요즈음 행복하다. 좋은 요리 사진을 찍기 위해 ‘음식 만들기’를 시작했는데 이젠 그 요리 때문에 사진 찍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식사 시간도 모두 즐겁다. 아침이면 가장 사랑하는 친구인, 아내를 위한 핫케이크를 만든다. 아내는 아내의 일터로, 그는 멜로디와 하이디(골든 리트리버 종)와 함께 그의 스튜디오로 향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허브 화분과 따뜻한 햇볕이 가득한 오즈의 나라.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처음 느껴보는 맛, 어쩌면 그렇게 자신의 향기와 닮아있는지…. ‘오즈의 키친’은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시시각각 다른 빛이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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