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세월에 써 내려간 보석같은 그리움[예술인들이 남긴 편지 … 고흐와 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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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0.26 09:17:16
  • 조회: 326
시인들의 편지는 시가 된다. 그리움이 넘치면 시인은 편지를 쓴다. 시인 곽재구는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새벽편지), 시인 윤동주는 ‘긴긴 잠 못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 절절한 마음을 시로 남겼다. 이른 새벽에도, 잠 못이루는 긴긴 밤에도 수취인 없는 그 편지는 계속 이어지지만, 시인 이성선은 ‘가슴에 고인 말을 이 깊은 시간 한 칸씩 비어가는 하늘 백지에 적어 당신에게 전해 달라 나무에게 줍니다’(편지)로, 시인 김남조는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편지)로 편지를 마치고 있다. 그리움으로 쓰는 편지가 인연의 끈이 되기도 한다. 예술가들에게 편지는 무엇인가. 그들의 편지지 안을 들여다본다.

존 레넌이 부른 사랑의 노래들은 아내 오노 요코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루와의 열정적인 사랑의 편지를 남긴 릴케 외에도 300통의 편지를 남긴 모차르트, 베토벤, 괴테 등 위대한 예술가의 불꽃같은 사랑과, 천재도 피해갈 수 없는 소소한 일상의 증표처럼 편지가 남아 또다른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가을 하늘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편지 중 언제나 슬픈 빛을 띠고 있는 것은 고흐와 이중섭의 편지다. 668통의 편지를 동생에게 보낸 고흐는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이중섭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한번도 부치지 못한 편지를 그림으로만 남겼다. 불우한 천재. 한뼘의 수식어로 남은 그들의 삶을 편지가 전하고 있다.

‘테오에게… 나는 지금 아를의 강변에 앉아 있네… 욱신거리는 오른쪽 귀에서 강물 소리가 들리네…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에 캔버스는 초라한 돛단배처럼 어딘가로 나를 태워 갈 것 같기도 하네. 테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이 편지를 쓸 때 고흐의 작품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 완성되었다.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는 테오가 고흐를 지켜주었듯 고흐 작품의 해설이 되어 그 곁을 지킨다. 의문을 남기고 있지만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한 고흐는 이틀 뒤 사랑하는 동생 테오 품에서 “이렇게 죽고 싶었다”며 숨을 거두었다. 새벽 1시30분, 마지막 인사를 할 때 그는 행복했을까?

‘너무너무 기다려서, 어쩐지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생각이 드는 때도 있어요… 이곳에는 당신의 남덕과 당신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언제나 오실 수 있는지요….’
일본에 있는 아내 이남덕으로부터 편지가 온 날이면 이중섭은 잠을 설쳤다. 여비를 마련해 준다는 친구(시인 구상)의 권유에도, “서울 가서 전람회 해서 부자가 되어 건너가야지”라며 새벽부터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아들 태성이도 그리고 태현이도 그렸다. 그 아이들이 이중섭을 타고 엉덩이를 굴러대는 그림도 그렸다. 두 아이와 남덕이 자신과 함께 과일 따먹는 그림도 그렸다. 고기하고 노는 아이도 그렸다. 그리고 밤새 그 그림과 이야기를 했다.

이중섭은 적십자병원 병실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그의 뼈는 몇 자루로 나뉘어 망우리 묘지와 정릉에 묻히고 나머지는 1년 뒤 일본에 있는 부인 이남덕에게 전해졌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내는 그의 답장은 장난처럼, 낙서처럼 고스란히 그림으로 남아 있다.

강렬한 열정이 흐르는 고흐의 그림과 천진난만한 이중섭의 그림은 모두 슬픔이다.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말을 걸듯 송두리째 자신을 내보이고 있다. 그들의 그림이 된 편지를 만날 땐 넉넉하게 마음의 공간을 비워두자.
요절한 천재. 그들의 부재와 상관없이 10년 뒤, 20년 뒤 태어나 우리처럼 또다시 그들을 사랑할 이들에게 작은 선물처럼 편지를 남겨놓고 있다. 가을이 너무 깊어 외로울 때 또박또박 편지를 써보자. 누구에게라도 위안이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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