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골라! 골라![ 폐업점포 설거지꾼 이대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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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0.25 08:53:03
  • 조회: 578

‘완전폐업’ ‘점포정리’ ‘왕창세일’ ‘망했습니다’…. 어딜 가나 눈에 띄는 길거리 세일. 그만큼 자영업은 힘들다. 하루에도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눈물밥을 먹고 가게 문을 닫는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만 요즘처럼 ‘장사 안된다’는 아우성이 큰 적도 없는 것 같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자영업 폐업률이 50%나 증가했고, ‘폐업컨설팅’ 등 폐업 관련 비즈니스가 신규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폐업시대’에 오히려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골라골라 아저씨’다.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골라골라 아저씨’의 길로 들어선 이대영씨(34). “이 일을 시작한 지 8년이나 됐지만 요즘처럼 바쁜 때는 없는 것 같다”는 그는 “여기저기 문닫는 점포들이 많아 때아닌 호황을 누린다”며 머쓱해 했다.
“취업이 힘드니까, 또는 어느날 갑자기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자영업입니다. 특히 식당이나 해볼까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경우 대개 1년도 못가 식탁이고 의자 등이 ‘떨이시장’으로 나오게 됩니다.”

8년동안 그는 ‘어느 누구의 실패’만 보아왔다. 한 ‘영업점의 슬픈 장례식’을 치르다 보니 세상에 대충 해서 되는 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그는 지금도 주변에서 “식당이나 해볼까” 하면 꼭 충고 한마디 던진다. “진짜 잘 고르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 자영업입니다. 섣불리 덤볐다간 남 좋은 일만 시켜요!”
“골라 골라” 외치는 소리는 상품을 상품으로 파는 게 아니라 무게로 혹은 떨이로 처분하는 ‘장송곡’이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판매인 만큼 성의를 다해야 한다는 게 이씨의 ‘8년 소감’이다.

어릴 적부터 목소리가 크고 시원하다는 말을 들은 그는 떨이에 나설 때면 성능좋은 마이크가 있어도 마이크를 잡지 않고 육성(肉聲)을 사용한다.
“어딜 가든 목소리가 튀어요. 오죽 했으면 학창시절 내내 목소리 때문에 ‘연대장’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녔겠어요.”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크기만 한 게 아니라 절절하다. 고객의 귀에 박히고 가슴에 꽂히려면 소리도 커야겠지만 톤이 절절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처음엔 그냥 크기만 한 목소리였어요. 근데 먹고 살기 위해 다듬다보니 말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오더라고요.” 그는 오가는 사람의 발목을 부여잡고,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는 절절한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피를 토하기도 했고, 목소리를 잃을 뻔한 일도 겪었다. 무조건 소리만 지르면 되는 것 같지만 이 일도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지역과 장소, 소비자의 성향에 따라 목소리의 색깔과 톤, ‘골라! 골라!’의 멘트도 달라야 한다.

“강남에선 ‘팬티’나 ‘빤스’라는 말을 썼다간 큰 코 다칩니다. ‘란제리’같은 우아한 말을 써야 구경이라도 하러 와요.” 그는 나이 든 손님이 많이 보이면 내복을 흔들고, 유모차가 많이 지나 다니면 아기 옷을 선전하는 재치가 있어야 한다고 나름대로 노하우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 일을 하다보니 전국에 안가본 시장, 모르는 장터가 없어요.” 다음 일정이 잡히면 그는 그 지역의 특색과 팔아야 할 물건에 대해 공부한다. 팔아야 할 물건이 공산품이면 미리 성능도 시험해 보고 사용법도 익힌다. 옷이면 재질도 확인하고 구겨도 보고 땡겨도 본단다.

‘골라골라 아저씨’의 활동시간은 아주머니들이 장을 보러 나오는 오후 4~6시 무렵이 피크타임. 3~4시간 바짝 장사를 위해 오전부터 준비를 하고, 점심 무렵에 판을 벌린다. 보통 해질녁에 일이 끝나고, 뒷정리를 하다보면 어둑어둑해진다. 소주라도 한잔 털어넣어야 하루 일과가 끝난다. 그렇게 일한 대가는 하루 15만~17만원선. 많이 팔면 보너스가 얹혀지기도 한다.

“하루종일 고함을 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무척 힘이 들어요. 배도 고프고….” 사실 그가 고함을 지르는 데에는 자신에 대한 분노, 못마땅함도 배어있다. 장사를 하는 건지 자기 학대를 하는 건지 모를 때도 있단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이미 홀로 생활을 했다는 그는 고등학교도 고학을 하다시피 했다. 그후 친구 형의 특전사 제복이 멋있어서 특전사 하사에 지원 입대했다.

“군에 있을 때 말뚝 박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군대라는 울타리가 제 눈에는 너무 좁게 보이더라고요! 좀더 큰 세상을 보려고 사회에 나왔는데 세상 사는 일이 그리 녹록지 않더라고요.”
1998년 군 제대 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씨. IMF 외환위기 직후라 일자리를 얻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던 당시 경호원, 세일즈, 공장일, 막노동 등 안해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이게 내 일이야’ 싶은 게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속옷 도매업을 하는 군대 선배를 만나 ‘골라골라 아저씨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갑자기 목소리가 뚝 끊기고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어떨 땐 얼른 뒤돌아 서 숨기도 했지만 몇해를 지내는 동안 일이 손에 익었다. 세상의 모든 실패를 정리하는 폐업사. 장사의 흥망성쇠가 있다면 누군가는 마무리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걸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나 이런 일 해! 떠드는 게 내 직업이야!”라고 말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최근 그는 폐업과 점포정리의 바람을 타고 일거리가 많아져 후배 몇명과 폐업컨설팅회사 창업을 준비 중이다. ‘SKⅡ’라는 회사이름까지 지어 두었다. 폐업점포 설거지꾼 이대영씨. 일명 ‘골라골라 아저씨’. 그는 “폐업컨설팅회사야말로 지난 8년간 고르고 고른 진짜 자신의 꿈인 것 같다”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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