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섬마을 아이들의 가을잔치 [대부도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의 운동회날]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0.22 08:51:30
  • 조회: 664
인천 연안부두에서 하루에 한차례 다니는 여객선을 타고 2시간 정도 가면 닿는 섬이 있습니다. 풍도. 잘 살게 해 달라고 ‘풍성할 풍’자를 넣어 지은 섬 이름. 한때는 이름 그대로 풍성한 섬이었지만 주업인 꽃게가 잘 안 잡히면서 젊은사람들이 하나둘 떠나 이제는 40여호에 주민 80명 남짓인 조그만 섬입니다. 섬 입구에는 태극기가 펄럭이는 하얀 2층 건물이 보입니다. 경기 안산시 대부도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입니다. 김은서(1년), 김성환(2년), 홍채연(4년), 서기동(5년), 그리고 장애 1급으로 재택수업을 받고 있는 기동이 누나 미연이가 전교생인, 말 그대로 작은 분교입니다. 기동이는 이 학교 학생들의 중심입니다. 학교 생활도, 방과후 생활도 동생들과 늘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운동회로 가는 뱃길. 성환, 기동, 은서, 채연이와 김태훈 선생님
기동이는 며칠 전부터 가슴이 설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사흘 후면 바로 1년에 한번, 본교인 대남초등학교에서 가을운동회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은서와 성환이도 형님, 누나 눈치를 보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모처럼 배를 타고 ‘큰 동네’로 가기 때문입니다.

배가 뜰 건지 걱정인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부두를 기웃거립니다. 하늘을 보던 기동이 얼굴에 그늘이 졌습니다. 수평선 너머에서 먹구름이 몰려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큰 배는 뜰 수 있겠지.’ 기동이는 스스로 위로하며 동생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바닷가에 나가 게를 잡고 굴을 따며 놀아도 하루해가 길기만 합니다.
채연이는 며칠 전부터 어떤 옷을 가져갈까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합니다. 빨리 운동회날이 다가왔으면 합니다.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 밤새 가슴 졸인 아이들. 그 염려를 알았는지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높고 파랗습니다. 하늘 높이 만국기 열줄이 펄럭이는 오늘은 즐거운 운동회날.

날씨가 좋아 배가 뜬다는 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만세를 불렀습니다. 모처럼 일손을 놓은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들과 삼촌까지 따라나섰습니다. 은서와 성환이, 채연이와 기동이는 엄마, 아빠 손 대신 김태훈, 김성분 두 선생님 손을 붙잡고 대남초등학교로 갑니다. 넓은 운동장, 많은 친구들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콩당콩당 뜁니다.
“낙지 이겨라, 낙지 이겨라.”
운동회는 청군 백군 대신 여기서 흔한 ‘낙지팀’과 ‘포도팀’의 대결로 짜여졌습니다. 풍도분교 아이들은 ‘낙지 이겨라’고 목청이 터져라 외칩니다.

풍도에선 선생님까지 다 해도 한편에 세명씩 하는 피구가 전부였지만 오늘은 줄다리기도, 기차놀이도, 오재미 박 터뜨리기도 할 수 있는 신나는 날입니다. 기동이는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힘을 꽉 줬고, 성환이는 기차놀이를 하면서 금세 사귄 옆자리 친구와의 장난에 빠져들었습니다. 운동회날 빼놓을 수 없는 곳. 교문옆 장난감 노점상이 조무래기들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문방구도 장난감 가게도 없는 분교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채연이는 유난히 발길을 못 뗍니다. 1만원이나 하는 게임기를 만지작거리다 2,000원짜리 조그만 노랑레이스 양산을 사 들고서 여전히 아쉬운 기색입니다.

오후 3시. 학부모 장기자랑을 끝으로 운동회가 끝났습니다. 힘차게 펄럭이는 만국기를 뒤로 한 채 아이들은 다시 풍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다 냄새 가득한 바람이 교실로 넘나드는 분교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험점수도, 등수도 의미가 없는 분교. 학년에 관계없이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그래도 제각각 푸른 꿈을 갖고 있습니다. 프로게이머가 꿈인 기동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채연이, 목사님이 되고 싶다는 성환이… 바닷바람이 친구이고, 푸른 바다가 친구인 아이들은 다시 1년 후를 기다릴 것입니다. 왁자지껄한 아이들 소리가 넘치는 넓은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가을운동회를.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