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직장인이 된 그들 다시 ‘X세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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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10.12 09:14:14
  • 조회: 1052


X세대가 사회·문화의 중심에 있던 1990년대 중반에서 벌써 10년이 흘렀다. 서태지가 유행시킨 벙거지 모자에 7부바지를 입고 압구정동과 신촌을 활보하던 X세대들도 이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한창 일할’ 직장인이 됐다. X세대는 X세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X세대 4명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화에는 오세룡씨(30·광고회사 직원·이하 오), 하연경씨(여·31·교사·이하 하), 김준일 경향신문 기자(31·이하 김), 장태호씨(35·이하 장)가 참가했다.

‘추억의 X세대’ 4명이 한자리에 모여 ‘X세대’를 이야기했다. 왼쪽부터 “겉으론 X세대를 욕했지만 속으론 부러웠다”는 장태호씨, “나는 X세대가 아닌 줄만 알았다”는 하연경씨, “몸은 X세대였으나 마음은 386을 지향했다”는 오세룡씨, 가장 오른쪽이 “압구정동 록카페도 안가고 삐삐도 없었지만 정신만은 X세대였다”는 김준일 경향신문 기자다.



오:94년 대학 입학할 때쯤 광고에서 ‘X세대’란 말이 나왔죠.

하:72~76년생 정도? X세대 시대는 93~95년, 전면에 떠오른 건 94년 같네요.

장:그때 못보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졌죠. 왜, 맥주를 ‘잔’으로 먹다가 ‘병’으로 먹기 시작했잖아요. X세대라고 맥주병으로 ‘X’자 건배도 하고… 서태지, 신은경 같은 아이콘도 나왔잖아요.

하:PC통신도 대단했죠. 하이텔, 유니텔, 01410…, 집 전화요금이 30만원 나온 적도 있어요. 전화하면 매일 통화중이고….

장:PC통신 타고 ‘사이버 논객’이 처음 나왔죠. 김어준 딴지일보 사장이 그때 하이텔 프라자에서 날렸잖아요. 김완섭의 ‘창녀론’도 하이텔에 연재됐던 거고….

하:동성애 커밍아웃도 95년이죠. ‘컴투게더’ ‘우리끼리’ 등이 기억나네요.

김:온갖 잡다한 게 그때 다 튀어나왔어요. 그래서 우리를 X세대라고 하는 것 같아요. 대학에선 학생운동이란 구심점이 몰락하고, 문화에 대한 욕구가 넘쳐났잖아요.

하:대학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죠. 예전엔 무슨 동아리건 역사·철학은 기본으로 학습했잖아요? 95·96학번들은 ‘다른 걸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하긴, 시위할 때 화장하고 굽 높은 구두 신고 나가곤 했는데, 선배들 눈엔 제가 X세대였을 것 같아요.

오:저는 머리 길러서 묶고 7부바지 입고 데모 나갔어요.(웃음)

김:변화의 속도가 빠른 만큼 갈등도 많았죠.

장:우린 X세대를 ‘버르장머리 없다’고 욕했죠. 사실 두렵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어요.

김:93년 과총회 때 1차를 막걸리집에서 하고, 2차를 록카페에 가려고 했죠. 선배 한명이 대걸레 막대를 뽑아오더니 ‘왜 록카페에 가면 안 되는지’를 밤새 설명하더라고요. 93년까지는 대학생들이 노래방도 안 갔어요, 왜색문화라고. ‘노래방을 왜 가면 안 되는가’로 세미나도 했다니까요.

오:우린 아무 고민없이 노래방 다녔는데….

장:막걸리 대신 생맥주 먹겠다는 후배를 선배가 때린 일도 있었잖아요.

김:‘보디가드’ 사건도 있었어요. 통유리 달고 자리마다 불 들어오는 네온 전화기 단,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당시엔 굉장히 세련된 커피전문점이었죠. 고려대에 그 보디가드가 들어왔는데 학생들이 ‘압구정동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데모해서 사장이 결국 ‘목신의 오후’라고 이름 바꿔버렸잖아요.

김:취업이 어려워진 것도 X세대부터 같아요. 97년말에 IMF 외환위기가 닥쳤죠.

하:98년에 졸업한 94학번 여학생들은 정말 취업이 힘들었죠. 취업 재수하거나, 고시공부 하거나, 대학원 많이 갔죠. 88~90학번 선배들은 쉽게 취업했던 것 같은데….

장:그래서 그때 ‘취집’이란 말도 나왔죠. 졸업과 동시에 취업+시집이라고.

오:이러니까 X세대가 불쌍하다니까요. 대학 다닐 땐 ‘버릇없는 소비세대’라고 욕먹고, 졸업하니 취업 안되고….

장:하긴 X세대는 직장에서도 좀 달라요. 연봉협상 하면서 ‘부장보다 일 많이 하니까 더 달라’고 요구하는 건 X세대부터예요.

오:선배들은 싫어도 참았지만, 우린 싫으면 말 하잖아요.

장:우린 X세대를 ‘단물세대’라고 불렀어요. 부모들이 힘들게 얻은 경제적 부, 우리가 싸워 얻은 민주화를 누리기만 한다고요.

김:386은 정치에 치였고, 부모님 세대는 정말 못 살았잖아요. X세대는 처음으로 자기 쓰고 싶은 대로, 욕망에 충실할 수 있었던 세대죠.

장:그게 버릇없어 보였다니까요. ‘이러다 군사정권 또 온다’고 얼마나 걱정했는데.(웃음)

오:‘소비세대’라는 이미지는 광고나 언론이 조작한 것 같아요. 삐삐만 해도 ‘X세대 필수품’이라면서 안 사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잖아요.

장:그래도 X세대의 그 소비가 지금의 한국을 있게 한 것 같아요. 삐삐 사고, 컴퓨터 업그레이드 해서 IT강국 만들었고, 연예인 음반 사서 음반산업 활성화 시키고… 김건모가 ‘잘못된 만남’으로 처음 밀리언셀러 만든 것도 95년이잖아요.

오:X세대가 소비해서 부모님 등골 휘고, IMF 부른 거 아녜요?

장:‘얼리어답터’라니까요. 지금 컴퓨터 칼럼니스트나 디지털카메라 칼럼니스트도 다 그 세대잖아요. 호기심 많고, 진취적이고, 신기한 건 일단 사고 보고… 90년대라는 격변의 시대를 살면서, 가장 먼저 변화를 받아들인 세대죠.

오:민청학련 세대나 386은 자신들이 직접 변화를 주도해갔지만, X세대는 밖에서 규정지어준 거잖아요. X세대라는 공감대가 없죠. 벌써 10년이나 흘렀으니 이제 ‘우리 세대만의 무엇’을 찾아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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