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병마에 지친 몸, 쉬어 가세요[암 환자들의 보금자리 일산 ‘은혜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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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9.29 09:30:47
  • 조회: 535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미제씨 생일 축하합니다~” “와~” 짝짝짝.

경기 고양시 마두동 주택가의 단독주택 3층. 평범한 25평짜리 가정집 거실은 생일축하 케이크를 자르는 웃음소리로 떠들썩하다.

이렇게 생일파티도 함께 하고 날씨 좋은 주말엔 임진각이며 강화도로 나들이도 함께 가는 사람들. 저녁식사 후 과일 한쪽씩 집어들고 ‘굳세어라 금순아’ 드라마를 보는 이들을 보면 영락없이 화목한 한 가족이다. 그런데 방 3개의 주인들이 몇주 단위로 바뀐다. 하숙인가? 민박인가? 둘 다 아니다.



믿음방 배상영 남 62 항암치료중(8월21일), 사랑방 이영숙(가명) 여 41…. 현관 앞 조그마한 흰 칠판이 보통집과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단서. 이곳은 일산은혜교회에서 암환자들을 위해 마련한 ‘은혜쉼터’다. 암치료를 받고 있는 이들이 제집처럼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은혜쉼터가 문을 연 건 지난해 4월. 교회가 바로 국립암센터 옆건물이라 암환자들이 오가는 모습은 신자들에게 낯익은 풍경이었다. 암환자들이 받는 방사선치료는 보통 6주에서 8주 동안 계속되는데 지방에서 온 환자와 가족들은 이 기간 동안 마땅히 거주할 곳이 없어 멀리 떨어진 모텔이나 월세방에서 병원을 오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온종일 기다려 15분에서 20분 정도면 끝나는 치료를 받기 위해서. 교회에서 ‘뭔가 도울 수 없을까’ 답답해 하던 차에 암센터의 한 환자가 ‘내집처럼 기거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신과는 아무 관계 없는 교회에 1천만원을 기탁하며 하늘나라로 떠났고, 사연을 전해 들은 신자들은 선뜻 주머니를 털었다. 이렇게 마련한 전세금 8천만원. 쉼터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컴퓨터와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과 장롱이며 소파, 식탁 등 가구들, 이불과 쌀, 밑반찬까지. 필요한 모든 것은 신도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누가 말하지 않았어도 신자들 스스로가 조를 짜서 청소며 이불빨래 등 1년치 봉사계획을 세워놓고 과일이나 반찬도 수시로 사 날랐다.



취재하던 날 쉼터의 가족들은 간암, 폐암, 유방암 등을 앓고 있는 6명. 거제도, 대전, 강원도, 구례 등 팔도의 사투리가 섞여 왁자했다.

“거제도에서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서울에 도착했는데 여관방을 얻자니 참 쓸쓸했어요. 치료받으러 서울 올 때마다 이곳을 찾는데 이런 고마운 곳이 없어요”



이번이 3번째 입소인 배상영씨(62)는 부인과 자녀들도 안심하고 돌아갔다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이날 이곳에 처음 도착한 조미제씨(49)도 제집처럼 편하다고 했다. “오빠들, 고스톱이나 치자”는 농까지 건넨다.

“병원과는 달리 집이라는 공간, 방과 식탁이라는 공간이 위안을 주죠. 동병상련의 환자들이 의사선생님께는 물어보지 못하는 것들을 서로 물어보고 불안하고 힘들었던 경험, 가족문제나 경제문제까지도 허물없이 이야기하게 돼요”



환자들은 혼자 있으면 자꾸만 우울해지는데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니 정신과 치료보다 훨씬 큰 위안을 얻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누가 얘기하지 않았어도 우울한 얘기는 서로 피한다. 서로 격려하는 이야기, 즐거운 화제만을 올린다.



이제까지 이곳을 거쳐간 환자는 모두 60여명.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이곳에서 나간 사람들은 증세가 다 호전됐다. 오죽하면 쉼터를 나가서도 이곳에서 지냈던 시간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쉼터를 이끄는 최영희 전도사(45·왼쪽에서 두번째)는 봉사를 하면서 암에 관해선 반은 전문가가 됐다. 예전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는 생각에 일산 호스피스 15기로 교육을 받고 활동해 왔는데 그때 받은 교육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단다.



“신자든 비신자든 지방에서 오신 암 환자들에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입니다. 무료라니 미안한 마음에 선뜻 찾지 못하는 분들도 있는데 좀더 많은 분들이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필요한 분들이 이곳에서 편히 쉬었다 가셨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교회는 좀더 많은 환자들의 쉴 곳을 위해 단독건물 건축을 기도중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손길을 실천하는 이곳. 가장 절실한 필요를 채워주고 가장 큰 마음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이곳이야말로 환자들에겐 진정한 치유의 공간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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