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雲좋은 이 남자[‘구름박사’ 이대암씨]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9.28 09:49:53
  • 조회: 555
‘구름박사’를 찾아 강원도 영월로 갔습니다. ‘구름박사’ 이대암씨(49)는 발 아래 구름을 거느리고, 머리 위에 구름을 인 영월읍 흥월리 태화산 중턱, 해발 600m 고지에 살고 있었습니다. 땅보다 하늘에 가까운 곳입니다. 인공위성에서 찍은 한반도 밤 사진을 보고, 가장 불빛이 없는 곳을 골랐답니다. 꼭 10년 전 손수 집을 짓고, 작은 천문대도 만들었습니다. 고추를 기르는 작은 앞마당은 ‘구름 전망대’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4륜구동 자동차로 20여분 산길을 올라와야 하는 이곳에서, 그는 낮엔 구름을 보고, 밤엔 별을 보며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골짜기마다 짙은 안개구름이 피어 올랐어요. 이 구름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 실타래 같은 권운이 되었다가, 두꺼운 적운이 되었다가 비가 되어 땅으로 내려오지요. 구름이 이 지구라는 행성을 둘러싸고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거죠.”
이씨는 스스로를 “뜬구름 잡는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지난 7월, 15년간 찍어놓은 구름 사진을 모아 ‘구름 쉽게 찾기’(진선)를 출판했습니다. 600여장의 구름 사진을 높이와 모양에 따라 분류해 놓은 국내 첫 ‘구름도감’입니다. 아름다워서 찍기 시작한 구름 사진이 2,000장을 넘어서면서 공부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구름을 알려주고 싶어졌답니다.
‘구름박사’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건축이론으로 학위를 받은 건축학 박사입니다. 1995년 3월 세경대 건축디자인과 교수로 초빙되면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영월로 왔습니다. ‘어차피 인생의 절반은 하늘을 보며 지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늘 맑은 이곳으로 선뜻 삶의 거점을 옮겼답니다. 5년 만에 시간강사에서 부학장으로 초고속 승진했지만, 명예보다는 뜬구름을 더 사랑하는 그는 2년전 교수직도 버렸습니다. 하늘을 볼 시간이 자꾸만 줄어들었거든요.
구름을 ‘처음’ 만난 것은 84년이었습니다.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던 그는 싱가포르로 첫 해외출장을 가게 됐습니다. 난생 처음 탄 국제선 비행기가 뭉게구름 속을 뚫고 지나가는데, 심장이 짜릿했답니다. 솜사탕처럼 포근한 것들이 어떻게 수천미터 상공에 떠 있을까. 만져보면 어떨까. 끈적거릴까, 부드러울까.
5년 뒤 호주 시드니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본격적으로 구름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유리창이 다닥다닥 박힌 건물 외벽에 비친 구름에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멈추어 있는 건물이 흐르는 구름에 따라 전혀 달라 보였습니다.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250분의 1초, 바람이 숨을 고르는 125분의 1초를 렌즈에 담았습니다.
털털거리는 자동차를 몰고 국도 갓길에서, 산길에서, 바닷가에서 하늘 사진을 찍었습니다. 창 밖의 먼 하늘을 보며 운전하다 이 구름이다, 싶으면 급정거 하고 카메라를 꺼냈지요. ‘나쁜’ 운전습관 덕에 몇번이고 사고가 날 뻔했답니다. 비행기를 탈 때면 몇 시간 먼저 달려가 구름이 잘 보이는 자리를 챙겼습니다. ‘창가 좌석을 달라’ ‘날개 옆 좌석은 싫다’고 따져 ‘쫀쫀한 남자’ 소리를 듣기도 했다지요. 비행기는 8,000m 상공, 고적운 위, 권층운 아래를 통과합니다. …코 앞에서 만나는 구름은 황홀했습니다.
“계속 사진을 찍다 보니 궁금해지더군요. 해질녘도 아닌데 구름이 붉은 빛을 띠고(채운), 태양 주위 구름에 무지갯빛 원이 생기고(햇무리), 구름 속에서 태양이 2개(환일)로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렇지만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책도, 전문가도 없었어요. 일본 책, 미국 책 가리지 않고 구해 읽었어요. 책 만드느라 사진 분류하고 설명 붙이는데만 6개월이 걸렸죠.”
밤이 되면 구름은 희미해지고, 별이 빛납니다. ‘구름박사’는 별을 보고, 별사진을 찍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겐 이미 ‘천문대장’으로 통합니다. 2001년 영월 봉래산 정상에 세워진 시민천문대 ‘별마로 천문대’의 건축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중학생 때 별에 마음을 빼앗겼다는 그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아마추어 천문가이기도 합니다. 2003년 국제천문연맹은 그의 지극한 별사랑을 기려 소행성 7602호를 ‘이대암’으로 명명했습니다.
“언젠가 하늘도감을 만들고 싶어요. 낮의 하늘과 밤의 하늘을 모두 모으는 거죠. 환일 현상, 코로나, 태양주, 햇무리 같은 하늘의 광학현상도 모두 담아서요. 준비는 거의 끝났어요. 오로라와 극지 신기루만 사진으로 담으면 되죠.”
‘구름박사’를 만난 날은 손대면 물들 것처럼 하늘이 파랬습니다. 엷은 비단처럼 부드러운 권층운이 드리우고, 동쪽 하늘에선 권운이 피어올랐습니다. 구름 뒤로, 태양이 살짝 얼굴을 내밀면서 햇무리가 나타났습니다. 하늘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큰 원, 무지개처럼 색깔이 곱습니다. 그는 카메라를 꺼내 들었습니다. “보기 힘든 선명한 햇무리예요. 오늘 운이 좋네요.”
그의 하늘도감에서 이날 찍은 햇무리 사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해두세요. 2005년 9월15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열반식이 있던 날, 남쪽 하늘에서 빛나던 햇무리를요.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