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내일의 ‘진품명품’오늘 버려질 위기”[근대사박물관 최봉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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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9.26 09:17:06
  • 조회: 434
중국집 식탁 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고동색 줄무늬 엽차잔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석유를 사다 나르던 1되짜리 소주 대병은 누가 다 깨뜨려 먹었을까? 철수와 영희가 표지로 나왔던 초등학교 ‘국어책’은 또 어디로 사라졌을까?
너무 흔해서, 구질구질해서 버리다 보니 우리네 삶의 흔적을 이야기해 줄 근대사의 생활자료들을 일상에서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불과 반세기 전인데도 말이다.

“근대사의 생활자료를 찾아낸다는 것은 이전 시대의 유물을 찾는 것 못지않게 어렵습니다. 귀하지 않아 마구 버리고 보관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경기 파주시 교하면 목동리 ‘한국근대사박물관’의 최봉권 관장(50). 그는 지난 30년간 사재를 들여서 수집한 근대사 생활자료 3만5천여점을 모아 올해 초 ‘한국근대사박물관’을 개관했다.
1,500평의 부지에 조성된 ‘한국근대사박물관’은 유리안에 전시된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그 당시 서울 변두리 골목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공간과 실물들로 채워져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모조품이나 세트가 아니라 100% 앤틱, 진품이라는 얘기다.
“고등학교 때부터 수집벽이 있었고, 유물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백제의 옛 도읍 부여가 고향인 최관장은 자신의 유물에 대한 관심과 수집은 태생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근대사 유물 수집에 천착한 이유에 대해 “새마을 운동으로 낡은 것을 걷어내면서 부서지고 없어지는 것들을 누군가 챙기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 같은 조바심도 크게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모았어요. 1만점 정도 모으고 나니까 박물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박물관을 염두에 두고 수집에 나섰다.
“국밥집 찬장을 마련하기 위해 오래된 국밥집이란 국밥집은 다 다녀보고, 석유 깔대기를 구하기 위해 고물상이란 고물상을 다 뒤졌죠. 거저 줘도 안가질 것 같은 소주병을 보물처럼 안고 오기도 하고, 썩어빠진 나무문을 철제 섀시로 달아주고 뜯어오기도 했어요.” 근대사 생활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맨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 타깃은 폐허가 된 빈집. 지붕 위로 올라가다가 굴러 떨어지는 일은 예사고, 주워가지고 나오다가 도둑으로 몰려 경찰서에 잡혀간 일도 허다하다. 심지어 폐허가 된 우물에 빠져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일도 있다.
“개관하자마자 박물관 부지가 파주·교하 택지개발 지구로 수용돼 박물관을 철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어요.” 보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현행 기준대로라면 재건립이 어렵다. 한국근대사박물관에 대한 그의 꿈도 접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화재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몇백년된 국보나 보물을 떠올린다. 그러다 보니 오래된 물건들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미래에 문화재가 될 근대 유물에 대한 보존이나 관리는 미비한 실정이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문화재에 대한 이같은 편견과 행정은 한 개인이 수집한 소중한 근·현대 문화재가 문화재적 가치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단순한 사유물로 처리돼 창고에서 썩게될 처지에 놓였다”며 일침을 가했다. 민의원은 또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같은 문화재만 신경쓰지 말고 미래의 문화재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 역사 속에서 근대사만큼 변화가 빠르고 아프고 진했던 시간은 없었다. 농촌에서 도시로, 주택에서 아파트로 의·식·주의 변화가 이보다 빠른 시절은 없었다. 옛날 이야기는 무조건 고리타분하게 들렸고, 옛날 물건은 무조건 촌스럽게 여겼다. 황평우 소장(한국 문화유산 정책연구소)은 “근대사의 생활자료들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지금이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근대사 50년은 잃어버린 역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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