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슬픔이 무너지면 길이 보이리[창백한 스무살 혜진이의 푸른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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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9.20 09:46:55
  • 조회: 469
가냘픈 몸에 핏기 없는 얼굴. 이혜진씨(20·여)는 그래도 잘 웃는다. 올 여름, 병과 힘겹게 싸움하며 학비 마련에 가족 생계비까지 버느라 무더위도 몰랐다. 한창 멋내고 여행하며 낭만을 찾을 나이. ‘웰컴투 동막골’과 ‘친절한 금자씨’가 화제가 됐어도 영화 구경도 모른다. 호프집, 편의점, PC방 등을 다니며 1시간 3,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했다.

무더운 여름을 잘 견뎌낸 덕분일까. 다시 캠퍼스로 돌아왔다. ‘올 가을 학기 꼭 복학하고 싶다’는 소망이 이뤄졌다. 새벽녘까지 일하며 자주 유리문 넘어 짙은 어둠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러나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곧 환한 아침이 온다는 것을. 스무살 청춘은 무엇이든 꿈 꿀 수 있고 해낼 수 있잖아.



#절망과 희망이 한 몸처럼

혜진은 1년 만에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됐다. 지난해 한양여대 패션디자인과에 진학했지만 한 학기만 겨우 마치고 휴학했다. 몸도 아팠고 가정형편도 어려웠다. 사정 모르는 친구들은 기운 없고 핏기 없는 혜진에게 “넌 왜 맨날 아픈 사람 같으냐”며 놀린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반갑지만 제대로 안부를 물을 겨를이 없다. 오후 6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경기 원당에 있는 한 PC방으로 달려간다. 저녁을 먹을 시간도 없다. 밤 12시까지 일한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집에 도착하면 몸은 기진맥진. 3년 전부터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앓고 있다. 피곤한 일을 하면 안되지만 어쩔 수 없다.



열심히 학교에 다녀 졸업하고 빨리 취업해야 한다. 가족들에게 유일한 희망. 혜진은 할머니, 아버지, 고3 여동생과 함께 산다. 토당동 집은 세차장 간이 건물 2층이다. 1층은 세차와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하는 곳. 월세 15만원짜리다. 그나마 1년치 월세가 밀려있다. 워낙 살림집이 아니어서 여름엔 찜질방 같고 한 겨울엔 길거리에 나와있는 것처럼 춥다. 자동차 소음도 정신없다. 물이 새는 천장과 벽에선 곰팡이 냄새가 진동한다.

아버지 이정식씨(58)도 혜진이와 같은 병이다. 아버지는 두 달전 엄마의 장례식을 치른 다음날 심장발작으로 쓰러졌다. 그때서야 병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는 자궁암에 걸린 엄마를 5년간 간호했다. 엄마는 5년 전 말기 상태로 병을 알게 돼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했다. 아버지는 병이 깊어지고 있었지만 엄마를 간호하느라 아플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요. 집에 들어가는 게 무척 싫었어요. 밤마다 고통스러워 우는 엄마 소리 듣는 게 두려웠거든요. 이젠 편안히 지내시겠죠. 아버지께 잘 해드리라고 부탁하셨는데….”

병든 아버지는 구순이 다 된 노모를 돌본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는 얼마전 한 안과병원에서 무료로 한쪽 눈 수술을 받아 희미하게나마 가족 얼굴을 알아보신다.



#엄마와의 약속을 위해

소파 나무다리나 탁자 등을 만들었던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열심히 살았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향에서 올라와 객지생활을 했다. 그러나 불행은 끊이지 않았다. 내집마련의 소박한 꿈을 키울 무렵. 막내 자식이 백혈병에 걸렸다. 어린 목숨을 살리려고 일을 내팽개치고 매달렸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고 엄청난 빚만 남았다.

“그래도 아버지와 엄마는 용기를 내셨어요. 손가락이 잘려나가면서도 나무를 깎으며 살려고 애쓰셨죠. 그런 와중에 엄마가 또다시 암에 걸리신 거예요.”



몇달 전까지만해도 암치료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카드빚으로 겨우겨우 진통제를 살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다.

요즘은 변변하지도 않은 살림에 압류집행을 하겠다는 독촉이 성화다. 엄마가 어린 딸들을 위해 남몰래 매달 1만원씩 들어놓았던 보험금도 금융회사에서 찾아간 지 오래다. 아버지는 며칠전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고양천사운동본부에서 얼마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지탱하고 있다.

혜진은 지난 1년간 약을 먹어가며 피자집, 호프집, 편의점 등에서 하루 12시간씩 서서 아르바이트 했다. 2학기 등록금 2백70만원도 겨우 마련한 것이다. 막상 복학은 했지만 패션디자인과는 실기 준비물도 많고 학교를 오가는 교통비까지 힘겹다.



동생 지혜를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고 있다. 특수교육학과에 진학해 장애인을 돕겠다는 씩씩한 동생. 학원은 고사하고 참고서조차 마음 편히 사보지 못하지만 불평한 적 없는 착한 고3 수험생이다.

포기하지 않는다. “건강도 견디다보면 좋아지겠지….” 언젠가는 아름답고 꿈이 담긴 멋진 옷도 만들어낼 테다. 어릴 적 엄마에게 멋진 옷을 만들어드리겠다고 약속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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