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色 다른 희망을 뽑아냅니다[장애인들의 色국수공장 ‘행복한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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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9.13 08:48:07
  • 조회: 395
부산엔 유난히 국수공장이 많다. 배로 실어나른 구호물자 밀가루로 가장 손쉽게 만들던 것이 국수. 동네마다 방앗간이 있듯, 작은 기계로 가족끼리 만들어내는 국수공장이 많다. ‘행복한 국수’(www.5294.net)는 그런 국수공장 중에서도 특별하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행복하지 않은’ 장애인들이 만드는 국수, 그러나 한올한올 희망을 뽑아내는 행복한 작업장이다.

“아자 아자 파이팅!” “제일 빨리 포장하는 사람은 상으로 과자!” 부산 금정구 서1동 장애인 근로작업장 4층 행복한 국수 공장에 들어서면 웃음소리가 넘친다.

공동운영자인 김성윤 소장(44·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과 윤정의 실장(42·사진 가운데·여), 그리고 초등 2~3학년 수준의 지능을 가진 22~34살의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들 10명까지 총 12명이 식구다. 김소장이 면을 뽑으면 나머지 가족들은 국수를 자르고 널고 저울에 용량을 달아 용기별로 포장한다. 스티커 붙이고 박스를 만들어 담는 것까지 이들의 작업.
“실링작업은 이상현(27·우암동), 봉투에 집어넣는 일은 최청흠(33·대연동)·정민호(28·대연동)씨가 선수”라는 김소장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하고, 사진기자의 카메라가 돌아가자 분위기 메이커 상현씨는 ‘꽃피는 동백섬에~’ 신나게 한가락 뽑는다.

행복한 국수 공장은 2년 전 문을 열었다. 한국장애인의상연구소를 운영하던 김성윤 소장이 부산에서 장애인 패션쇼를 연 것이 계기였다. 무대에 선 장애인 모델들이 일하고 싶다고 한탄하는 소릴 들었다. 마침 김소장은 우연한 기회에 버려진 국수기계로 국수 만드는 것을 배운 적이 있었다.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후원에 의존하던 장애인의상연구소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업으로 국수공장 오픈을 결심했다.

조금 어눌하지만 누구보다 정성스러운 손길들. 자세히 보니 이들의 손끝에선 연두색, 연노랑, 분홍색 등 색색의 국수가 포장되고 있다. 국수공장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일 자체보다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었다. ‘장애인이 만들면 비위생적이다, 뭔가 부실할 것’이라는 편견을 넘어야 했다. 최상의 제품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대표상품으로 내세운 것이 ‘웰빙국수’. 인근의 특산물인 기장미역을 이용한 미역국수, 다시마·김·파래 등 다양한 재료를 넣은 해조국수가 가장 인기다. 노인들에겐 솔잎·뽕잎·쑥 국수, 어린이나 수험생엔 검은콩·검은깨·들깨 국수가 잘 나간다.
다양한 재료 말고도 옹기에 담아 하루 동안 숙성한 물만 사용해 반죽하고 반죽과 숙성을 3차례 반복해 쫄깃함을 살리는 등 ‘행복한 국수’가 탄생한 과정은 까다롭다. 때마침 불어온 웰빙 바람을 타고 “맛도 영양도 높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전국의 국수전문점과 일식집, 샤부샤부집 등에서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들 스스로 얼마든지 생을 꾸릴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사회엔 부담이고 부모에겐 짐이고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로만 낙인찍는 것이 장애인을 장외로 몰았습니다. 사회가 장애인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또 한명의 공동운영자 윤정의씨는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가 자유롭지 못하다. 성균관대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유학도 다녀왔지만 취직하지 못했다. 대학에서 7~8년 동안 토익강사 생활을 해오다가 김소장을 만나 행복한 국수를 함께 운영하게 됐다. 윤실장은 최근 어린 장애인 소녀의 눈에 비친 편견을 그린 자전적 성장소설 ‘행복할 뻔했던 내 인생’(장문산)을 집필하며 하고 싶은 얘기를 담았다.

요즘 ‘행복한 국수’는 좀더 넓은 공장으로 이사를 앞두고 분주하다. 이제까진 생산물량이 달려 가격도 비싸고 대형마트와 계약도 못했지만 앞으론 공장을 넓히고 새 식구도 맞는다. 국수소스와 국수과자, 만두 등에도 도전해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일거리로 확보할 계획이다. ‘행복한 국수’의 목표는 장애인들이 함께 생활하며 일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 또 장애인들이 배우자나 부모 등과 같이 국수체인점을 운영하며 생계걱정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선심 차원에서 장애인들의 일자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위주의 작업공간에서 비장애인들이 함께 일하는 풍경을 꿈꾸고 있다.

“우리가 파는 건 행복입니다. 국수는 행복을 담는 그릇이고요.” 행복한 국수의 향긋한 희망은 그렇게 우리 곁에 말없이 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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