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대숲에 지는 ‘100년의 약속’[담양 죽렴 ‘마지막 장인’박성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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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8.24 08:50:07
  • 조회: 509
“유명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아무리 돈을 많이 주겠다고 해도 이 대나무발은 안 팔았어. 내 평생 다시는 이런 작품 못 만들 거야.”

담양에 흔한 것이 죽제품이겠지만 그중에서도 ‘작품’은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명품은 장인(匠人)의 기량이 절정에 다다른 후에야 비로소 탄생하는 것.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23호 죽렴장(竹簾匠) 박성춘 선생(67)은 1984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상을 받았던 대나무발(죽렴)을 최고로 친다. 대살이 어찌나 가는지 대발의 감촉이 비단결처럼 매끄럽다. 세월을 견딘 대나무의 누르스름한 빛깔도 운치있다.

그러나 이렇게 멋들어진 대발도 머지 않아 담양 땅에서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선생은 담양 죽렴의 마지막 장인이다.



#장인의 손

대나무발은 가늘게 쪼갠 대나무 살을 실로 엮어 만드는 햇볕 가리개다. 살의 두께가 고르고 가늘수록 상품(上品)이다. 그래서 둥그런 대나무를 1㎜ 간격으로 쪼갠 뒤(쪼갬질) 구멍 뚫린 철판(조름쇠)에 통과시켜 가늘고 둥글게 만드는 작업(조름질)에서 품질이 판가름난다. 직경 0.8㎜, 0.6㎜, 0.5㎜ 구멍에서 점차 가늘어지게 차례로 대살을 뽑아낸다.

“눈대중으로 보고 손 짐작으로 아는 거지. 0.002㎜ 두께까지 손으로 만져 잴 수 있으니까. 허심이 생긴다거나 놀고 싶은 마음이 들면 못 해. 스님들이 선방에 앉아 명상할 때 마음과 비슷한 거야. 대발 만드는 데 집중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무념무상의 경지가 되더라고.” 그래서일까. 부인과 나란히 앉아 엮음질을 하면서도 오가는 말 한마디 없다.

엮음질은 조름질까지 끝낸 발살을 틀에 얹어 명주실로 엮는 과정. 일종의 실패인 고들개만 해도 103개다. 고들개를 틀 앞뒤로 번갈아가며 넘기는데 그때마다 힘을 고르게 줘야 살이 매끈하게 묶인다.

대나무도 아무 것이나 쓰지 않는다. 대가 성장을 멈춘 한 겨울에 직접 대밭에 나가 생김새를 살펴 보고 10m 이상 자란 것 중에서도 가장 잘 생긴 놈을 고른다. 조심스레 베어낸 뒤 보자기에 싸서 지고 오는 것도 그의 일이다.

대껍질 벗기기도 수십년을 해야 체득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특히 마디 부분이 까다롭다. 칼로 대를 긁어 0.1㎜ 두께로 균일하게 벗겨야하는데 한 군데라도 0.2㎜로 벗기면 대발 짰을 때 색깔이 다르다. 어느 곳 하나 정성 가지 않는 일이 없다. 준비부터 마무리 공정까지 모두 22만번 손이 간다. 섬세하고 민감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의 손은 겉보기에도 남들과 다르다. 양손 각각 손가락이 4개. 날 때부터 중지와 약지가 붙은 채였다.



#저물어갈 담양 죽렴

대나무발의 유래에 대한 기록은 따로 없다. 조선시대 경원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가 대발을 드리우고 수렴청정을 했다는 사실(史實) 정도. 양반집에서는 방문을 열고 생활하는 여름에 사랑방 가리개로 대발을 애용했다. 시원하게 웃옷을 벗고 앉아 술잔을 기울여도 바깥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니 사생활 보호 장치로 이만한 게 없었던 셈이다. 30~40여년 전만 해도 옛사람의 멋을 아는 이들이 대발을 많이 찾았다. “요 작은 마을에서도 10여호가 엮음질을 했으니까. 그때가 좋았어.”

전망을 기대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선친도 대발을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대나무를 접했고 대발 만들기를 돕는 것이 생활일 수밖에 없었다. 고들개를 움직이며 대발을 엮는 데 웬만큼 익숙해지자 아버지는 대 껍질 벗기기, 쪼갬질, 조름질을 차례로 가르쳤다. 그는 한치 의심없이 숙명을 받아들였다. 다른 세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살았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어느덧 50년 남짓. 여기에 아버지의 40년과 역시 대발 장인이었던 할아버지의 경력까지 더하면 100년이 훌쩍 넘는다.

한 가문이 한 세기를 이어온 기술이지만 변하는 세상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대발을 쓸 일이 별로 없으니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고 사겠다는 사람도 거의 없다. 간혹 들어오는 주문이 있어도 나이 지긋한 손님이 선물용으로 원하는 게 대부분이다. 더 큰 걱정은 주름살은 깊어지는데 전수 받을 사람이 없다는 점. 어릴 때 곧잘 엮음질을 돕던 자식들은 사고를 당해 몸이 성치 않거나 제 인생 찾아 도시로 갔다. 기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젊은이들도 없다.

“한창 때는 눈 감고 덤벼도 대나무 가시가 나를 비껴갔어. 이젠 나이를 먹어서 가시에 많이 찔리고 칼에 베이기도 해. 하지만 그건 아무 것도 아니지. 전수자가 없다는 게 안타까워.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게 안 되어서….”

지금도 대발 팔아서 버는 돈으로는 생활이 어렵다. 전라남도에서 주는 생계보조비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완숙한 솜씨의 장인도 먹고 살기 어렵다는데 젊은 사람들이라고 선뜻 나설 수 있겠는가. 젊은 사람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애초 이 일을 시작했던 게 운명이었다면 자신에서 대가 끊기는 일도 어쩔 수 없는 섭리라고 여긴다. 그래서 선생의 마음결은 차라리 평온하다. 조금은 아쉽고 가끔은 쓸쓸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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