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종묘로 간 CEO “나는 종이로소이다”[아름다운 ‘인생2라운드’… 궁궐지킴이 최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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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7.28 09:10:17
  • 조회: 445
출근길이 쉽지만은 않다. 경기 용인 집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 지하철을 세번 갈아탄다. 출퇴근 합쳐 왕복 4시간. 사무실은 간이 탁자, 거울, 정수기가 놓인 작은 방이다. 그나마 전용 사무실이 아니다. 더부살이다. 봉급도 없다. 오히려 운영비를 위해 매달 1만원씩 낸다. 점심은 인근 식당에서 해결한다. 이런 지 900일 됐다. 중형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 지그시 눈감고 출퇴근 할 때와는 전혀 딴판이다.
그의 새로운 일터는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자리한 ‘종묘’.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가의 사당이다. 그 사람, 최준식씨(67)는 찾아온 이들에게 종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해설사. 시민모임 ‘우리궁궐 지킴이’에서 활동하는 봉사자이다. 전직은 국내 대기업 대표이사 사장. 500년 왕들과 동업한 제2라운드 인생의 참 맛은 어떤 것일까.

#이 나이에 특별 보너스 받는 기분 알아요?“영친왕은 왕위를 정식으로 승계하지 않았는데 왜 종묘에 함께 모셔졌나요?” “이방자 여사는 국모가 아니지 않나요?” “할아버지, 어느 방에 어느 왕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신주는 왜 못보게 하는 건가요?”….
질문이 쏟아진다. 답변도 청산유수다. 쉽고 재미있다. “신주를 모실 방이 마지막으로 딱 한 곳 남아있었는데 전주 이씨 집안에서 해방 이후 영친왕을 거기에 모시기로 했지요.” “예전에는 종묘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있잖아요. 굳이 문패가 필요없죠. 그래서 종묘에는 편액(현판)이 없답니다…”
가끔은 대답하기 어려운 때도 있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다음에 알려주겠다며 자연스레 넘기는 여유도 생겼다. 이젠 눈빛만 봐도 안다. 얼굴 표정을 살펴가며 설명 수준을 올렸다 내렸다 자동으로 맞춘다. 해설을 부탁하는 방문객은 초등학생부터 일반인, 가족, 친목모임 등 다양하다. 특히 학생들이 오면 서비스 차원에서 ‘교과서 몇 쪽에 언급된 내용’이라며 알려준다. 일종의 ‘영업전략’이다.
한여름 찌는 무더위에도 언제나 양복 정장차림이다. 종묘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하는 노신사. 올해로 종묘 출근은 3년째다. 다른 봉사자들과 순번을 정해 금요일이나 토요일 매주 하루씩 활동한다.
태풍 몰아치고 폭설이 내리는 날에도 당번인 날은 어김없이 출근한다. 종묘 정문에서 10여m 안으로 들어서면 ‘궁궐지킴이 안내’ 팻말이 있다. 오전 10시 그가 서있는 정 위치다.
“한명이라도 상관없어요. 종묘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이라면 얼마든지 설명해드리죠. 바쁜 사람은 빠른 코스로 30분, 여유있는 분은 2시간 이상 코스도로 가능하죠. 물론 힘들 때도 있어요. 단체 방문객을 이끌고 몇 시간 돌고나면 사무실에 돌아와 온몸에 힘이 쭉 빠집니다. ‘고맙다’는 박수를 받을 땐 정말 즐거워요.”
가장 힘들게 하는 방문객은 고등학생. 처음 30여명이 따라 붙었다가 반쯤 못가 고작 서너명이 설명을 듣는다. 반대로 초등학생들은 기특하다. 질문도 많이 하고 꼬박꼬박 필기도 잘 한다.
“지난해 여름 아주 더운 날이었어요. 초등학교 3~4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한시간 동안 설명을 잘 듣고선 바지 주머니에서 뭘 꺼내요. 미지근해진 음료수 한병이었죠. 고사리 손으로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면서 전해주더군요. 특별 보너스 받는 기분이었어요.”

#국제 무대에 다시 섰다고요궁궐지킴이 활동은 우연히 시작하게 됐다. SKC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1997년까지 SKC 사장대우 상임고문을 지냈다. 은퇴 후 한국박물관학회에서 운영하는 국립중앙박물관 6개월 과정 특별강좌를 들었다. 이전에 우리 문화재에 특히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공대 출신으로 평소 식견이 있던 것도 아니다. 지인이 추천한 소일 거리 중 하나였다.
그런데 까다로운 과정을 밟아나가며 욕심이 생겼다. 궁궐지킴이는 박물관학교를 마쳐야 자격이 주어진다. 6개월간 3번만 결석해도 자동 중도하차다. 옛 건축양식부터 풍습, 유·무형문화재,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 야사 등 고3 수험생이 따로 없을 정도다. 과정을 마친 후 지원서를 내고 합격해야 한다. 2003년 초였다. 지난 63년 첫 직장에 첫발을 내딛던 40년전 그날처럼 떨렸다.
“처음엔 교육만 받을 생각이었는데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기뻤어요. 고참들 앞에서 직접 궁궐이나 종묘를 둘러보며 해설하는 마지막 단계가 있어요. 일종의 면접이죠. 질문에 답변도 잘 해야 하고 말더듬지 않고 잘 전달할 줄도 알아야 하고 세상에 쉬운 일이 없더군요. 탈락한 사람도 있다니까요.”
수천명을 이끌고 일했던 최고경영자답게 잘 해냈다. 궁궐 지킴이들 사이 활동처로 가장 인기있는 곳은 경복궁이다. 다음은 창덕궁. 종묘는 을씨년스럽다며 꺼리는 이들도 있다.
궁궐이 왕이 살았을 때 영화를 누리며 머문 곳이라면 종묘는 이 세상을 떠난 후 머무는 곳이다. 왕이든 이름없는 평민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없는 이들을 통해 ‘삶의 예의’를 배울 수 있는 곳이어서 끌렸다. 정전, 영녕전, 종묘재실, 전사청 등 알록달록 화려하지 않은 건물들도 좋다. 공부할수록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출장을 다닐 때 독일에서 한 유적지를 둘러본 적이 있어요. 동네 할머니가 해설사였는데 일본 관광객이 많으니까 아예 일본어를 공부했더군요. 그때 잠깐 은퇴하고 나도 저런 일을 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죠.”
지금도 퇴직한 임원 모임에 나가면 “뭣 하러 생고생 하느냐”는 반응이 많다. 맛있는 것 먹고 다니면서 슬슬 등산하고 건강을 챙기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소리. 누군가에게 도움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은퇴한 노동력의 재활용’이라고 해도 좋다. 더욱이 새 일터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 아닌가. 국제 무대가 새 일터다. 그의 제2라운드 인생 현장은 열정과 즐거움으로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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