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황제의 주치의 초가집아래 ‘100년 의술’[산골로 간 ‘명의 4대’변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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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7.14 09:40:35
  • 조회: 560
충북 영동군 양산면 비봉산 자락 아래에는 100년된 작은 초가가 남아있다. 처마 밑에는 고삼, 갈근, 나복자, 익모초, 산사육, 곽향 등 한약재 담긴 누런 봉지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집 주위에는 100여년 전처럼 생지황, 박하, 사삼, 당귀, 길경, 황금 등 갖가지 약초가 자란다. 고종황제 주치의인 변석홍 어의의 숨결이 살아있는 현장이다. 뿐이랴. 변석홍의 2대손 변상훈 의원은 박정희, 노태우 전 대통령이 약을 지어먹었을 정도로 당대 명의였다.

초가 사랑방은 장정 서너명이 앉으면 꽉 찰 만큼 비좁다. 그러나 80년대 말까지도 전국에서 찾아온 이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침 맞고 부황을 뜨며 병을 이긴 ‘변한의원(邊韓醫院)’ 자리였다. 지금은 초가 바로 옆 양옥으로 한의원이 옮겨졌다. 100년간 내려온 한의원 명맥은 여전하다. 한의원은 마을 터주대감으로 동네 사람들에겐 사랑방 같은 곳이다.



#‘꿩 대신 닭을 잡지마라’

현재 변한의원은 변기원 원장(45·사진 위)이 지키고 있다. 고종황제 어의(御醫)였던 죽천 변석홍 선생의 4대 손이다. 한의원은 고조부가 일제침략이 시작된 무렵 “왜놈의 녹을 받을 수 없다”며 이곳으로 내려와 차린 것이다. 1900년대 초부터 한 자리를 지켜왔다.

한의원에는 얼마 전까지도 사용한 고조부의 손 때 묻은 약장이 그대로 있다. 116칸마다 붓글씨로 쓴 약재 이름이 세월에 담겨있다. 칼날이 둔해진 약재 작두도 100년 이상 묵었다. 동의보감 등 대대로 선조들이 공부해온 낡은 고서도 남아있다.

그러나 색 바래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 있다. ‘꿩 대신 닭을 잡지마라’는 가르침. 고조부 때부터 지금까지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드는 집안 ‘비법’이기도 하다.

“황달을 다스리는데 꼭 필요한 약재 ‘시호’가 있어요. 그런데 농가에서 키운 것은 1만5천원, 수입산은 3,000원이에요. 산에서 자란 야생 시호는 6만원 정도구요. 꼭 야생 시호를 써야 하는 환자에게 값싼 것으로 약을 지어주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제 뱃속 채우려고 병을 속이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탕약을 짓기 전 약재 손질도 전통 방식 그대로 하고 있다. 약재 ‘향부자’는 12살이 넘지 않은 남자 어린이의 소변을 구해 담가 놓는다. 동네 할머니들은 손자의 오줌으로 용돈을 벌고 있다. 술에 씻어서 재워 놓아야 하는 것, 생강·식초에 담가둬야 하는 것 등 300가지 약재마다 손질법이 다 다르다.

집 근처 약초 재배와 약 조제를 돕고 있는 김종순 할머니(72)는 21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칠순이 넘었지만 피부가 하얗고 기력이 왕성하다. 변원장의 조부가 한의원을 운영할 당시 암 환자로 왔다가 인연을 맺었다.

“코 안에 암이 생겨 죽는 날만 기다렸어요. 그런데 한의원에서 8개월 동안 코 속에 약물을 넣고 탕약을 먹으면서 거짓말처럼 말끔히 나았어요. 어찌나 고맙던지 그때부터 일하게 됐죠. 예전엔 변한의원을 ‘송장약방’이라고 불렀어요. 다 죽게 된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해서죠. 지금 변원장도 조부만큼이나 깐깐합니다. 약초에 비료도 못주게 한다니까요.”



#‘이 빠진 약장’의 가르침

변원장은 여덟살 때부터 조부 한의원에서 심부름하며 자랐다. 고사리 손으로 작두질하고 툇마루에 순번대로 환자들을 앉히고 처방전을 받아 약조제방에 갖다줬다. 원광대 한의학과에 입학해서는 방학 때마다 고향에 내려와 조부 곁에서 한의원을 도왔다. 부친은 공무원 생활을 했다.

조부는 엄했다. 병을 키워온 환자들은 야단맞기 일쑤였다. 또 약 값이 비싸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은 혼이 났다. “병이 비싼 거지 약이 비싼 게 아니다.” 그러나 약값을 치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겐 아무런 조건없이 인술을 펼쳤다. 변원장 역시 뜻을 잇고 있다. 면사무소를 통해 어려운 이들을 보이지 않게 돕고 있다. 돈이 없어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을 따뜻하게 돌본다.

조부는 1989년 돌아가셨다. 숨을 거두기 한달 전까지도 환자들을 돌봤다. 변원장은 그후 3~4년동안 방황 아닌 방황을 했다. 조부의 명성을 듣고 한의원을 찾았다가 새파랗게 젊은 의원을 보고 석연치 않게 생각한 환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속는 셈치고 한 첩만 약을 지어간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면서 힘을 얻게 됐다.

3년 전부터는 고조부 때부터 만들어온 ‘변석홍 옥고’를 제조하고 있다. 생지황, 백복령, 홍삼, 꿀을 넣어 뭉글하게 끓인 한약 영양제다. 옛 방식 그대로 72시간 내내 백자 속에서 중탕한다. 예전에는 초가 가마솥에 머슴이 붙어앉아 밤새도록 물을 맞췄다. ‘변석홍 옥고’를 제조하는 곳은 작은 박물관처럼 꾸몄다. 변원장은 시골에 자리했지만 옛 자취가 사라지는 요즘, 우리 한의학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작은 볼거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원장은 가끔 자신의 진료 의자 뒤에 버티고 있는 약장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약장 맨 위칸은 이가 빠진 것처럼 서랍이 잘 맞지 않는다. 나중에 끼워놓아 잘 맞지 않아서다.

“고조부가 약을 지어준 환자가 있었는데 몇첩을 먹고도 병이 낫지 않자 홧김에 약장 서랍을 빼갔다고 합니다. 어의까지 지내신 분이 봉변을 당한 것이죠.”

‘자신을 과신하지 말며 겸손히 환자의 말에 귀기울이고 세심히 병을 살펴야 한다’며 전해지는 일화다. 변원장은 처음 진료를 보러온 환자와 30분 이상 대화한다. 아무리 환자가 많아도 그렇게 한다. 부여에서 온 김완곤씨(55)는 “자상하게 이것저것 묻고 살펴줘 진료하면서도 위안을 얻어 좋다”고 말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찾아온 한 초등학생과는 최근에 학교 생활까지 물으며 살폈다. 동네 어르신들도 몸이 쑤신다며 사랑방 오듯 찾아와 이것저것 묻는다. 홈페이지(www.okbyun.co.kr)로 의료 상담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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