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金삼순, 金삼순 되다 [열받다 힘받은 이땅의 김삼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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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7.06 09:27:01
  • 조회: 460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옛날의 ‘김삼순’이란 이름이 웬말인가. 그러나 촌스런 그 이름을 만나기 위해 매주 수·목요일 밤 10시만 되면 거리에서 여자들이 사라진다. TV 앞에 앉아 “맞아 맞아”를 외치고 있는 그들. 좌충우돌 ‘삼순이’를 보며 때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삼식이’ 현빈과의 사랑싸움을 보면서 자기 이름이 ‘김삼순’이기를 바라는 기이한 현상. 전국이 ‘삼순이 신드롬’ 열풍에 휩싸였다. 지금 진짜 ‘삼순이’들은 어떤 심정일까. 본명을 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드라마속 김선아의 모습에 남들과 함께 깔깔대면서도, 한쪽 마음 구석이 편하지 않을 전국의 ‘김삼순’들. 이 땅의 중학교 교사인 김삼순씨(29), LG텔레콤 고객센터 직원인 김삼순씨(24), 농협 직원인 김삼식씨(29)로부터 이름에 얽힌 실제 에피소드와 TV 드라마가 뜬 후의 달라진 근황들을 직접 들어봤다.

-실례인 줄은 알지만, 본명 맞습니까.
▲(이구동성) 뭐 실례랄 것도 없습니다. 한 두번 받은 질문도 아니고. 이젠 습관이 돼서 자동적으로 주민등록증을 꺼내는 경지에 올랐습니다. 자, 보세요. 본명 맞죠?

-요즘 세대엔 흔하지 않은 이름인데.
▲(고객센터 삼순씨·이하 삼) 위로 언니 둘은 이름이 정자, 경자입니다. 아들 자(子) 돌림으로, 대충 짐작하시겠죠? 아버지 사주에 아들이 없다는 말을 듣고 할머니께서 저를 끝으로 포기하셨죠.
▲(교사 삼순씨·이하 순) 제 언니 둘은 현아, 선아로 이름이 다 예쁘거든요. 전 동사무소 직원이 독촉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급하게 지으셨답니다. 왜 하필 저에게만 그러셨는지, 그 상대적 박탈감이란….

-학창시절 마음고생이 심했겠군요.
▲(삼) 말 안 듣는 애들한테 버릇처럼 ‘이 삼순이들아’ 하고 혼내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친구들이 “선생님, 우리반에 진짜 삼순이 있어요”라고 킥킥대자 매우 당황하시더군요.
▲(농협 삼식씨·이하 식) 저희 반엔 원식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이제 ‘두식이’만 찾으면 된다고 놀리던 기억이 나는군요. 요즘은 조기 퇴직 후 집에서 꼬박 세끼(三食)를 해결하는 분들을 ‘삼식이’라 한다죠. 아니 그런데 잊으려고 하는 기억을 왜 자꾸 상기시키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그래도 기왕 말씀하시는 거 조금만 더 아픈 과거를 밝혀주시면 안될까요.
▲(삼) 가끔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다짜고짜 화를 내시는 분들이 계세요. 감정이 격해져선 “그런데 지금 대답하는 사람은 이름은 뭐야? 엉?” 물으시기에 “네, 고객센터 김삼순입니다”라고 예의바르게 대답했죠. 그런데 순간 더 흥분하면서 “아니, 지금 농담할 분위기야? 당신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는 거예요. 어찌나 억울했던지. 얼마 전엔 택시를 탔다가 우연찮게 이름 얘기가 나왔어요. 운전기사분이 그러더군요. “요즘 세상에 좋은 이름, 나쁜 이름이 어딨어? ‘삼순이’만 아니면 되는 거지.” 제가 이름을 밝히자 기사분 얼굴이 빨개져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한 말씀도 안하시더군요. 뭐, 하나하나 모두 열거하자면 오늘밤을 새워도 모자랍니다.

-이름 덕을 본 적도 있습니까.
▲(식) 입사시험 볼 때 면접관들이 제 이름을 유독 좋아하시더군요. ‘삼식이’가 좀 시골스럽고 우직하잖아요. 농협 이미지랑 맞아떨어지는 거죠. 나중에 이사님이 “자넨, 이름덕 좀 본 것 같아”라고 웃으시더군요. 특히 할머니나 할아버지들한테 인기 만점입니다. 은행창구 파트에 있을 땐 일부러 저를 찾아오셔서 계좌를 트시는 할머니도 계셨으니까요.
▲(삼) 초등학교 땐 팔자에 없는 반장까지 해봤어요. 애들은 “김삼순을 추천합니다” “김삼순을…” 이러면서 제 이름 한번 더 불러보는 게 그저 즐거웠던 거죠. 저 하나 희생이 다른 이에게 기쁨을 준다니, 그것도 능력 아닐까요. 하하.

-드라마가 뜨고 난 후 더욱 주가가 급등했을 텐데요. 좋으시겠습니다.
▲(순) 아이고, 좋긴 뭐가 좋아요. 창피해 죽겠어요. 요즘 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교무회의때 교무부장님조차 제 이름 부를 때마다 실실 웃으시는데, 전 그냥 조용히 살고 싶었다고요. 사실 지난해 생일때 제자들이 저를 위한 책이라며 ‘내이름은 김삼순’ 원작을 선물로 주더라고요. 그때 이미 이렇게 될 줄 짐작했습니다.
▲(삼) 주가라기보다는 미니홈피 방문자 숫자가 급등했죠. 요샌 모르는 사람들이 일촌신청을 해와요. 제 이름이 부럽다나요.
▲(식) 어, 저도 그런 적 있는데. 한번은 ‘이삼식’이란 분이 ‘삼식이 모임’을 만들자면서 쪽지를 보내오셨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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