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밤에 피는 ‘격투 본능’[국내최초 여성격투기 출전 앞둔 유은경·김슬아양]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6.15 09:10:30
  • 조회: 719
체육관에 들어서는 순간 비릿한 땀냄새가 코를 찌른다. 선수들 모두 줄넘기나 미트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한눈에 여자선수가 들어오지 않는다. 한참을 둘러본 후에야 ‘그녀’가 눈에 띄었다. 질끈 동여맨 꽁지머리에 웬만한 남자보다 두터워 보이는 허벅지…. 짧은 반바지와 티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샌드백을 두드리는 발끝을 향한 눈빛이 집요하다.

‘그녀’들이 한국 최초로 여성들만을 위해 열리는 격투기대회에 출전한다. 1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 파라다이스선상에서 열리는 ‘제1회 한국최강여자 격투여걸 챔피언대회’에 출전하는 유은경씨(22·사진 오른쪽)·김슬아양(18·인천무비체육관·왼쪽). 기자가 다가서자 쑥스러운 표정으로 눈빛을 풀고 생글생글 웃으며 맞이한다. ‘여자’로 돌아간 듯하다.
격투기 바람이 한국에도 몰아쳤지만 여성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대표선수급은 전국에 20명 정도고 수련선수를 모두 쳐도 100여명에 불과하다. 이번 대회는 여성격투기의 실체를 알리고 저변확대를 위해 기획된 것. 이들은 선구자라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유씨는 2001년 1월, 고2 겨울방학에 격투기를 시작했다. ‘격투본능’이 어렸을 때부터 꿈틀댔지만 부모는 유씨가 여성으로 크기를 원했다. 태권도장에 가겠다고 졸랐지만 같은 건물의 속셈학원에 다녀야 했다. 공부가 안 돼서 그러니 한달만 해보겠다며 시작한 격투기. 5년째 하게 될 줄은 부모도 유씨도 몰랐다. 지금은 11전 8승3패의 전적을 자랑하는 한국대표선수 중 한명이다.

유씨는 현재 주얼리 상점에서 근무한다. 낮에는 예쁜 표정으로 보석을 팔지만 밤에는 불굴의 파이터로 변신하는 것. 유씨는 “격투기하냐고 주변에서 물어보면 자랑스레 대답한다”며 “예전에 비해서 ‘멋있다’는 반응이 많아졌다”고 씩 웃는다.

김양은 현재 인천 인일여고에 재학중이다. 고1 때인 2003년부터 격투기를 시작했다. 여군에 입대하는 것이 목표인 그는 강인한 체력을 만들기 위해 격투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격투기가 없으면 하루도 못 살 정도가 됐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자마자 체육관으로 달려와 땀을 뺀다.
“격투기는 나에게 삶의 활력소지요. 학교에서는 조용한 학생인데 이곳만 오면 자신감이 넘쳐요. 격투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선생님들의 ‘대접’이 달라지더군요.”

아직은 풋내기지만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3전 2승1패를 기록중. 이번 대회에선 오픈게임에 출전해 기량을 가늠한다.
이들은 짧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눈빛을 잡으며 바로 연습에 돌입했다. 시합이 코앞이기에 인터뷰 시간도 아깝다. 서로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 무릎으로 찍고 주먹을 날린다. 가끔 정통으로 맞을 때마다 미안해하지만 그렇다고 강도가 약해지지는 않는다.
자세히 보니 유씨의 허벅지와 정강이가 시퍼런 멍투성이다. 이들을 지도하는 김동균 관장(인천 무비체육관)은 “샌드백을 정확하게 치지 못하면 저렇게 멍이 든다”며 “연습을 하다보면 저런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한다.

유씨는 이미 치마입기는 포기한 상황이란다. 김양의 엄지발가락도 역시 붕대에 싸여 있었다. 발차기 중 발가락이 찢어져 응급처치했다.
아직까지 여자선수가 격투기로만 생계를 유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김관장은 “여성선수들 경기는 파이트머니란 개념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며 “생계 때문에 격투기를 포기하는 선수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가 이번 1회 대회 개최를 주도하는 이유도 여성선수들이 안정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오후 11시가 됐지만 이들의 발차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전신에 비오듯 땀이 흘러내리며 체육관이 땀냄새로 진동을 한다. 하지만 처음처럼 비릿하지는 않다. 꿈을 이루기 위해 흘린 이들의 땀 방울방울에 묘한 달콤함이 배어 있었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