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만남을 위한 이별‘유리城 2박3일’ [신생아가 고백하는 신생아실 24시]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5.27 09:33:25
  • 조회: 429
자녀를 한 두명 낳은 어머니도 신생아실에 대해선 잘 모른다. 너무나 소중한 아기들이 머무르는 ‘신성한’ 곳을 살펴보겠다고 감히 설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간호조무사들의 신생아 학대 사진 사건이 터졌다. 분개할 수밖에. 신생아실에서 땀흘리는 수많은 의료진들은 요즘 맥 빠진다. 부모들의 눈초리도 왠지 달라진 것 같다. 신생아실 안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취재가 쉽지는 않았다. 병원이나 부모 모두 민감해 있기 때문. 최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취재한 내용을 한 아기의 목소리로 담았다.



#비밀요새 같아요

엄마, 내 이름은 뭐예요? 나 남자야, 여자야. 아 정말 궁금하다. 솔직히 저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방금 전에야 여기가 어딘지 알았다니까요. 처음엔 무슨 첩보 영화에 나오는 요새인 줄 알았어요.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문, 제복을 입은 사람들, 외부인은 감히 출입할 엄두도 못내죠. 24시간 조명이 꺼지지 않는 곳. 서울 역삼동의 차병원 신생아실이죠.

사방에 아기들이 잔뜩 누워있어요. 속싸개에 꽁꽁 싸여서요. 그래야 아기들은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대요. ‘으앙으앙’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에 시끄러워 죽겠어요. 40여명이 모여 있으니 조용할 때가 없죠. 뒤쪽 유리벽 안에는 ‘치료실’이 따로 있어요. 보통 15명 정도가 있대요. 황달이나 비교적 가벼운 증세를 갖고 있죠.

하루 10~20여명이 신생아실로 들어와요. 예전엔 하루 40명이 태어난 날도 있대요. 침대가 모자라서 난리났대나 어쨌대나. 수간호사 아줌마가 요즘은 ‘왕자’가 더 많대요.

오전 11시가 가까워오면 좀 바빠져요. 신생아실 앞 전면 유리를 가린 커튼을 치거든요. “문 엽니다!” 간호사 아줌마들은 약간 긴장하는 얼굴빛이에요. 아침 일찍부터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른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시간이니까요.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삼촌들이 CD 한장 만한 우리 얼굴을 보려고 달려들어요.

“우리 공주님·왕자님들 세상 밖에 나와서 다 주무시네.” “돈 많이 벌어야겠다.” “지 엄마 편하게 순하게 커야하는데….” “딱 지아비 닮았구나.” 한마디씩 하세요. 어느 할머니 두 분은 서로 눈치를 보시더라고요. 누가 맡아 키워주실지 아직 결정이 안났나봐요.

아이 눈부셔! 사방에서 카메라폰, 비디오카메라로 찍느라 난리네요. 예전엔 볼 수 없는 광경이라죠. 좀 귀찮긴 한데 나름대로 신경쓰여요. 태열로 붉은 얼굴을 보고 ‘외계인 같다’는 철없는 어른도 있잖아요. 나 참.

‘철없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말 못하는 연약한 우릴 갖고 장난친 어른들. 생각만해도 화나요. 그 사건 이후 분위기가 좀 뒤숭숭해요. 여긴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커튼을 열어놔요. 그런데 병원들마다 ‘24시간 개방해야 한다’ ‘CCTV를 달아야 하는 거 아니냐’ 부모들의 요구가 많은가봐요.

신생아실에는 20여명의 간호사들이 일하세요. 예비 간호사 대학생 7명이 더 있고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죠. 그런데 유리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한가롭게 비치나봐요. 다른 진료과에서는 신생아실 근무를 두고 ‘백조과’라고 한대요.



#여기도 작은 세상이죠

우릴 너무 우습게 본 거죠. 분유를 먹는 친구들은 3시간 간격으로 먹어요. 30명이 먹는다치면 하루 240회 수유를 해야죠. 정말 팔 떨어지겠다. 기저귀는 또 어떻고요. 뱃속에서 나와 처음 6시간 동안은 아주 굶기더라고요. 일부러 그런대요. 그 다음 증류수를 한모금 먹이고 잘 삼키면 희석분유, 분유 순서로 주죠.

모유 먹는 아기들은 달라요. 요즘엔 젖 물리는 방법을 모르는 엄마들이 많아서 정말 큰 일이에요. 간호사들이 엄마 젖꼭지를 잡고 우리가 모유 먹는데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웰빙바람’이 불어서 그렇다나. 모유 안먹이면 좀 창피한 분위기래요. 고집 센 아기는 30~40분간 버티다가 마침내 엄마 젖꼭지를 빨죠. 환히 웃는 엄마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요.

여기에서도 세상 쓴맛을 경험해요. 서열이 있다니까요. 포대기에 싸인 아기들은 태어난 지 8시간이 안됐다는 표시예요. 뱃속에서처럼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거죠. 맨 앞 유리에 있는 아기는 태어난 지 12시간이 안 됐다는 거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뒷줄 한칸씩 물러나요. 맨 뒷줄이 퇴원을 앞둔 고참이죠. 보통은 2박3일간 머물어요. 엄마가 수술을 해서 태어난 경우에는 2, 3일간 더 머물죠.

요즘은 퇴원 후 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산후조리원으로 간다나요. 세상에 하루 수십만원대 호화판 산후조리원도 있다니 세상 참 요지경이죠. 분유값 걱정하는 엄마들도 많다던데.

사실 태어나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신생아실로 옮겨진다고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물로 저를 씻은 다음 30분간 제 몸을 샅샅이 검사한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요. 엄마 자궁문 빠져나오며 머리가 찌그러지지는 않았는지, 귀 모양은 제대로인지, 어깨 골절은 없는지, 발가락은 이상 없는지 글쎄 100여가지를 살핀대요.

그런데 신생아실로 못오는 아기들도 있어요. 지금 ‘집중치료실’에 28명 정도 있어요. 미숙아나 호흡기 장애, 간염에 걸린 친구들이죠. 아기들한테는 차마 ‘중환자실’이라고 부르기 안타까워 ‘집중치료실’이라고 한대요.

엄마, 이제 조금 피곤하네요. 잠이 쏟아져요. 어! 저도 한칸 뒷줄로 옮겨지네요. ‘신참’들이 또 들어왔나봐요. ‘엄마!’ 앞으로 8~9개월 후에나 소리내어 불러볼 수 있겠죠. 그때까지 잠 잘자고 많이 먹고, 잘 싸고 무럭무럭 자랄게요. 제가 살아갈 세상이 참 기대돼요. 믿어요. 아름답고 평화로울 거예요. 엄마의 품처럼. 세상은 원래 그랬잖아요.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