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쩡… 쩡… 들리는가 [1000년전 신라석공들이 돌같은 내맘 다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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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5.13 09:50:52
  • 조회: 367
골짜기마다 부처, 봉우리마다 석탑

남산은 돌산이다. 부처와 탑이 없다면 결코 아름다운 산이 아니다. 숲이 그리 울창하지 않은데 설상가상으로 몇 해 전 화재로 인해 금오봉 일대의 솔숲이 타버렸다. 까맣게 그을린 소나무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산길. 마음이 쓰라릴 때마다 부처들이 불쑥 튀어나와 웃는다. “나도 비바람을 맞고 1,000~1,500년을 버텨왔는데…”라고 하는 것 같다.



#칠불암과 신선암

칠불암 길은 산불의 피해가 없어 신록이 아름답다. 들머리인 과수원 앞에서 아늑한 산길을 45분쯤 걸으면 칠불암. 칠불암이란 부처가 일곱이란 뜻이다. 절벽 평면에 삼존불이 새겨져있고 그 앞 4면에 모두 부처가 양각돼 있는 사방불이 있다. 칠불암에서 사진기를 꺼내자마자 보살이 뛰어나오며 기와 불사를 권한다. 머리핀 대신 빨래집게를 꽂고 있던 천진난만한 보살. 언제쯤 만들어졌는지, 전설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1955년인가 56년쯤에 나물 캐러왔던 보살님이 칠불암을 발견했대요. 그때는 흙에 반쯤 묻혀있었다고 합니다.”

그날 해가 산을 넘어가 안타깝게도 칠불암 돌부처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서산의 마애삼존불도 햇빛의 각도에 따라 표정이 다른 것처럼 칠불암도 마찬가지. 오호라. 평면 부처의 표정은 햇살인가 보다.

할 수 없이 이튿날 새벽에 다시 올랐다. 구시렁댔던 기자의 마음을 알았는지 첫 햇살에 비친 7기의 돌부처는 웃고 있지 않다. 근엄하고 엄숙하다. 칠불암 뒤편으로 10분쯤 더 오르면 신선암. 칠불암보다 더 잘생긴 부처다. 신선암 마애불은 동쪽 산줄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구름 위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까마득한 절벽에 새겨진 신선암 마애불(사진 왼쪽)은 보존상태가 좋다. 화관과 옷 모양까지 뚜렷하다. 절벽에는 아마도 지붕을 받쳤을 법한 홈과 구멍들도 보인다. 마애불은 1m75㎝ 정도의 어른과 눈높이가 같다. 표정이 알 듯 모를 듯 하다.



#용장사지

신선암에서 내친김에 용장사지로 옮겼다. 숲길을 빠져나와 만나는 임도. 마른 먼지가 쉴새없이 날리는 길은 당장 내려가고 싶다. 산불에 그을린 임도 주변에는 그늘조차 없다. 나무는 없고 바위뿐이다. 근육은 없고 뼈만 남은 산이다. 까맣게 탄 소나무에서 나온 새순, 길섶의 제비꽃이 그나마 위안이다.

용장사 삼층석탑(오른쪽)은 길에서 보이지 않았다. 바윗길을 접고 내려가는 길. 갑자기 바위 위에 높이 5m 삼층석탑이 턱 나타났다. 산들을 발아래 내려다보고 있는 경치 좋은 절벽 위에 세워진 석탑은 남산에서는 가장 크다. 산 아래에서는 이정표처럼 또렷하게 보였을 것이다. 희한하게 기단은 없다. 바로 바위산 전체가 기단이기 때문에 기단을 따로 만들지 않았단다. 그러고보면 신라인들은 산 전체를 하나의 절로 여긴 게 분명하다. 탑에서 바라보면 부처가 앉았던 자리 연화대가 있다는데 연화대는 결국 찾지 못했다. 산 아래엔 조선초기까지만해도 용장사가 있었다. 조카를 죽이고 세조가 임금자리에 오르자 벼슬을 포기한 천재 김시습이 머물며 ‘금오신화’를 썼던 곳이다. 김시습은 전설이 됐고, 용장사도 절터와 불상, 탑만 남긴 채 전설로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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