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소년은 울지 않는다 [핸드볼 코트의 ‘여드름 슛돌이’ 이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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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5.04 09:43:36
  • 조회: 594
‘한달 남았다. 짜식들 두고 보라지! 라이트 윙의 점프슛, 매울 거다. 난 너희와 싸우는 게 아니야. 지금 내 운명과 경주하고 있다고…’

현식(13)이는 벼르고 있다. 오는 5월28일 청주에서 열리는 전국소년체육대회에 현식이가 뛰는 삼척시 삼척중학교 핸드볼팀이 강원도 대표로 출전한다. 2학년 현식이는 꿈나무다. 전국 핸드볼 감독들이 인정하는 에이스. 하얀 피부에 돋아난 붉은 여드름이 여느 사춘기 남학생과 똑같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쑥스러워 목소리가 작아지고 눈맞춤도 어색한 소년.



#한번, 두번, 4,000번 던지며 커가는 꿈

그러나 코트에선 아무도 못말리는 승부사다. 핸드볼 공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만졌다. 작은 손아귀에 다 들어오지 않는 공을 움켜잡던 날. 벽을 향해 던지면 더 강하게 튕겨 나오는 공이 좋았다. 꼭 자기 같았다. 한번, 두번, 열번, 백번 어느새 4,000번을 던졌다.

대여섯살 때부터인가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학교와 집 어느곳에도 가고 싶지 않던 시절. 오랜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가 싫었고 어릴 적 버리고 떠난 엄마도 미웠다. 20여년 가까이 오징어 배를 탔던 아버지는 8년 전부터 당뇨와 합병증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 한번씩 인슐린 주사를 직접 놓는다. 제때 주사를 놓지 못해 현식이를 못 알아본 날도 있다.

마음을 잡아야 했다. 물집 잡히고 굳은 살이 박일 정도로 공을 잡고 던지고 점프하면서 점점 마음이 달라졌다. 핸드볼은 이제 가장 친한 친구이고 엄마이고 꿈이 됐다. 그리운 엄마….

“아직은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미치도록 보고 싶은 날도 있고 원망스럽고 밉기만 한 날도 있는걸요. 자꾸 마음이 바뀌어요.”

병을 앓으면서도 자주 술에 의지하던 아버지는 요즘 달라졌다. 열심히 운동하는 현식이를 보고 기운을 낸다. 도움을 주는 천사운동본부도 고맙다.

몇 달전부터는 술을 줄이고 방안에서 찢어진 그물 잇는 일을 한다. “현식이가 저녁 때 돌아와 그물코에 납 묶는 일을 돕기도 해요. 요즘엔 일거리가 없어요. 지난달 꼬박 엮었는데 그나마 돈을 받지 못해 애한테 미안해요.”

유일한 생계비는 생활보호대상자로 받는 한달 30만원. 그나마 월세와 약값을 치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운동하는 아들에게 고기 한번 사주지 못한 아버지는 ‘열심히 하라’는 말조차 미안하다. 변변한 살림살이 없는 방이지만 벽에는 자랑스러운 메달이 걸려 있고 밥상 위엔 트로피가 놓여있다. 2003년 전국소년체전 준우승, 2002년 강원도 대표 우수선수상. 희망이 담겨있다.



#투지, 오기로 뭉친 코트 악동

핸드볼이 비인기 종목이라며 희망없다고 말하는 어른도 있지만 아니다. ‘바람처럼 달리고 거친 몸싸움도 벌이고 멋진 기술로 상대 녀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슛이 얼마나 기막힌데….’

경기장에서 줄곧 지켜본 감독들은 ‘깡다구가 대단한 아이. 초등학교 때는 현식이 갖고 경기 다 치렀다’고 말할 정도다. 경기 끝나기 10초 전. 동점 상태. 또래 선수들은 센터백 공격수에게 공을 떠넘기고 만다. 하지만 현식이는 배짱 좋게 공격한다.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몸싸움에 지는 법이 없다. 악착같다.

철들고는 울어본 기억이 없다. 삼척초등학교 때 경기에 져서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운 적은 있다. 그러나 지난 겨울 딱 한번 눈물이 날 뻔해 꾹 참았다. 처음으로 생일상을 받았다. 아버지가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미역국과 밥, 김치가 전부인 생일상이었지만 친구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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