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살아서 이렇게 일하는 것 그게 행복이고 성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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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4.18 09:03:02
  • 조회: 514
위암4기 상황은 심각했다. 절망속에서 힘이 되어준 가족. 몸이 나아지면서 같은 처지의 환자들에게 생식을 권했다. 동병상련, 고객의 마음을 움직인 덕에 전국 매출 1위의 실적을 올렸다. 시련은 끝이 아니라 빛나는 시작이 될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제가 성공했다고요? 하긴 이렇게 튼튼하게 살아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성공한거지요. 호호호.”

‘성공’이란 단어에 손사래를 치며 웃는 이롬황성주생식 서울 광진동부지국 고은경 소장(49). 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에서 시인으로의 변신, 암 극복, 전국 매출 1위의 세일즈우먼이라는 이름까지. 그의 경력은 결코 녹록지 않다.



젊은 시절. 순탄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춘천교육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연고지인 서울로 발령받아 시작한 초등학교 선생님. 든든한 남편에 예쁜 외동딸도 두었다. 남부러울 게 없었다.

그의 인생을 바꾼 첫 계기는 딸의 입학식이었다. 많은 아이들 가운데 수줍지만 당당히 서 있는 딸 아이의 모습. 가슴은 찡했지만 문득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그 길로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3년만 더해 20년을 채우면 연금이 나와 노후가 보장될 것이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었는데 그걸 못했던 것 같아요. 내가 할 일은 교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대신 선택한 것이 시인의 길이었다. 고교시절부터 품었던 꿈. 이근배 시인, 박남철 시인을 스승으로 모시며 배운 열정으로 늦깎이 등단을 할 수 있었다. “그때가 1999년 봄이었어요. 재미삼아 본 토정비결에 ‘고목에 꽃이 피는 운세’라고 하더니 과연 맞구나 싶었어요.”

그러나 그의 앞에 또다른 시련이 있었다. 등단한 지 3개월이나 지났을까. 배가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다. 처음에는 가볍게만 생각했다. 인생도 긴데 수술이라는 경험도 한번 해봐야지 하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심각했다. 위암 4기로 위를 모두 절제하는 수술을 한 후에도 생존율은 20% 남짓이었다. 1년 반의 항암치료도 남아있었다. 그는 “시도때도 없이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게 더이상 드라마에서 보던 일이 아니었다”며 “항암치료를 한달 하고 나니 지쳐버렸다”고 말했다.

자포자기에 이른 그를 지탱해준 것은 초등학교 6학년이던 딸. 다 키워놓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의지를 다졌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암에게 “내가 살아야 너도 살지 않겠니”라며 타이르기도 했다. 동시에 생식과 식이요법을 병행했다. 처음엔 밥 두 숟갈만 먹어도 너무 아파 데굴데굴 구를 정도였지만 조금씩 병세가 호전됐다.



몸이 나아지면서 생식 세일즈에 도전했다. 노력한 만큼 보수를 받는 정직한 일인 데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환자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손으로 직접 시를 써서 고객에게 보내고 암 병동의 환자들을 찾아가는 등 독특한 영업을 펼쳤다. 항의를 한 고객에게 차분히 편지를 써보내 단골로 만들기도 했다. 꾸준한 그의 노력이 전국 매출 1위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세일즈는 ‘이거 하나 사줘’라고 자존심을 굽히는 게 아니에요. ‘필요하면 하나 사보세요’라며 고객의 필요성을 찾아주는 것이지요. 자신을 높이고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가 따라오는 것 같아요.”

고소장은 최근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5년 내에 재발하지 않으면 재발률이 1% 이하라더라”며 “당장 교통사고로 내일 죽을지 모르는 세상에서 난 99%의 생존율을 보장받은 것”이라고 웃었다. “위암 판정은 내게 끝이 아니라 빛나는 시작이었습니다.” 고소장의 미소에 봄햇살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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