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심고 가꿔봐! 아름드리 꿈을[양평 대보산 ‘나무심기 전도사’ 이규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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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4.04 09:33:42
  • 조회: 662
“나무들이 나를 보면 부들부들 떨어요. 혹시나 잘리거나 뽑혀나가지 않나 싶어서…, 그러면 넌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하고 나무들을 어루만져주죠.” 경기도 양평군 대보산 산지기 이규현 할아버지(71)는 “개장수가 지나가면 동네 개들이 알아보고 짖어대는 것처럼 내가 산에 들어서면 나무들이 떨고 있다”고 헐헐 웃었다.

“일제강점기때 아버지는 우마차 30~40대를 거느린 대 목상(木商)이었죠. 아버지를 따라 산에 자주 갔는데 아름드리 나무들이 턱! 턱! 베어져 나가는 게 어린 마음에도 안됐더라고…. 아버지는 나무를 베는 사람이지만, 나는 나중에 나무를 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죠.”



#나무에 미치다

할아버지가 나무와 맺은 인연은 태생적이다. “6·25 피란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우. 돌아가신 장소가 바로 아버지가 아름드리 나무를 베던 그 산, 그 골짜기인 거야! 섬뜩하더라고!” 큰 나무에는 기(氣)가 있어서 사람이 나무를 해치면, 나무도 사람을 해친다고 했다. 말 못하는 나무지만 조심하고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아버지와 다섯형제, 가산까지 모두 잃고 고아가 됐다. 어려움을 겪었다. “4년 늦게 고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어느 날 소나무숲으로 소풍을 갔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 나무 심는 일을 해야겠다는 어릴 적 막연했던 꿈이 가슴에 불도장으로 박혀버린 거죠.”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나무 심기’에 미친 사람이 됐다. 고교 졸업후 첫 직장으로 강원도 도청 산림과에 들어간 그는 새마을운동이던 ‘지산녹화(地山綠化)’ 사업에 정열을 불태웠다. “당시 나무를 베면 처벌을 받았어요. 처벌받은 읍·면장이 부지기수였죠. 이게 나무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사람 목을 자르는 일이다 싶어서 회의가 들더군요. 부서를 상공과 광무(석탄, 무연탄) 담당으로 옮겼는데, 이번엔 석탄을 캐는 데 필요한 ‘갱목’이 눈에 띄는 거예요. 광산에서 갱목용 나무들을 마구 베는데, 못참겠더라고…”

결국 사표를 내고 이듬해 총무처 공무원 시험에 응시, 병무청에서 인력 행정을 맡았다. “인력 행정을 하면서도 사람이 아니라, 나무만 보이는 거예요. 나, 원 참…” ‘나무심기’ 전도사가 된 이규현 할아버지는 산림청으로부터 1천2백만평의 국유림을 얻어내 병무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1인당 나무 만주 갖기 운동’을 벌였다. 1,200명 병무청 직원들이 모두 동의했는데, 정작 병무청장이 사인해주지 않아 나무운동은 무산되고 말았다. 결국 고교 동창생들을 설득해 1백20만정보에 나무를 심었다. 지독하다. ‘나무 심기’에 대한 열정은 아무도 못 말렸다.

“나무심기에 미친 사람이라고, 직장에서도 인정해주더라고요. 주5일 근무라는 개념도 없을 때였지만 상사 허락을 받아 5일 동안 1주일치 일을 다하고 주말이면 무조건 산에 나무를 심으러 갔죠.” ‘미쳐서 하는 사람에게는 못당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무 심기’에 미친 그를 가족도 동료도 포기했다.



#나무에 기대다

그렇게 미쳐서 심은 나무는 지금까지 47만1천3백60주. 그가 심은 나무의 량은 가로수 행대(5m 간격)로 따지면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 2번이나 왔다갔다 하고 한번 더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이다. 엄청나다. 그 공로로 그는 1976년 수범공무원 옥조근조훈장, 79년 조림왕, 86년 모범독림가로 인정받았다. 지난해에는 철탑산업훈장까지 받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나무에 미쳐 살았지만,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조림과 육림에 대한 갈급함이 다 채워지지 않는 거예요.” 88년 병무청을 명예퇴직하고는 아예 산중에 들어앉았다. 대보산에 움막을 짓고 24시간을 나무와 벗하며 살았다. 전기도 물도 들어오지 않는 그의 움막엔 멧돼지들이 내려와 앞마당을 헤쳐놓고, 부쩍 부쩍 나무들이 크는 소리가 정적을 깨기도 한다.

최근에는 대보산 옆에 있는 칠보산 관리도 맡았다. 한 젊은 사업가가 17~○○○을 꾸준히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을 보며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관리해 주고 있다.

“나무를 심는 것은 꿈을 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무를 심는 일은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한 선물이죠.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진작 포기했겠죠.” 할아버지는 평범해 보이는 대보산 일대가 10년 아니 20년 후 손에 꼽히는 아름다운 숲, 웅장한 숲이 되리라 자신했다. 그 때 그 숲의 장관을 그가 직접 보지 못할지라도 나무들은 ‘나무에 미친 할아버지’의 뜨거운 손길을 보듬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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