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어느 시골교회의 밥 그리고 꿈 [원평리에 빛나는 부활절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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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4.01 17:39:23
  • 조회: 540
강원도 사북면 화천댐 가는 길의 작은 마을 원평리. 밭고랑 사잇길을 아이들이 깨금발로 뛰어온다. 발걸음이 멈추는 2층 빨간 벽돌집. 원평교회 공부방에선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그치질 않고, 지붕 위 십자가는 부활절(27일)을 맞아 조용히 빛나고 있다.

방과 후 오후 3~4시 공부방 현관은 크고 작은 신발로 가득하다. 오늘 학교에서 칭찬받은 얘기, 꾸지람 들은 얘기, 특별활동 시간에 있었던 재미난 일들이 시시콜콜 쏟아진다. 유치원 또래 아이부터 초·중학교에 다니는 동네 20여명 아이들의 보금자리. 여기서 밥 먹고, 머리 감고, 숙제하고 논다. 외로운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음을 데우는 중이다. 한부모 가정이나 조부모와 사는 아이들이 많다.



#밥먹기 전엔 공부하지 마라

신창윤(37·목사), 엄예원(33)씨 부부는 지난 7년 동안 동네 아이들을 위해 ‘꿈마을 공부방’을 열어왔다. 엄씨는 저녁 때가 되면 아이들 식사준비 하랴, 수학문제 풀이 도와주랴, 피아노 연습 봐주랴 종종 댄다. 신목사는 앞마당에서 배드민턴과 테니스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예체능은 물론 학교에서 회장·부회장으로 뽑혀 부러움을 사고 있다. 승지(15)는 난생처음 지난해 반에서 1등을 했다.



“애들한테 공부 욕심내지 않아요. ‘먹는 데 힘쓰자’가 목표였던 걸요. 허기를 달래고 마음이 안정되니까 자연 공부도 잘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애들 덕분에 공부방이 ‘명문’이 됐죠.” 가장 달라진 건 아이들의 생활태도다. 학교 다니는 즐거움을 알게 됐고 작은 가슴마다 꿈이 생겼다. 마음을 의지할 울타리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시작했다. 지난 1998년 원평리의 ‘원평교회’에 부임했다. 달랑 예배실 하나인 시골 교회. 교인 대부분은 밭 농사짓고 인근 낚시터에 기대어 사는 60, 70대 노인들이었다. 어른은 물론 교회에 따라온 5~6학년 아이들도 성경책을 읽지 못했다.

“애들이 커서 사회생활을 하려면 신문이라도 읽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한 두명씩 붙잡고 한글을 가르쳤죠. 그런데 방과 후 집에 가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고 저녁을 굶는 아이들이 많은 거예요. 공부고 뭐고 밥부터 먹여야겠다 마음 먹었어요. 밥상에 숟가락 몇개 더 올리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당시 살림집은 교회 옆 낡은 흙집이었다. 방 한 칸에 싱크대가 놓인 마루가 전부였다. 천장이 낮아 신목사는 항상 고개를 숙이고 생활했을 정도. 밥상 세 개를 나란히 붙여놓고 아이들이 둘러 앉으면 아무도 지나갈 수 없을 만큼 비좁았다. 부부의 생활비는 5만원. 아이들이 불어나자 힘들었다. 교인들도 도움 줄 형편이 못됐다.

“집에 가서 라면도 먹을 수 없는 애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돌려보냈어요. 남고 싶어하는 눈빛이 빤히 보이는데. 그땐 정말 애들 실컷 먹이는 게 소원이었어요.”



엄씨는 쌀이 떨어진 날이면 밀가루를 구해와 반죽 놀이를 했다. “오늘은 별미로 수제비 해먹자. 반죽할 사람 누구?” 속 모르는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반죽했다. 목사의 자녀는 3명. 공부방 아이들과 한데 어울려 자란다.

그러나 버티기 힘든 순간도 많았다. 아이를 돌보지 않고 방치하면서도 ‘내 자식 일에 웬 참견이냐’며 성내는 아버지, 공부방 사정을 알면서도 돈을 훔치고 거짓말하는 아이, 딴 속셈이 있어 아이들을 끌어모으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들. 가장 절망했을 때는 공부방에 다녔던 한 여학생이 고등학생이 된 후 미혼모가 된 일이다. 사랑의 인연인지 그 여학생이 낳은 아기는 어느덧 자라 공부방에서 손꼽히는 개구쟁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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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가좋은날 05.04.02 16:47:14
    목사님의 생활이 존경 전 그냥 추상적일수 있지만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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