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상처받은 사람들 모두 주인공 [밀리언달러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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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3.25 09:22:49
  • 조회: 658
단단히 각오했다. 1993년, ‘퍼펙트 월드’가 상영중인 극장 안은 울음을 참지 못하는 이들로 가득했고, 심지어 나중에 TV로 보면서 브라운관을 붙들고 대성통곡했다는 지인도 있었다. 그렇게 사람을 울릴 줄 아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새 영화에 대한 소문이 심상치 않았으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아니나다를까 극장에서 나오는 이들의 얼굴을 훔쳐보았더니 눈과 코가 벌겋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비교적 근래에 만든 영화들 중엔 ‘미스틱 리버’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세상을 오래 산 사람이자 늙은 배우이기에 만들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 물론 독특한 감각이 느껴진 ‘미드나잇 가든’도 있었고, ‘밀리언달러 베이비’ 이전에 모건 프리먼과 앞서 만난 ‘용서받지 못한 자’처럼 젊음과 늙음을 동시에 담은 경우도 있었다.


말에 제대로 오르지도 못하는 늙은 총잡이와 흑인 총잡이, 그리고 시력이 나빠 눈에 뵈는 게 없는 풋내기가 한 패를 이룬 ‘용서받지 못한 자’에 정의의 건맨은 등장하지 않는다. 보통 서부영화는 숨막히는 결투로 마지막을 장식하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의 마무리는 그것과도 한참 멀다. 총도 없는 악한 보안관을 쏴버리고, 무기력하게 뻗어버린 그를 확인 사살하는 주인공이라니! 그때 보안관(진 해크먼)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렇게 죽을 줄이야….” 그건 관객도 마찬가지였다.

‘밀리언달러 베이비’에는 이러한 파격과 연륜이 함께 버무려져 있다. 이야기가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매기(힐러리 스왱크), 그리고 스크랩(모건 프리먼)을 중심으로 엮어지지만 슬쩍 끼어든 이야기들도 많다. 그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을 곱○○○어보는 것도 묘미가 있다.

프랭키가 타이틀매치 주선을 계속 회피하자 떠나버린 유망주는 말하지 않아도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음을 알 수 있는 청년이다. 그에게는 부인과 새로 바꾼 엄마의 차 색깔이 맘에 안 든다고 투정부리는 딸이 있다. 챔피언 벨트를 두를 자격이 있었던 그는 성공과 가족을 위해 프랭키를 떠나야만 했다.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새 남자친구에 의하여 유기당한 데인저의 이야기. 갈 곳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데인저는 권투에 몰두하지만 프랭키의 골칫거리이자 도장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그런데 감초 역할로나 보였던 그가 링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떠났던 도장에 다시 돌아오는 장면은 의외의 울림을 남긴다. 또, 매기와 타이틀매치를 치르는 챔피언이자 악랄한 반칙을 일삼는 ‘푸른 곰’은 어떠한가. 구(舊) 사회주의 국가에서 창녀였던 그가 미국에서 표독스럽게 살아남아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사연도 한편의 드라마였을 것이다. 매기에게 마지막 펀치를 날린 후의 ‘푸른 곰’의 형언하기 힘든 표정에선 그 역시 전적으로 악한 자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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