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먹물의 위선 변할 수 있을까 [가능한 변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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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3.25 09:22:04
  • 조회: 707
우리네 삶은 쳇바퀴 도는 다람쥐들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자 토쿄국제영화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 수상작인 ‘가능한 변화들’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뭉게구름을 통해 정중동(靜中動)이라고 말한다. 구름이 멈춰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면서 그것이 현실이든 환상이든 가능한 변화들이 아니겠느냐고 묻는다.

주인공은 30대 문호(정찬)와 종규(김유석). 유부남 문호는 기혼임을 숨기고 채팅으로 만난 은행원 윤정(윤지혜)과 허름한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다리를 저는 노총각 종규는 첫사랑인 유부녀 대학교수 수현(신소미)과 호텔을 찾는다.



이렇듯 네 인물은 하나같이 위선적이고 이중적이다. 종규와 윤정은 문호와 수현보다 더하다. 연구실 비서에게 임신을 시킨 종규는 첫사랑을 못잊어 하면서 아무 여자에게나 노골적으로 집적댄다. 애인이 있는 윤정은 지점장과 불륜관계이다.



그런 이들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회사를 그만둔 문호는 전업작가가 되려 한다. 윤정은 애인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려 한다. 사고로 부상을 당한 기관 연구원 종규는 대학교수인 수현이 부럽다. 검사의 아내인 수현은 지방이 아닌 서울의 대학에 가려고 한다.

문호와 종규, 윤정과 수현은 동일인이거나 또다른 자아로 해석된다. 변화를 꿈꾸면서 제자리를 맴도는 현대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들의 변화와 변화의 가능성을 욕망과 꿈을 뜻하는 섹스를 매개로 풀어낸다. 문호와 종규는 윤정·수현과 쾌락을 더 즐기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짙푸른 바닷물과 뭉게구름이 한눈에 보이는 바닷가의 위태로운 절벽인 점은 이들의 상반된 꿈과 현실을 상징한다.



민병국 감독이 홍상수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점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영화는 자연스레 홍감독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지식인의 이중성과 위선을 섹스 라이프에 맞춰 조명한 점이 그렇고, 드라마 구조를 전·후반부로 나눠 두 커플의 일상을 세밀하게 풀어낸 점도 그러하다.



그러나 영화는 홍감독의 작품과 궤를 달리한다. ‘먹물’들에 대한 풍자와 조롱에 그치지 않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 드라마 구조와 유머가 배제된 음울한 톤으로 변화의 희망이 거세된 현대인의 삶을 역설한다.

유인촌이 정체불명의 사나이와 종규의 상사로 등장하고, 문호와 종규가 각각 받아든 ‘…불은 불을 낳는다’는 문구가 인쇄된 전단지 등을 통해 극중 이야기가 모두 환상일 수 있다면서 그것이 과연 가능한 변화이겠느냐고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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