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함께 걷고 싶습니다”[피보다 진한 사제의 情 … 김재영 명예교수와 김창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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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3.22 09:00:49
  • 조회: 578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말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 예전처럼 엄하면서도 다정하게 다가오는 스승, 공손히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공교육이 힘을 잃으면서 생겨난 교실 붕괴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어려운 법.

그러나 그 가깝고도 먼 사이를 정으로 채워온 사람들이 있다. 전북대 정치사회학부의 김재영 명예교수(70·사진 오른쪽)와 김창희 교수(50)다. 스승은 “청출어람이라고,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라고 제자 칭찬에 열심이고, 제자는 “선생님은 인간관계나 업적 모두에서 누구보다 훌륭한 분”이라며 스승을 향한 존경을 감추지 않았다.



#자전거 연정

사제가 처음 만난 건 1978년, 지금 서있는 전북대 정치사회학부(당시 정치외교학과) 바로 그 자리였다. 학부생이던 김창희 교수가 군제대후 복학하니 김재영 교수가 정치사회화 전공 교수로 부임해 있었다. 김교수는 “정치사회화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선생님 수업을 많이 듣고 학문의 열정과 깊이에 반해 따르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김명예교수의 석·박사 지도제자 1호가 됐다.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김명예교수의 연구실은 두 사람의 아지트가 되었다. 당시 김교수의 집은 김명예교수의 집에서 3분가량 떨어진 거리.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김교수는 아침 등굣길에 꼭 김명예교수의 집에 들러 함께 길을 나섰다. 자전거 한대에 가방은 두개. 쉬엄쉬엄 밀고 끌며 이야기 하다보면 어느새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92년 부임한 김교수의 교통수단은 자동차로 바뀌었지만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결국 스승에게 운전을 가르쳐 드렸다. 김명예교수는 “그때 배운 덕분에 운전을 잘 못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을 받는다”며 웃었다.



#사제, 형제…좋아좋아

평소의 그들은 친구나 형제 사이같다. 27년을 함께 지냈으니. 가족끼리 친한 것은 물론 숟가락, 밥그릇 개수까지 훤하다. 김명예교수는 “연구실에서 하루종일 붙어있으니 부인보다 두 사람이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고 했다.

취미와 여가도 함께 한다. 김교수는 “선생님의 취미가 투망이어서 함께 즐기게 됐다”며 “둘이 금강 발원지부터 대청댐까지 걸어다니며 투망을 즐겼다”고 전했다. 김명예교수는 “요즘은 투망이 불법이라 못하는 게 아쉽다. 대신 공기 좋은 산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취미를 바꿨다”며 웃었다.

김교수에게 김명예교수는 은사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의지하는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하다. 응급구조체계가 지금보다 미비하던 87년. 추석 즈음에 김교수는 배가 아팠다. 급체로만 생각, 진통제로 버티고 버티다 추석 다음날 새벽 실신 지경에 이르렀다. 새벽 5시도 안된 시각에 도움을 청할 곳이라고는 김명예교수뿐. 부리나케 달려온 스승은 2층에서부터 제자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옮겼다. 김교수는 “알고 보니 급체가 아니라 맹장염이었다”며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진행됐는데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고 말했다. ‘생명의 은인’이었다.



#동거는 계속된다

김명예교수는 2001년 2월 은퇴했다. 후학을 위해 비워준 연구실. 그러나 27년 전처럼 두 사람은 다시 ‘동거’에 들어갔다. 제자의 연구실에 스승의 자리를 만들었다. 연구실엔 문에 달린 명패도, 부재중임을 나타내는 표지도, 지인이 사다준 차를 마시는 찻잔도 모두 2개씩이다.

“유학파도 아니고 서울의 명문대 출신도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잘 될 것이라는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 말씀에 힘을 얻었고 용기를 냈죠. 처음 그 인연으로 지내온 날들처럼 앞으로도 함께 했으면 합니다.”(김창희 교수)

“나야말로 김교수 덕분에 인생이 풍부해졌죠. 살아온 날의 보람이랄까요. 욕심이 있다면 함께 공저 작업을 좀 더 하고 싶어요. 굳이 학문뿐 아니라 자유로운 주제로. 함께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좋겠네요. 허허허.”(김재영 명예교수)





▲한날 한시에 책 출간 “두권 다 잘 팔려야죠”

스승과 제자. 그들은 27년동안 많은 것을 함께 공유했다. ‘정치문화와 정치사회화’ 등 함께 연구한 것들을 모은 공저도 벌써 7권이고, 둘이 힘을 합쳐 만든 ‘한국정치정보학회’는 7살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 사람의 공적(?)을 다른 이들에게 축하받는 자리를 한번도 가진 적이 없다. “낯간지럽게 나 잘했다는 소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거다.

하지만 최근 한번도 갖지 않았던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특별한 책이기 때문이다. 한날, 한시에 한 출판사에서 각자의 책을 출간한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김재영 교수의 ‘한국사상 오디세이’와 김창희 교수의 ‘김정일의 딜레마’라는 책이다. 책 앞 페이지를 펴면 인쇄일과 발행일까지 똑같다. 김재영 교수는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마침 비슷하게 집필을 시작했기에 동시에 끝마쳤다”며 한마디 덧붙였다. “둘 다 똑같이 잘 팔려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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