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그 재밌는걸 왜 안봐! 미쳤어?[‘TV탈출’수연이네 가족 고군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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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3.15 11:35:01
  • 조회: 400
올 초 국내에선 처음으로 ‘TV 안보기 시민모임’이 생겼다. 오는 5월 첫째주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1주일간 TV 안보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진다.

미국에선 1995년 ‘TV 끄기 네트워크’가 생겨 올해로 10년째를 맞는다. 시민모임 온라인 카페에는 신입 회원이 늘고 있다. 마약을 끊듯 비장하게 실천한 성공담과 실패담, 여전히 망설이는 가족, ‘TV 안보기 예찬론’을 펼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아이 공부와 여유로운 삶을 위해 이제 ‘TV를 꺼라!’는데…. 실제로 ‘TV 안보기’에 도전한 가정을 지난 2월1일부터 3월7일까지 35일간 지켜봤다. 해법이 있었다.



#그런 미친 짓을 왜 하는데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정문영씨(44). 자녀 수연(10)과 윤조(6) 남매가 자라면서 걱정이 많아졌다. 갈수록 TV 중독 증세가 심해졌기 때문. 수연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던지고 리모컨을 끼고 살았다. 어린 윤조도 TV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앉아 있기 일쑤였다. 아내 석지수씨(42)도 사정은 비슷했다. 드라마 재미에 빠져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냄비가 타들어가도 몰랐다.

정씨도 일찍 귀가한 날이면 아이들과 놀기보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TV를 봤다. 아이들한테 TV 보지 말라는 ‘말발’이 서지 않았다. 휴일 가족이 식사할 때는 식탁 쪽으로 TV 브라운관을 돌려놨을 정도다. 다행히 윤조를 제외하고는 심각성을 인식했다. 실천이 문제였다.

신학기를 한달 앞두고 성공하든, 실패하든 일단 도전하기로 했다. 지난달 1일 가족이 약속했다. 엄마는 TV일지기록을 맡았다. 처음엔 100% 안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가 ‘사는 재미가 없어진다’는 두려움에 ‘최대한 줄이자’로 방향을 바꿨다. 정씨 가족은 주말 ‘최대한 밖으로 나가자’는 단순한 전략을 세웠다. 수연이는 영어학원에 등록했고 엄마는 모성애로 버티자고 다짐했다. 정씨는 도저히 못 참을 경우 인터넷으로 뉴스와 스포츠경기를 보기로 했다.

문제는 어린 윤조였다. 왜 TV를 덜 보는 게 좋은지 이해하지 못했다. 첫날 기자가 가정을 방문했을 때 불안은 고조에 달했다. 화장실에서 “이제 우리 TV 못보는 거야, 싫어”하며 울먹였다. 그리곤 비디오영화 ‘고질라’를 틀어달라고 떼썼다.

작심 4일간 성공. 그러나 2월5일 토요일 친척들이 놀러오며 첫 위기가 닥쳤다. “그 재미있는 걸 왜 안보냐, 미친 짓”이라며 막무가내였다. TV 프로그램 ‘봄날’ ‘웃찾사’ ‘부모님전상서’를 내리봤다. 타의에 의해 억지로 봤지만 내심 기뻤다. 한번 무너지자 힘들었다. 다음날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와 코미디를 재밌게 봤다.

최대 위기는 설날 연휴였다. 설날은 대전 본가에서 TV영화 ‘효자동이발사’를 봤다. 나머지 연휴는 TV를 피해 나들이와 쇼핑을 했다.

“솔직히 애들 핑계를 댔지만 제가 워낙 ‘드라마광’이거든요. 드라마 볼 때는 말 시키지 말고, TV 앞으로 지나다니지 말라면서 소리쳤어요. 중요한 대사나 장면을 놓칠까봐 신경이 날카로워져 짜증냈죠. 막상 시작하니깐 아이들은 TV 보는 것을 까먹더라고요.”(엄마 석지수씨)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

10일째 지나면서 거실 풍경이 달라졌다. 아이방과 베란다에만 있던 동화책이 거실 탁자, TV장 밑 서랍에 놓였다. 수연이는 십자수를 뜨며 대화를 즐겼다. 6,500원짜리 ‘추억의 뽁기세트’도 샀다.

윤조를 위한 일종의 TV 대체 놀거리였다. 윷놀이도 자주 했다. 거실 대신 식탁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얘기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식탁 위에는 책과 카세트가 등장했다. 음악은 물론 영어배우기 어학 테이프도 함께 들었다. 거실에 불을 끄는 방법도 효과를 봤다.

“군대시절을 제외하고 TV와 떨어져 살아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TV를 본다는 느낌조차 없이 습관적으로 그냥 봤죠. 그런데 제 아이가 또 그렇게 넋을 빼고 보고 있으니깐 안되겠다 싶더군요.”(아빠 정문영씨)

20일, 30일째가 지나면서 TV가 없는 고요함을 즐기게 됐다. 걱정했던 것만큼 금단현상은 심하지 않았다. 가족회의에서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골랐다. 비로소 ‘TV노예’에서 ‘TV주인’ 자리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정씨 가족은 지난 35일간 총 17시간25분간 TV를 시청했다. 친지 방문으로 억지로 TV를 켠 시간을 포함한 것이다. 전 같으면 하루 평균 6시간 기준으로 총 210시간을 봤을 터이다. TV 안보기를 통해 192시간35분을 벌었다. 여기에 앞으로 1년, 10년의 시간을 곱하며 정씨 가족은 혀를 내둘렀다.

“심심할 때만 볼 거예요.”(윤조) “보고 싶을 때도 있는데 TV말고도 재미있는 게 많던대요.”(수연) “열쇠는 부모가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안보기’ 경험을 해봐야 볼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도 가능해지죠. 이젠 켤 때 켜고 끌 때 끌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부모)

정씨 가족은 이전보다 더 여유롭고 밝아보였다. 가족이 무언가 함께 해냈다는 자신감에 즐거워했다.



▶TV안보기 이렇게 해봐요

‘TV 안보기’는 마음으론 수십번 작정하지만 막상 실천하기 힘들다. 그러나 간단히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방법을 알면 쉽다. ‘TV 안보기 시민모임’ 대표인 서영숙 교수(숙명여대 가정·아동복지학부)가 실천 방법을 제안했다.

서교수는 “TV를 한번 끄고 안보는 경험을 해봐야 그동안 얼마나 오랜 기간 깊이 중독돼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일부는 ‘선택해 보게 하는 것도 교육인데 무조건 TV 안보기를 권하는 게 교육적이냐’는 반론을 펼친다. 그러나 안보는 경험을 해야 선택의 기회도 생긴다”고 강조했다.

▲TV를 치우거나 덮개로 씌워둔다. 무의식적으로 켜는 습관을 막을 수 있다. ▲꼭 보고 싶은 것은 인터넷으로 본다. 귀찮아서 포기하게 된다. ▲가족이 함께 꽃을 키우고 산책, 가벼운 운동을 하며 놀거리를 만든다. ▲라디오를 켜라. 정적의 불안증세가 사라지고 남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도 해결된다. ▲TV일지를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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