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꽃은 지겠지만 할머니의 꿈은 시들지 않는다 [외국대사부인들의 꽃꽂이 스승 임화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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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3.14 09:52:10
  • 조회: 652
올겨울 서울에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는 지난 2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은 은은한 꽃내음으로 가득했다. 형형색색의 꽃들을 정신없이 바라보며 안쪽으로 들어가니 파란 눈의 부인들이 꽃꽂이에 한창이다. 한국에 파견된 각국 대사의 부인들이다. 이들 사이를 한복차림의 5척 단신 할머니가 분주히 오가며 꽃꽂이를 거든다.

꽃꽂이의 달인 임화공씨(81)다. 우리나라에 ‘꽃꽂이’라는 단어를 선보인 꽃꽂이 강사 1호이고 꽃을 통해 외교를 펼치는 세계적인 꽃꽂이 전문가다. 1958년부터 꽃꽂이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니 ‘꽃선생님’으로 반세기를 살아온 셈이다. 이날은 3일과 4일 열린 제74회 ‘화공회’ 꽃전시회를 준비하는 날이었다. 화공회는 ‘임화공을 중심으로 한 꽃꽂이 모임’이란 뜻이다.



“민간외교라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60년 영국대사관 직원부인인 에번스의 초청으로 대사관에서 가르쳤던 것이 계기였어요. 육영수 여사에게 10여년 꽃꽂이 강의를 하면서 국가 주요행사 꽃장식을 도맡기도 했죠. 79년부터 2003년까지 꽃꽂이로 유명한 일본에서 꽃꽂이 책을 영어와 불어판으로 9권 냈는데 이 책들 때문에 세계적으로 알려졌나 봅니다.”

국내인보다 대사 부인 등 외국인들의 입에 임화공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꽃을 통한 외교를 펼치게 됐다. 임씨가 영국 총리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 비유하는 임씨의 집 ‘서울 통의동 10번지’엔 매주 금요일 오전 9시면 외교관차들이 늘어선다. 꽃꽂이 강습. 영어와 일어로 진행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어가 능통하고 영어도 꾸준히 노력한 터라 대화가 자연스럽다.



‘화공회’ 꽃전시는 60년 첫 회를 시작으로 매년 봄·가을 두번씩 열다가 몇년 전부터 일년에 한번으로 줄였다. 올해는 미국과 호주, 이집트, 프랑스, 독일, 일본, 뉴질랜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과테말라 등 10개국 대사 부인들과 이미 전문가가 된 제자들이 실력을 뽐냈다.

“이틀전 반포터미널에서 꽃을 사 와 어젯밤에 임선생님의 책을 보며 꽂았어요. 오늘 아침에 선생님의 조언대로 수정했더니 훨씬 멋있어진 것 같네요.”

패트리샤 힐 주한 미국 대사 부인은 자신의 꽃꽂이 작품을 보여주며 동백꽃을 하나 더 꽂았더니 훨씬 나아졌다며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이집트대사 부인은 이지스 여신 동상을 배경으로 이집트의 흙처럼 노랑, 주황색의 장미로 피라미드를 본뜬 작품을 설명했고, 프랑스 대사 부인은 프랑스의 작은 가구를 그릇으로 썼다.

“꽃꽂이를 하는 순간 자연사랑, 생명사랑으로 모두 하나가 되지요. 전시회 부제가 ‘세계속의 꽃친구들’인데 ‘꽃친구’란 말 참 좋지 않아요?”

작은 아름다움에 감탄을 연발하고 사진촬영차 나간 야외에서는 “눈을 밟기 아깝다”며 주저하는 임화공씨. 만년 소녀같다. 그러나 정작 놀란 건 인터뷰 마지막 대목이었다. “나 심장박동기 달았어. 한 4년 됐나?” 8순나이에 영어책을 놓지 않는 할머니, 늘 유머와 활기찬 에너지로 주변을 밝히는 그의 인생이야말로 꽃을 닮아 밝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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