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어지럽단 말야 너무 빨리 가지마 [배고픈 달팽이와 너무 먼 채소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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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3.14 09:43:55
  • 조회: 514
너무 빠른 세상이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달팽이 한마리. 이름은 블라디미르다. 배가 너무 고프다. 아삭아삭한 상추가 먹고 싶다. 하지만 배를 채워줄 채소밭은 먼 곳에 있다. 결코 먼 곳이 아니지만 블라디미르에겐 멀기만 하다. 한시간을 ‘꼼지락 꼼지락’ 기어갔다. 빠르게 갈 수 없을까. 블라디미르는 지나가는 고슴도치 에곤에게 부탁한다. “나를 좀 태워줘.” 에곤의 등위에 올랐지만 얼마가지 못한다. 고슴도치 가시가 계속 블라디미르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다시 ‘느림’으로 돌아온 블라디미르. 이번에는 거북이에게 부탁한다. 하지만 거북이는 너무 느리다. “너무 느려요”라며 거북이 등짝에서 내려오고 만다. 고슴도치 등 위에서 느낀 속도감이 벌써 몸에 익은 것일까. 다음에는 폴짝폴짝 뛰는 개구리, 그 다음에는 하늘을 나는 까치의 날개 속에 몸을 싣는다.


그렇지만 개구리 등짝에서는 멍이 들고 까치의 날개 속에서는 어지럼증으로 토할 것 같다. 날개에서 떨어진 블라디미르는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 온다. 가시에 찔리고, 멍들고, 토하고, 바람에 날리고. ‘빠름’에는 적지않은 대가가 필요했다. 눈물을 삼키던 블라디미르는 꼼지락 꼼지락 다시 채소밭을 향해 걸어간다. 아무에게도 부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걸음으로, 리듬으로 한참을 걸어 채소밭에 도착한다. 채소밭으로 뛰어든 블라디미르는 아삭아삭 상추를 먹으며 말한다. “아무리 느려도 열심히 가기만 하면 꽤 멀리 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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