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아홉가족 옹기종기 1년내내 명절이지요 [김동열 할머니 가족 ‘천호동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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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2.05 10:00:53
  • 조회: 668
아홉가족 옹기종기 1년내내 명절이지요

가족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설에만 모이는 가족이 아닙니다. 같이 사는 가족입니다. 산업화로, 핵가족화로 잘게잘게 쪼개지기만 했던 가족들이 다시 모이고 있습니다. 아파트 몇개 층을 부모 자매들이 나눠 살기도 하고, 3층짜리 빌라에 통째로 부모와 결혼한 형제가 사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형제와 사촌, 오촌, 육촌들이 한 마을을 이룹니다.

사돈이 자녀부부와 같은 건물에, 혹은 자매가 집을 함께 지어 한 집에 살기도 합니다. 이들 ‘신 대가족’은 예전의 대가족과 달리 자발적으로 모여 삽니다. 함께 살아 불편하기보다는 흩어져서 쌓이는 그리움이 더했나 봅니다. 제각각 흩어졌던 가족이 모두 모이는 설. 늘 명절처럼 풍성한 ‘모여 사는 가족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어서오세요, 당숙모.” “삼촌, 그거 서영이가 먹다가 뱉어놓은 건데.” “뭐라고?” “서영아, 쌩뚱맞죠?” “땡충마쪼~.”

설을 앞둔 휴일 오후 만발한 웃음소리가 골목을 넘나든다.

명절도 아닌데 현관엔 신발들이 두겹 세겹으로 쌓이고 좁은 마루엔 어림잡아 서른명쯤 될 듯한 남녀노소가 어깨를 맞대고 앉아 1분 걸러 웃음꽃을 터뜨리고 있다.

큰길을 마주하고 사는 동서지간 최영범(76), 김동열(66) 두 할머니네 집은 천호동에서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만큼 유명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두 분을 비롯해 셋째 할아버지 장석운씨(63) 등 아버지대의 삼형제가 근처에 모여 살고, 또 그 자녀 몇명이 부모님과 같은 건물에 층을 나눠 살거나 근처에 분가해 산다. 건물로는 일곱 집, 결혼한 가정으로는 여덟 가족이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 모두 모이면 장씨 직계 3대에 33명,김할머니의 언니와 그 자녀 집까지 모두 아홉가족. 38명이다.

둘째 할아버지가 43년전 고향인 서산에서 상경한 것이 모여 살기의 시작이었다. 형제들이 잇달아 모이더니 자녀들까지 가세했고 둘째집 둘째 아들이 2002년 결혼해 어머니집 코앞에 자리 잡은 것이 가장 최근의 이사다.

각종 행사도 줄줄이다. 1월21일 제사부터 시작해 명절, 제사, 졸업식, 어른 생일 등 ‘필수 참가’ 모임만 한달에 세번꼴이다. 그렇게 보고도 또 보고 싶을까. 맛있는 거 했다고 모이고 누가 상 탔다고 모이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늘 모인다. 흥이 나면 노래방에 함께 가고 여름엔 걸어서 5분거리인 한강둔치에 도시락 싸 가지고 가서 밤 늦도록 얘기하며 놀다 오기도 한다. 얼마전 김장을 하고 나서는 단체로 목욕탕에 가기도 했다.

막내둥이 손자의 백일인 이날, 1월의 마지막 휴일은 주일예배에 가느라 출석률이 저조한 편이란다.

“남자들도 아이들도 직장 동료나 친구들보다 친척들이 더 재미있대요. 오래 사니까 여기가 친정 같이 편해요. 작은딸은 나중에 자기도 이렇게 살겠대요. 시집 가서도 함께 살자고 벌써부터 말하고 다녀요.”(둘째집 맏며느리 김혜연·42)



잔칫상에는 게장과 어리굴젓, 게장으로 담근 김치 게국지…. 가족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충청도 음식이 가득하다. 할머니들이 계시니 철따라 모두 모여 김장이니 장 담그기, 술 담그기 하는 것을 손자·손녀들은 서울 한복판에서도 보고 자랐다.

목욕탕, 슈퍼마켓, 마트, 횡단보도는 물론 민방위 훈련에서까지 마주치는 친척들. 만나고 또 만나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단다.

이렇게 늘 이집 저집 친척들로 북적대다 보니 애 키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유모차며 장난감들만 네다섯집에 갖다 놓으면 끝. 아이들이 제발로 찾아가는 집이 놀이터였고 집에 있는 사람이 일일부모가 됐다. 최할머니는 며느리 셋이 다 일하는 바람에 손자·손녀 일곱중 근처에 사는 다섯을 도맡다시피 키웠다.

100일둥이부터 25살까지 손자·손녀들은 모두 12명. 신암초, 천일중학교, 영파여중고, 명일여고 등의 동창생인 사촌, 육촌들은 친척이라기보다 아주 가까운 친구다. 이집 저집 다니며 힘들여 키우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뒤섞여 절로 컸다. 어린 동생들을 매일 업고 목욕시키는 중·고등학생 언니들 입에선 “하루만 안 봐도 눈에 밟힌다”는 할머니 같은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여러 집이 모여 살고 당숙모나 육촌들까지도 친하니까 친구들이 신기하대요. 시험기간엔 사람들이 많아 공부엔 좀 방해되지만 이집 저집 왔다갔다하면서 노니까 재미있어요.”(장아영·영파여중1)

할머니 옛날얘기 들으며 옥상에서 잔 일이 가장 즐거웠다는 아이들. 이집 저집 다니며 심심할 겨를이 없는 노인들. 친척끼리 켜켜이 쌓은 삶의 풍경들만으로도 이 가족에겐 1년 365일이 내내 풍성한 명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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