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피에로는 울지 않는다 [난치병 피에로 박섭묵씨의 ‘행복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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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1.27 09:17:39
  • 조회: 472
웃고 있다. 눈물은 감춘다. 빨갛고 둥근 코와 커다란 입술, 하얗게 칠한 뺨의 피에로. 박섭묵씨(40)는 피에로다. 무대위에선 웃음을 주는 명랑쾌활 아저씨. 무대뒤에선 울음을 삼킨다. 자신은 원인불명의 난치병에 시달리지만 전국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피에로 공연을 선사한다. 원인불명 난치병에 걸린 피에로는 하루하루를 접을 때마다 절망과 고단함속에 시들어가지만 공연을 멈출 순 없다. 아이들에게 달콤한 꿈과 사랑을 심어주는 행복전도사로 남아야 한다. 피에로아저씨가 공연때 절대 빼지 않는 레퍼토리는 ‘사랑’을 이야기하며 하트풍선 만들어 주기. 자신의 병을 잊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미소짓게 하는 그의 웃음은 그래서 더욱 행복하고 값지다.



#나는야, 사이드 인생

박씨가 피에로를 시작한 것은 10년 전이다. 당시의 직업은 유치원 체육교사. 아이들과 함께 뛰노는 것은 좋았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오후, 그는 레크리에이션을 배우기 시작했다. 피에로와 풍선불기, 마술, 인형극 등.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다. 피에로 공연하는 사람들을 직접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웠다. 마임을 배우기 위해서는 3년을 따라다녔다. 도제식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세계에서 혼자 뛰어다니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정통성이 없다며 무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노력만큼 실력은 늘어갔다. 이제는 베테랑이다. 인형극은 아예 눈을 감고 하는 것이 편하단다.

피에로에 재미를 느끼면서부터 유치원을 아예 그만두고 전업으로 나섰다. 벌이가 시원찮아 그만두려고도 했었다. 조리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한 탓에 취직이 어려웠다. 가족들의 지원으로 다시 피에로 공연에 나섰다. 천직이었음을 느꼈다.

“피에로 일을 왜 이렇게 늦게 알았는지 모르겠어요. 돼지를 치기도 하고, 웨딩 비디오 기사도 했지만 피에로 일이 가장 재미있고 행복한 걸요.”

본격적인 공연에 나서면서 피에로 공연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돈을 제법 만졌을 때는 기부도 많이 했다. 조금씩 남을 돕는 일에 익숙해있었다. 그는 “하고 싶어서, 할 수 있어서 하는 것인데 남들 주목을 받는 것도 쑥스럽다”며 웃었다. 고아원이나 복지관 등에서 아이들과 자폐인들을 위한 무료 공연이 벌써 150회가 훌쩍 넘었다. 피에로를 처음 보고는 무서워하기도 하지만 이내 “아저씨~”하며 달려드는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자폐인을 위한 공연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 버겁기도 하단다. 그러나 2년 전이던가. 힘든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그의 뒤에서 한 자폐인이 “야, 재밌었어”라고 외쳤다. 그 순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봉사는 나의 힘

벌써 몇년째 자기 돈을 쏟아가며 봉사활동에 매달리고 있는 박씨. 실은 그 역시도 난치병에 시달리는 환자이다. 10만명 가운데 4명 정도 걸린다는 베체트 병. 처음에는 입술이 부르트고 혓바늘이 돋아 ‘많이 피곤한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피부과, 내과, 안과 등 여러 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피부와 장기 등에 궤양이 생기는 베체트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계속 병원다니면서 컨디션 조절만 잘 하면 위험하지는 않다고 하네요. 눈으로 전이되면 실명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하지만… 그런데 피에로 공연이 워낙 불규칙적인 일정이어서…. 오늘 충북 제천에 있다가도 내일은 강원도로 가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지난주에는 정말 너무 피곤해서 주변에서 걱정할 정도였지요.”

그렇지만 자신의 공연을 보고 즐겁게 웃는 해맑은 미소를 생각하면 몸이 근질근질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의 곁에서 지지해주는 가족들도 그가 힘을 낼 수 있는 원천이다. 남편의 뜻에 아무 말 없이 따라주는 부인과 든든한 아들 삼형제가 있다.

“아이들도 이제는 같이 따라다니면서 막간 공연을 해요. 큰애는 태권도, 둘째와 셋째는 노래와 춤을 추죠. 자폐인을 위한 공연을 갔을 때 처음에는 무서워하더니 나중에는 친해져서 다음에 또 가자고 하더라고요. 봉사를 하면서 따뜻한 마음, 행복한 마음을 느꼈으면 했는데 효과가 있는 듯해요. 이런 것이 진정한 교육이지요.”

박씨는 최근 ‘성교육 인형극’에 빠져있다. 유아 성폭력 피해가 심각하다는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교육 공연을 하고 있는 것. 어려움은 많지만 조금씩 체계가 잡히고 도와주는 사람도 많아 열심히 뛰고 있다. 올해는 충청북도 도청과 함께 곳곳의 유아정보센터에서 공연을 벌일 예정이다. 그의 꿈은 아이들이 주인이 되는 음식점을 내는 것. “아이들이 어른들 눈치보지 않고 편하게 뛰어놀 수 있는 음식점,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테마가 있는 음식점을 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직업의 변신이 되겠네요. 그렇다 하더라도 저의 피에로 봉사활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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